▲ 권혁면 연세대 산학협력단 연구교수(전 산업안전보건연구원장)

우리나라의 경제적 수준에 비해 일터에서 사망하는 노동자가 많다는 것은 분명한 현실이다.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를 열고 경제적 발전을 이룩했음에도 각종 매체에서는 산업현장 사고 소식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미국의 안전 심리학자인 피터 샌드만 교수는 리스크 관리와 관련해 “국민소득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피해자들의 분노를 헤아려야 하는 심적 감정관리가 훨씬 중요하다”고 말한다. 결국 우리 사회는 김용균씨 사망사고와 같은 후진적 재해에 분노했고, 이는 안전 분야에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라는 거대한 제도적 쓰나미를 가져왔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산업재해 감소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중소 규모 사업장의 산재예방에 대한 동기부여가 필요하며, 대기업에 대해서는 중대재해 발생 원인에 대한 이해가 먼저 요구된다.

우선 우리나라 사업장의 9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중소 규모 사업장은 대부분 50명 미만 사업장이다. 사업장수가 많다 보니 사고 발생 빈도가 낮다. 2019년 산업현장 사고 재해율 0.5퍼센트를 놓고 볼 때 20명 미만 사업장은 10년에 한 번, 5명 미만 사업장은 약 40년에 한 번 사고가 발생한다. 이러한 중소 규모 사업장의 낮은 사고 발생 빈도는 ‘우리 사업장에 사고가 나겠어?’라는 낙관적 편견을 가져와 사업주의 안전에 대한 동기부여를 제한한다. 결국 사고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남의 일이며, 사고는 나와 무관하다는 인식이 재해예방에 대한 무관심으로 작용한다.

또한 건설현장의 경우 발주자부터 하청·재하청을 거쳐 공사를 수주한 최종 단계의 하청기업 사업주는 원가 수준의 낮은 수주액을 고려해 안전과 위험의 경계에서 안전을 무시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

이와 달리 대기업은 중대재해처벌법이 내년부터 시행됨에 따라 안전시스템을 새롭게 구축하는 등 산재예방 활동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대기업 재해예방 활동의 문제는 중대재해 원인이 단순하지 않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대기업은 산재예방에 대한 동기 형성이 가능하나, 중대재해 발생 과정이 복잡해 사고예방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시스템 안전 및 인지 과학자인 리처드 쿡 박사는 “중대재해는 여러 요소에 발생하는 실패가 합쳐져서 발생한다”며 “안전은 시스템의 특성이지 구성요소가 아니다”는 주장으로 복잡한 시스템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하는 18가지 특징을 제시한다.

이처럼 중소 규모 기업의 산재예방에 대한 동기유발 요인이 낮다는 점과 대기업의 중대재해 발생 원인에 대한 복잡성을 고려할 때 산업현장의 중대재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는 안전에 대한 동기유발이 어려운 중소기업에는 어느 정도 효과를 보고 있는 안전패트롤 현장점검을 발전시키는 방안을 모색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교통경찰의 벌금 고지서와 같은 방안을 적용하는 것이다. 사업장을 수시로 방문해 위험요인을 개선하도록 계도기간을 부여하고 이행하지 않으면 교통안전 범칙금 정도의 금액을 납부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법적인 부분이 선결돼야 하며, 정부 감독관과 해당 공공기관 그리고 지자체로 확대해 언제 어디서 점검이 나올지 모르는 상황으로 상시 관리·감독 체계를 구축한다면 안전 패트롤 사업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둘째는 정부의 중소사업장에 대한 안전기금 지원을 사망사고를 줄이는 설비 개선에 좀 더 집중하는 것이다. 설비를 주로 활용하는 제조업의 끼임 사고는 건설업의 떨어짐 사고 다음으로 많이 발생하는 사망사고다. 끼임 사고는 설비를 정지하지 않고 운전 중인 상태에서 보수 작업을 하다가 주로 발생한다.

영국은 산업혁명 시대에 운전 중인 섬유기계의 청소 중 발생하는 사고의 심각성을 이해하고 1844년 공장법에 이미 이러한 작업을 제한하는 조항을 반영한 바 있다.

21세기 현시점에서 우리나라 산업현장에서 다발하는 끼임 사고 해결은 필수적 과업이다. 이와 관련해 끼임 사고 예방을 위해서는 중소 규모 사업장에 비용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이 고려돼야 한다. 현재 정부는 50명 미만 중소 규모 사업장을 대상으로 ‘안전투자 혁신사업’을 추진 중이다. 3년간 예산을 약 1억원 지원해 차량용 이동식 크레인 등 위험 기계·기구를 교체하고, 뿌리산업의 노후위험 공정을 개선하는 사업이다.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중소기업의 설비 고장시 대신 돌릴 수 있는 예비설비를 갖추는 데 드는 비용을 지원하는 방안을 고려해 봄 직하다.

마지막으로 사고예방에 여력이 있는 대기업은 리처드 쿡 박사가 얘기한 것처럼 중대재해 발생의 복합적 원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위험요인을 스스로 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전문기관의 도움을 받거나 ‘중상해 재해’에 초점을 맞춰 재해예방에 선택과 집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재러드 다이아몬드(Jared M. Diamond)는 톨스토이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구절인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각 다르다”에 착안해 ‘안나 카레니나 법칙’을 주장했다. 이 법칙은 “성공은 여러 가지 요소들이 모두 충족돼야 가능하며, 어느 한 가지 요소라도 어긋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를 안전에 대입하면 “안전은 여러 가지 요소들이 모두 충족돼야 가능하며, 어느 한 가지 요소라도 어긋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가 될 것이다. 결국 수준 높은 안전 일터를 만드는 것은 모두가 행복한 대한민국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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