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왼쪽부터 김대용씨·신지숙씨·이순례씨. <정기훈 기자>

“어쩌다 투쟁 당시 사진을 보면 엊그제 일 같아요. 시간이 이렇게 흘렀으니 감회가 새로워요.”

10년 넘게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로 일한 김대용(66)씨가 환하게 웃었다. 넉 달이 넘는 시간 매일 얼굴을 마주하고, 살을 비비며 고용승계 투쟁을 함께해 온 청소노동자 세 명이 오랜만에 함께 모였다. “LG가 고용승계 보장하라”고 쓰인, 투쟁 내내 교복처럼 맞춰 입던 빨간 조끼 대신 사복을 차려 입고 만난 이순례(65)씨와 신지숙(60)씨의 얼굴에는 꽃이 핀 것처럼 생기가 넘쳤다. 신씨는 “고생은 했지만 이제는 추억이 돼 버렸다”며 아련한 기억을 떠올렸다. 이들의 고용승계 투쟁은 지난해 12월 청소노동자 80여명의 집단해고로 시작됐다. 투쟁 말미에는 하청업체 지수아이앤씨가 일부 조합원에게 2천만원의 위로금을 지급하며 노조와해 의혹도 일기도 했지만, 원청인 에스앤아이코퍼레이션과 지수아이앤씨 노사는 지난달 30일 마포빌딩으로 고용을 승계하고, 만 65세 정년연장·만 69세까지 촉탁직 고용에 합의했다.

정년이 코앞에 닥쳐, 관리자 갑질에 분통이 터져 난생처음 노조에 가입한 이들이 회사의 끊임없는 회유에도 136일간의 고용승계 투쟁을 이어 갈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투쟁이 그들에게 남긴 것은 무엇일까. 18일 오전 <매일노동뉴스>가 7월1일 마포빌딩으로 첫 출근을 앞두고 있는 청소노동자들에게 소회를 들었다. 집담회는 서울 영등포구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사회 : 투쟁이 끝난 뒤 다들 어떻게 지내셨나요.

신지숙 : 몸이 뻐근하고 불편해 병원에 다니고 있어요. 못한 집안일도 하고요.

김대용 : 해고되고 나서 12월31일부터 로비에서 잤거든요. 그때 영하 17~18도라서 얼마나 추웠는지, 투쟁이 길어지니 몸도 마음도 지쳤어요. 생전 밖에서 잔 적이 없는데, 막판에는 한 달 넘게 밖에서 텐트 깔고 잤잖아요. 투쟁 끝나고 집에서 한의원 다니고 규칙적인 운동도 하고 그렇게 지내요.

이순례 : 텐트에서 자면서 목이 안 좋아졌어요. 침 맞으면서 목하고 허리를 치료하고 있어요. 어디가 특별히 아픈 곳이 있는 것은 아닌데, 밥도 먹기 싫고 한동안 기운이 없어 힘들었어요. 긴장이 풀려서 그런 것 같아요. 요즘에는 조금 나아져서 보고 싶은 언니한테도 가 보고, 대전 사는 딸도 보고 오고, 바람도 쐬니 기분이 좋아졌어요.

“노조 모르고 살아온 60년
‘더 일하고 싶어’ 가입”

사회 : LG트윈타워에서 어떻게 일하게 됐나요.

신지숙 : 2015년 10월부터 다녔어요. 한 10년 전에 회사를 다녔는데 부도가 나서 실업급여 받으며 쉬었고요. 다른 회사에 이력서 넣고 그랬는데 나이 먹었다고 안 써 주더라고요. 언니들 만나서 놀다 보니 청소하는 일 너무 쉽고 좋다는 거예요. 찾다 보니 여기에 들어오게 됐어요.

김대용 : 청소일은 LG트윈타워가 처음이에요. 원래는 회사생활 그만두고 공구상가도 하고, 당구장도 했어요. 당구장만 한 11년 하다가 접고 2011년 LG트윈타워 건물 리모델링할 때 들어왔어요. 직업소개소에서 소개해 줬는데 아무래도 큰 기업이니 다른 곳보다는 안 좋겠나 했죠.

