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진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남겨진 이들

이재훈씨는 지난 5월8일 아들의 빈소에서 카네이션을 건네받았다. 17일째 냉동고에 싸늘한 시신이 돼 있는 아들 고 이선호씨를 대신해, 밤낮으로 장례식장을 함께 지키던 아들의 친구들이 ‘어버이날’을 맞아 건넨 꽃이었다. 아들의 친구들과 이재훈씨는 선호씨의 산재사망을 계기로 진상규명을 위해 싸우는 동지가 돼 가고 있었다.

4월22일 청년노동자 선호씨는 아버지 이재훈씨와 함께 일하던 평택항 부두에서 죽음을 맞았다. 선호씨는 개방형 컨테이너 해체작업에 보조업무로 투입됐다가 갑자기 내려앉은 컨테이너 상판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언론을 통해 익히 알려진 것처럼 ‘안전교육’도, ‘안전보호구’도, ‘안전수칙’도 ‘안전관리자’도 없는 곳에 투입됐던 선호씨는 그렇게 만 23세의 나이에 세상과 이별했다.

평소 ‘삶의 희망’이라고 아들 전화번호를 저장하고 있었던 아버지 이재훈씨는 그날 이후 송두리째 삶의 희망을 빼앗겼다. 5월6일 평택항 신컨테이너 터미널 앞 기자회견장에 선 이재훈씨는 힘겹게 입을 뗐다. 그리곤 “아들을 빼앗긴 입장에서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아들 죽음의 진상규명을 위해 싸우겠습니다”라고 다짐 또 다짐했다. 그렇게 유족은 투사가 돼 가고 있었다.

이들을 싸우게 만드는 것은 누구인가

누군가를 잃은 아픔을 위로받고, 황망한 마음을 추스르기에도 부족한 이들은 이렇듯 ‘사과, 진상규명,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하며 ‘고 이선호 노동자 산재사망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나섰다.

한해 2천400명이 산재로 목숨을 잃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무수히 많은 숫자 중 하나로 기억되거나 잊혀서는 안 되는 ‘사회적 죽음’이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만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산재사망은 그 자체로 사회적 죽음이다. 그러나 한 명 한 명 우리와 함께 얼마 전까지 이 세상을 살아 내던 이들의 죽음은 단지 숫자로만 기억되고 있을 뿐이다. 고인의 지난 삶을 세상에 온전한 형태로 드러내고, 그가 얼마 전까지 생존해 있는 우리와 다를 바 없었던 존재였음을 각인시키는 과정이 없다면 말이다. 애도와 추모를 넘어 ‘산 자를 위한 투쟁’을 전개하는 과정은 이렇듯 산산조각난 가슴을 부여잡고, 밭은 숨을 내쉬며 한 발 한 발을 내딛는 것이다. 특히 피해자이자 희생자인 고인의 죽음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 ‘책임있는 사과’ ‘재발방지 대책’을 만들어 내는 과정은 켜켜이 가로막힌 벽을 마주하며 진행된다. 법·제도와 권력기관을 상대하는 일은 그래서 버겁다. 고 이선호 대책위도 이런 벽을 넘고 부수며 나아가고 있다.

말의 무게

지난 주말 이선호씨의 장례식장에는 많은 이들이 방문했다. 원청사인 주식회사 동방의 사장과 감사 등 관계자들, 고용노동부 관계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과 평택시의원, 평택항만공사 관계자, 청와대 비서관까지 빈소를 방문해 애도의 뜻을 전했다. 모든 노력을 하겠다고 말했다.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만큼 한없이 가벼울 수도, 한없이 무게를 가질 수도 있는 것이 또 있을까. 책임 있게 응하겠다는 ‘말의 무게’에 합당한 행보를 다하는지를 지켜볼 일이다.

철저한 진상규명 위해 특별감독을

선호씨의 죽음이 알려지며 많은 이들이 분노하고 있다. 특히 철저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필요성에 대한 공감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선호씨가 사망하게 된 과정과 정황 등 사실관계조차 제대로 드러나거나 밝혀지지 않았다.

몇 가지 질문을 해 보면 다음과 같다. 사고 직후 법적으로 아무 책임이 없다고 했던 원청인 동방의 하청노동자에 대한 업무지시는 얼마나 일상적이고, 관행적이었나? 안전보건관리 체계는 어떻게 마련돼 있었는가? 왜 사고 발생 직후 응급구조보다 회사에 보고하는 것이 우선이었는가? ‘작업표준서’에 따른 작업절차는 어떻게 돼 있는가? 당일 업무는 절차대로 진행됐는가? 절차가 생략됐다면, 무엇 때문인가? 평택항의 응급구조 대응 체계는 어떻게 마련돼 있는가? 매뉴얼은 있는가?

질문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더 많은 질문이 남아 있고, 이에 답변해야 한다. 사고 발생 이후 노동부의 중대재해 조사가 있었지만, 그 결과만으로 이 질문에 답변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특별근로감독을 즉각 실시해 진상규명을 위한 절차에 제대로 착수해야 한다. 여건은 충분하다. 나머지는 노동부 의지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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