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동희 공인노무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

필자는 <매일노동뉴스> 4월5일자에 산재보험 제도 문제와 관련해 강순희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에게 질문하는 형식으로 칼럼을 썼다. 이에 대해 강 이사장은 같은달 13일자로 답변했는데, 그의 글을 읽고 공단의 수준과 역량에 대해 심각한 회의가 들었다.

강순희 이사장이 개선된 것이라면서 제시한 산재보험 제도는 모두 필자가 수년간 이 지면을 통해 지적한 공단의 문제 중 일부에 불과했다. 그조차 공단이 주체가 된 것이 아니라 대부분 고용노동부의 지시를 통해 이뤄진 것이다. 공단의 제도개선 몇 가지를 통해 노동자들과 산재 유가족의 어려운 처지와 산재보험의 본질적 문제를 개혁할 수 없다. 강 이사장이 공단과 산재보험의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를 기초적인 문제, 단기·장기적인 문제와 개선과제로 구분해 알려 주고자 한다.

공단은 노동자들이 해고를 감내하면서도 산재신청을 해야 하는 현실적 어려움을 외면하고 있다. 통계만 보더라도 이를 알 수 있다. 한국의 기초적인 산재보험 문제 중 하나다. 지난해 한국의 사고재해 9만2천382건, 질병재해는 1만5천996건이다. 반면 한국과 노동자수가 비슷한 프랑스는 2016년을 기준으로 사고는 63만5천28건, 통근재해 8만8천903건, 질병재해는 4만8천762건이다. 노동자수가 비슷한데도 프랑스 산재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그만큼 한국에서 산재인정을 받기 어렵거나 산재가 숨겨진다는 얘기다. 사업주의 산재은폐와 방해 행위가 심각한 점, 증명 책임이 노동자에게 전가되는 점, 복잡한 서식과 절차를 요구하는 점, 신속한 판정이 없는 점 등에 더해 공단의 불합리한 행정이 겹쳐 한국의 노동자를 더욱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단이 기본적으로 적극적인 행정을 하지 않는 점이다. 지금까지 공단의 보상행정은 자의적 지침에 의해 이뤄져 왔다.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의 권고가 없었다면 지금까지 지침을 공개하지조차 않았을 것이다. 판례가 수년간 축적되거나 노동부 기준 변경이 없을 경우에는 중요한 산재 기준이나 정책을 거의 변경하지 않았다. 단적인 예가 노조전임자의 근로자성 인정 문제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소음성 난청, 뇌심질환, 자살, 직업성 암 등 중요한 산재판결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는 공단이 보험급여지급기관이 아니라 산재판정기관으로 군림하려는 태도에서 기인한다. 난청 인정기준 변경은 전무후무한 50% 이상의 공단 패소율과 국회 국정감사에서의 지속적인 문제제기가 없었다면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다. 변경 당시 공단의 보도자료에서 볼 수 있듯이 자신들의 잘못은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채 “수혜 대상”으로 노동자를 표시했다.

산재보험, 특히 보상에 있어 산재조력 의무 해태시 미처벌 되는 현실, 산재보험 초진소견서 징구제도의 존재, 근골격계 질환 추가상병 신청시 업무관련성 판정이 아닌 임상의사의 판정 및 불승인 남발 문제, 산재보험 비급여 과중 문제, 산재처리 기한의 장기화 문제, 비현실적인 간병료 문제, 휴업급여 지급기준을 일반인으로 간주해 미지급하는 문제, 고령자 휴업급여 감액 문제, 장해특별진찰로 인한 판정의 장기화 및 검사비용 낭비 문제, 요양 중 자살사건을 자문의사 회의에서 처리하는 문제, 유족사건의 높은 패소율 문제, 장기간 소송 이후 공단 패소시 보험급여 지급 지연에 따른 이자 미지급과 미사과 문제, 업무상부상으로 인한 사고 불승인 남발 문제, 진단 오류나 상병 미확인 판정으로 인한 불승인시 주치의사나 의료기관이 아닌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전가하는 문제, 근골격계질환 판정시 형식적 조사와 특진기관의 소견 배제 문제, 뇌심질환 판정시 업무시간과 가중요인에만 매몰된 형식적·비법리적 판정 문제, 자녀 건강손상 패소 판결 이후 후속조치가 전혀 없는 문제,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및 심사위원회 임상의사의 자의적 판정 개입 문제, 질병판정위의 심의·판정 장기화 문제, 질병판정위의 당일 1·2회차 회의 연속 심의로 인한 부실 심사의 문제 등 많은 문제와 과제가 존재한다.

장기적으로 산재보험은 세 가지 방향으로 개혁돼야 한다. 첫째 사업장 내 사고 발생시 산재로 추정해 빠르게 처리해야 한다. 프랑스는 이를 ‘책임추정의 원칙’으로 법제화했다. 노동자가 재해 사실을 알리면, 사업주가 빠르게 산재로 신고해야 할 의무를 부과한다. 재해로 인한 진단이 질병이든 자살이든 가리지 않고 일단 업무상재해로 간주해야 한다. 둘째, 산재 인정기준의 합리화와 추정의 원칙 법제화다. 공단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 시행령을 여전히 제한적 열거주의로 해석한다. 산재보험법상 직업병으로 인정할 수 있는 기준도 빈약하다. 노출 기간, 유해 요인, 업무의 성격 등을 구분하고 매년 직업병으로 인정될 수 있는 기준과 이를 제정할 수 있는 위원회를 법제화해야 한다. 인정기준 충족시 질병판정위 등을 거칠 필요도 없이 신속하게 승인해야 한다. 셋째, 선 보장 후 정산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 질병 산재 사건의 경우 법정 판정 기간 7일 이후에는 공단이 치료비와 노동자의 생활비를 부담하도록 해야 한다.

현재 산재보험은 사업주와 국가의 시혜적인 보험이며, 노동자들의 고군분투 보험일 뿐이다. 노동자들은 연차휴가를 사용하고, 업무상질병 판정을 받기까지 168일 이상의 장기간 무급과 불안정한 상태에서 고통 속에 있다. 이런 문제를 개선해 달라는 노동자들의 요구가 그렇게 외면돼야 하는 것인지 강순희 이사장은 다시 한 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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