이순례 : 2008년부터 일했으니 13년 됐네요. 제가 마흔 살에 아들 늦둥이를 낳았어요. 딸 둘 가르치고 아들 유치원 보내려고 하니 어떻게 할 방법이 없더라고요. 아는 언니가 야간에 가서 일하고 돈도 벌고, 아들도 키울 수 있다기에 들어왔어요. 생전에 이런 데 와 본 적이 없잖아요. 입사 후 처음 출근하니 사람들이 방에 뺑 둘러앉아 있더라고요. 밤에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구나, 그때 처음 알았죠.

사회 : 노조에 가입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순례 : 노조 가입은 주간조에서 먼저 시작했어요. 저는 노조에 가입하면 잘릴까 봐 무서워서 가입 못하고 있었어요. 시키면 시키는 대로, 죽으라면 죽으라는 시늉을 하며 10년 넘게 일해 왔어요. 감독에, 반장에 갑질이 진짜 심했는데, 그냥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생활하니까 견뎠죠. 무서워서 노조 가입 않고 쉬쉬하는데, 회사도 야간조에 노조 안 생기게 하려고 만 70세까지 일하게 해 준다고 엄청 잘해 줬어요. 그런데 뒤에서는 야간조 인력을 새로 채용한 거예요. 그래서 노조에 가입하게 된 거죠.

김대용 : 이전에는 정년으로 잘린 사람을 못 봤어요. 그런데 2019년 10년 넘게 일한 사람을 2019년에 만 65세가 됐다고 자르더라고요. 앞으로 계속 만 65세가 되면 자를 것처럼 보였어요. 내가 지난해 65세였으니까, 정년연장이 되길 바라고 노조에 가입했어요. 갑질도 심했어요. 하루에 휴게시간 2시간30분을 주면서 근무시간을 7시간30분으로 맞추고, 30분씩 남는 시간 모아 격주로 5시간씩 토요일 근무를 시켰거든요. 그때 하던 게 식당 왁스청소 작업인데, 그게 특수작업이에요. 약품이 되게 독해요. 근데 쉬는 시간도 안 주고, 밥도 안 주고 빵 한 조각에 우유 하나 줬어요. 진짜 이래서는 안 되겠다 했죠.

신지숙 : 노조 가입하면 잘리지도 않고, 고생도 안 할 줄 알았어요. 이렇게 힘든 것인 줄 알았으면 노조 가입 안 했을 거예요.(웃음) 뉴스에서 보기만 했지 노조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거든요. 그런데 노조에 가입하면 토요일에 일 안 하고, 짝꿍이 쉬면 짝꿍이 맡았던 층까지 일했는데 그렇게 안 해도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가입하게 됐죠.

위로금 500만원 받을래, 그냥 나갈래?
사측 계속된 회유, 2천만원 돌려준 동료 보며 힘

사회 : 지난해 말 노동자 80여명이 계약해지를 통보받았습니다. 당시 심정이 궁금합니다.

김대용 : 회사 사람이 작업 도중에 부르더라고요. 12월31일부로 계약해지한다고, 용지를 건네더라고요. 난감했죠. 65세 넘어서 코로나 시기, 엄동설한에 나가면 어디 취직이 되겠어요. 앞이 깜깜했죠.

이순례 : 고용승계를 요구하면서 지난해 12월16일 농성을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회사에서 우리를 한 사람씩 불렀어요. 저는 500만원짜리였어요.(당시 지수아이앤씨는 계약해지 예정 노동자에게 위로금 명목으로 돈을 건넸다.) 깨알 같이 쓰여 읽지도 못하는데 종이를 줬다가 뺏다가 하며 도장 안 찍으면 500만원 날아가고, 해고된다고요. 아니 위로금을 줄 거면 다 똑같이 줘야지, 나는 이거 못 하겠다고 하고 나와 버렸어요. 처음 노조 가입한 사람은 63명 정도 됐는데 회사 회유로 자꾸 나가고 나중에 30명 정도만 남은 거죠.

지수아이앤씨의 회유는 투쟁이 장기화하는 상황에서도 계속됐다. 올해 3월1일을 시작으로 4월6일까지 8명의 노동자가 노조를 탈퇴했다. 이후 2명의 조합원이 또 탈퇴했다.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는 회사가 탈퇴 조합원에게 2천만원을 건넨 것으로 보고 있다. 같은달 30일 노사는 마포빌딩에서 근무하기로 극적으로 합의했다. 당시는 노동자 3분의 2가 노조를 나가 20명만 남은 때였다.

