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안전공학)

평택항에서 꽃다운 나이의 청년이 덧없이 스러졌다.

이번 사고로 원청업체라 불리는 동방에 대한 여론이 들끓고 있다. 그러나 냉정하게 보면 과연 이 업체만의 책임일까. 평택항을 소유하고 전체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정부와 항만공사는 책임이 없을까. 이선호씨를 채용한 업체는 영세하다는 이유로 책임에서 자유로울까. 그리고 컨테이너의 소유자인 선박회사에는 문제가 없을까.

또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있다. 고 이선호씨의 부친이 지적했듯이 정치권과 감독기관이다. 책임의 경중을 따지면 이들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고용노동부 산재예방정책부서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노동부는 이른바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을 통해 원청에 대한 책임을 대폭 후퇴시켰다. 도급규제를 강화시킨다고 해 놓고 실제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한마디로 요란한 빈 수레였다. 가장 위험한 유지보수작업, 설치·해체공사 등 건설공사에 대한 규제를 아무런 이유 없이 폐지하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 하청과 그 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시정조치 등을 껍데기로 만들었다. 하청에 대한 원청의 안전보건 조치를 획일적으로 파견법 위반 소지가 있는 것으로 봤다.

사업장 안전관리의 기본인 안전보건관리체제도 형해화시켰다. 근로감독의 중요한 수단인 시정명령 대상을 대폭 축소시키고 중대재해 발생 후 작업중지명령에만 ‘몰빵’하느라 이보다 중요한 예방 목적의 작업중지명령을 유명무실하게 만들었다. 또 안전관리의 초석이라고 할 수 있는 위험성 평가 미실시에 대해 처벌하지 말라는 뜬금없는 지침을 내려보내 위험성평가 제도를 무력화시켰다. 산업안전보건법을 28년 만에 전부개정한다고 호들갑을 떨면서 안전기준의 핵심인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의 수많은 문제는 개정하지 않고 방치했다.

다 열거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산업안전보건 법·제도를 무장해제하거나 왜곡시킨 장본인이 바로 노동부다. 더 큰 문제는 이처럼 개악되고 문제투성이인 제도를 숨기고 나 몰라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이 있긴 하다. ‘엄포 놓기’와 ‘군기 잡기’다. 가장 쉽기도 하고 뭔가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데 이것만큼 좋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엉성하고 조잡한 정책과 접근으로 중대재해가 줄어들기를 바라는 건 연목구어나 진배없다. 중대재해를 줄이는 강력하고 중요한 장치와 수단을 없애거나 약화시켜 놓고 무엇으로 중대재해를 줄일 수 있단 말인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재정지원사업을 확대한들 효과가 있을까. ‘차 떼고 포 뗀’ 상태에서 패트롤 점검과 같은 일회적이고 파편적인 방식으로 중대재해가 줄어들 수 있을까.

대형사고가 터질 때마다 얼치기 전문가를 앞세워 미봉적인 생색내기 대책으로 얼버무리는 행태를 바꾸지 않고는 평택항 사고 재발을 막을 수 없다. 구조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를 방치한 채 알맹이 없는 대책을 남발하는 구태를 고치지 않고는 중대재해 감소는 기대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법·제도를 누더기로 만들고 형해화시킨 이들의 무능력과 무책임성이 고김용균씨 사고를 헛되게 하고 이선호씨의 죽음을 조장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산재예방 공공인력과 예산이 대폭적으로 증가했는데도 중대재해 감소 성과를 내지 못하는 이유도 산재예방 관련 법과 정책이 뒷걸음질하면서 많은 공백과 빈틈을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업체도 응분의 책임을 져야겠지만 많은 대형사고를 겪고도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시킨 정부의 잘못을 따지지 않고는 정확한 사고조사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번만큼은 현장업체에만 책임을 묻고 정부당국은 슬그머니 빠져나가는 일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 이선호씨의 죽음을 중대재해 예방의 밑거름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유족을 진정으로 위로하기 위해서는 잘못되고 뒤틀린 법·정책을 전면적으로 뜯어고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정치권과 집행기관이 들끓는 여론 잠재우기에만 급급해 또다시 보여주기식 대증요법을 반복하지 않는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 이번에는 우리 사회가 이선호씨 사고로부터 진정한 학습과 도약을 해야 한다. 그 첫발은 산재예방행정의 혁신과 정교하고 실효적인 법·제도 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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