신지숙 : 해고통보를 받았을 때 가슴이 두근두근 했어요. 정년 때까지 마음 놓고 다닐 줄 알았거든요. 500만원을 준다고 서류에 도장을 찍으라고 하는데, 저는 일한다고 했어요. 2천만원 준다고 했으면 사실 흔들렸을지도 몰라요.

사회 : 투쟁 중 가장 힘들었던 기억은 무엇인가요.

이순례 : 2천만원에 조합원이 우르르 나갈 때 가장 힘들었죠.

김대용 : LG쪽은 아무 흔들림 없는 철옹성 같았어요. 투쟁이 길어지니 몸과 마음이 지쳐 가고, 그런데 노조탈퇴를 회유하는 사측 말에 동료들이 말려들어 가고 그럴 때 너무 힘들었어요.

신지숙 : 그래도 한 분은 2천만원을 받았다가 다시 돌려줬어요. 그 돈을 받고 죄책감 때문에 잠을 못 잤다고 하더라고요. 돈 돌려주고 나니 후련하다고요. 저는 정말 그분 보고 많이 느꼈어요. 그 뒤로 우리끼리 한 1억원 주지 않는 이상 안 나가겠다고 다짐했죠.

“초코파이 던지며 주워 먹으라던 용역, 무서웠다”

세 사람은 계약종료일이던 지난해 12월31일 있었던 일을 또렷이 기억했다. 적게는 5년, 길게는 10년 넘게 일해 온 LG트윈타워 로비를 점거해 노숙농성을 한 것도, 용역경비업체와 충돌한 것도 60년 넘는 생애에서 모두 처음 겪는 일이었다. 투쟁 과정에서 하나둘 모이는 연대의 손길은 특히 잊지 못할 거라고 전했다.

신지숙 : 계약 종료되는 날 로비에서 쫓겨날지도 몰라서 크게 각오했죠. 다행히 당시 끌려 나가지는 않았는데 한동안 밤에 잠을 못 잤어요.

이순례 : 배가 이~렇게 나오고, 키가 이~만큼 큰 사람이 초코파이를 던지면서 ‘주워 먹으라’고 했어요. 저는 그때가 최고 무서웠어요. 많이 울어서, 노조 조직부장님이 위로해 주고 그랬어요. 밥 먹고 힘내서 싸우라고, 돈도 많이 보내 주고 했죠. 덕분에 버텼어요.

김대용 : 그때는 정말, 용역경비업체는 24시간 내내 우리를 감시하고, 화장실 가면 일일이 무전으로 보고하고 했어요.

이순례 : 그때 다리가 다 망가졌어요. 당시 오후 5시 되면 엘레베이터를 다 꺼놓았거든요. 계단을 계속 걸어다녀야 했어요. 계단을 세어 보니 42개 더라고요. 하루 몇십 번씩 오르락내리락하니 성할 리가 없죠.

계약종료일 직후인 올해 1월1일 LG쪽이 고용한 용역경비업체는 로비에서 노숙농성을 하는 청소노동자와 크게 충돌했다. 당시 도시락 반입을 막고, 전기와 난방을 끊는 LG쪽 행동은 노동·시민·사회단체의 비판을 받고 난 뒤에야 중단됐다.

사회 : 그렇게 오랜 투쟁 기간을 견디게 해 준 힘은 무엇이었나요.

신지숙 : 연대죠. 길벗한의사회 한의사들이 와서 침도 놔 줬어요. 2천만원 거절하고 남아 준 동료 덕분에 2천만원 줘도 못 나간다고 마음먹었고요.

김대용 : 청년·학생 단체에서 계속 연대해 줬는데, 그 사람들을 생각하면 중간에 그만둘 수가 없었어요.

이순례 : 영하 18도 추운 날씨에도 연대하려고 오신 분들이 많아요. 집밥 먹이려고 밥차 연대도 와 주고, 수녀님들이 밥·반찬 손수 다해서 주시고, 불교에서도 먹을 음식 전해 주시고. 종교를 넘어서 그때 연대를 잊을 수가 없어요.

“나이 먹은 사람 일할 수 있게 정년 늘려 줬으면”

지난달 30일 에스앤아이코퍼레이션·지수아이앤씨·지부는 정년 만 65세, 이후 촉탁직으로 만 69세까지 고용하는 데 합의했다. 규정상 만 60세였던 정년이 5년 늘었고, 이후 4년 더 일할 수 있다는 보장을 받았다.

이순례 : 해고된 뒤 나간 사람들은 들어갈 곳이 없어서 고생한다고 하더라고요. 노조 만든 뒤 많은 경험을 했는데, 다시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돼 감사해요. 나이 들면 아파트 청소를 많이 하거든요. 돈도 조금 주고 더 힘들어요. 계단 오르락내리락하는데, 주민들 잔소리가 많다고 하더라고요.

신지숙 : 맞아요. 한 달에 140만원밖에 못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김대용 : 나이 많은 사람들은 적은 돈 주고도 일 시키기 편하니까요. 고층빌딩에, 일하기 힘든 곳 가 보면 65세 넘은 사람들 많아요.

이순례 : 나이 먹고도 일할 수 있게 정년 좀 늘려 줬으면 좋겠어요. 정부가 주는 돈으로는 못 살아요. 기초연금 주는 것도 얼마나 까다로운지 통장 잔고나 재산이 있으면 안 줘요. 기초연금 받다가 병 나면 병원도 가기 힘들고요. 자식들 주는 돈도 못 써요. 차곡 차곡 모아 놓지.

신지숙 : 맞아요. 먹고사는 게 바빠 가지고, 노후 준비 같은 것 별로 못 했어요. 앞으로 어떻게 살려나 걱정이에요. 우리 같은 서민들, 자식들도 다 사는 게 고만고만하잖아요. 자식에게 손 안 벌리고 살려면 제가 벌어, 제가 먹고살아야죠.

김대용 : 나이가 70살이 넘어도 요즘에는 건강하잖아요. 저는 국민연금이랑 기초연금 받고 있는데, 기초연금은 국민연금 받으면 또 깎여 나오고 그래요. 정년 지나고도 몸만 허락되면 무슨 일이든 해 보고 싶어요. 노는 것보다 나으니까요. 동사무소(주민센터)에서도 노인들 일자리 지원하고 하지 않을까 해요.

▲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노조 만들기 전 10년 넘게 짓눌려
젊은이들 비정규직으로 살아가기 힘들어”

사회 : 투쟁 과정에서 들었던 생각이나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이순례 : 노조 만들기 전에 10년 넘게 짓눌려 살았어요. 젊은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직장에서 고생하지 않고, 최저임금 이상 받으면서 생활했으면 좋겠어요. 나이 먹은 사람들도 해냈으니까 젊은 사람은 더 힘이 있지 않겠어요? 노조도 가입하고, 그래서 자라나는 젊은 세대는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잘 키우는 세상에 살았으면 좋겠어요. 비정규직으로는 아이들이 살아가기가 너무 힘들잖아요.

신지숙 : 노조가 있어야 해요. 우리 큰아이도 이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너무 힘들어했어요. 한 달에 몇 번씩 출장다니는데, 출장비도 제대로 안나오고…. 지금은 다른 직장에 다니지만. 노조가 있는 곳에 다녀야 해요.

사회 : 마포빌딩 출근까지 한 달이 조금 남았네요. 무엇을 하실 생각인가요.

신지숙 : 병원에서 치료 다 받고, 친정엄마 보러 충주에 내려가 보려고요. 7월1일 출근하면 열심히 살아야죠. 일은 해야 해요. 집에 있으니까 게을러져요. 연대도 수시로 해야죠. 받은 게 있으니까요.

이순례 :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 노조에서 연락하면 언제든 연대하러 달려가야죠. 저도 나이도 있고, 몸 건강히 만들고요. 집에 있는 것보다 나가서 일하는 게 더 즐거워요.

김대용 : 찾아뵙지 못한 집안 사람들 볼 생각이에요. 일 시작하면 여행도 가기 어려울 테니, 가족과 여행도 가려고요.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