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노동절이다. 특수고용직과 프리랜서처럼 노동자인데도 노동자로 불리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근로자의 날을 노동절로 바꾸는 내용의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근로자의날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지난달 법안 처리를 강조했지만 논의조차 진행되지 않고 있다. 노동, 그리고 노동자의 이름을 되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를 들어 봤다.

‘작가’라는 허울로 감춰진 노동이라는 이름
김한별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장

▲ 김한별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장
▲ 김한별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장

방송작가라는 직군이 만들어진 이래로 방송작가는 늘 프리랜서였다. 방송사에서는 줄곧 작가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과연 정말 그런 것인지, 이 글을 읽는 당신께 함께 생각해 보길 권한다.

방송작가는 프로그램이 송출되기까지 기획·촬영·편집 등 전 과정에서 역할을 담당한다. 연결된 모든 스태프와 긴밀히 소통하고 유기적인 팀으로 협업한다. 개인 방송을 만드는 것이 아니기에 당연히 방송사에서 원하는 아이템으로, 원하는 구성으로 만들게 된다. 이 과정에서 방송을 책임지는 정규직 PD의 지속적인 업무 지시가 이뤄짐은 당연하다.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고, 정해지지 않아도 모든 방송 프로그램은 송출일이 정해져 있다. 이 날짜를 역산해 짜여진 일정에 따라 작가들의 업무 순서와 내용도 정해지는데, 그에 따라 업무 장소와 시간도 함께 결정된다. 또한 출근하지 않더라도 늘 방송과 관련된 현안에 대처할 자세가 돼 있어야 한다. 이 또한 엄연한 대기시간이다.

방송작가들과 비슷하게 일하는 PD와 기자는 근로기준법 내 다양한 제도로 본인의 업무 내 재량권을 보장받고 있다. 그런데도 오직 방송작가만 프리랜서여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방송사는 그동안 ‘작가’라는 허울 좋은 타이틀로 작가 스스로 근로 실질을 제대로 보지 못하도록 눈을 가려 왔다. ‘글 쓰는 작가=프리랜서’라는 쉬운 도식으로 대부분 20·30대 여성인 이들을 저렴하게 착취해 온 것이다. 세상 어느 나라에도 이렇게 일하는 ‘방송작가’는 없다.

이런 현실에서 방송사가 노동절 특집 방송을 만드는 위선에 대해 이제 방송사와 정부가 답해야 한다. 최근 MBC에서 일한 방송작가 두 명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았고, 노동절 선물처럼 지상파 3사 보도·시사교양 방송작가들을 대상으로 한 근로감독이 시행되고 있다. ‘비정규직 백화점’이라는 오명에도 보도하지 않을 권력으로 내부 노동 참사에 눈감아 온 방송사가 진정 반성하고 다시 태어날 마지막 기회다. 방송사가 감춘 ‘노동’이라는 이름을 되찾기 위한 방송작가들의 투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대형마트 온라인 배송기사가 노동자인 이유
허영호 마트노조 조직국장
 

▲ 허영호 마트노조 조직국장
▲ 허영호 마트노조 조직국장

대형마트에는 온라인 배송기사들이 있다. 배송기사들은 고객들이 온라인으로 주문한 상품을 고객의 집 앞까지 배송하는 일을 한다. 대형마트의 유니폼을 입고 대형마트의 상품을 배송하기에 고객들은 당연히 마트 직원으로 여긴다. 하지만 대형마트와 운송사는 자기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배송기사가 노동자라는 것을 부인하고 있다.

배송기사들이 노동자인 이유는 우선, 대형마트로부터 실질적인 지휘·감독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배송기사들은 업무를 조절할 권한이 없다. 돈을 더 벌고 싶다고 일을 더 할 수도, 힘들다고 일을 적게 할 수도 없다. 대형마트에서 나오는 대로만 배송을 해야 하며 정해진 배송건수를 대형마트가 일방적으로 늘려도 거부할 수가 없다. 배송시간도 정해져 있는데 빨리 가면 조기배송, 늦게 가면 지연배송이 되고 이는 평가에 반영된다.

대형마트의 복장 규정도 준수해야 한다. 고객에게 친절할 것도 강요받는데 고객 불친절 클레임이 3번 나오면 계약해지 당할 수 있다. 차량에 대한 규제도 있다. 해당 마트의 로고 외에는 다른 부착물을 부착할 수 없으며 배송업무 외에는 허락을 받고 차를 사용해야 한다. 심지어 자기 차량인데도 출퇴근시 차량을 이용하려면 허락을 받아야 한다.

대형마트에 대한 전속성이 매우 강한 것도 배송기사가 노동자인 이유다. 배송기사들은 마트 배송을 위해 하루에 10시간 이상, 주 6일을 일하기 때문에 마트 배송시간에는 다른 일을 할 수가 없다. 배송기사들의 일과와 수입에서 대형마트 배송업무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최근 대형마트가 온라인에서 활로를 찾으면서 배송은 이제 핵심업무가 됐다. 배송기사가 없는 배송이란 있을 수 없는 만큼 배송기사들은 대형마트의 핵심업무를 하는 노동자다. 그리고 고객을 대신해 장을 보는 피커들은 노동자인데 이를 배송하는 기사들은 노동자가 아니란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동안 온라인 배송기사들은 개인사업자라는 이유로 자기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착취당해 왔다. 이제라도 이들을 노동자로 인정하고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고 보호해야 한다.

드디어 받게 된 가사노동자 명함
최영미 한국가사노동자협회 대표
 

▲ 최영미 한국가사노동자협회 대표
▲ 최영미 한국가사노동자협회 대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안 제정안이 의결됐다. 비정형 노동 가운데서도 개인 가정에 들어가서 일하는 가사노동자들에 대한 보호 물꼬를 튼 셈이다. 2010년 근로기준법 개정을 논의할 때에는 적용 범위에서 가사사용인을 배제한 11조를 개정하는 방향으로 안을 냈다. 그런데 근기법 개정 자체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지점도 있었지만 개정되더라도 문제가 있었다. 가사노동자를 고용한 개인이 사용자 위치에 놓인다는 점이다. 개인이 사업자등록을 하고 사용자 책임을 져야 하는 거다. 외국에서도 풀지 못한 문제다. 가사노동자 문제가 국제 노동계 마지막 이슈로 불리는 이유다. 개인과 개인에게 갈등을 맡기는 꼴이 된다. 여성 대 여성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개인에게 떠넘기지 말고 제공기관이라고 하는 기업을 만들어서 고용하게 함으로써 현재 법들을 적용하게 하고, 이용자들과의 갈등도 회사가 나서서 중재하는 책임을 지도록 방향을 바꿔서 주장을 해 온 이유다.

이번 법제정은 제공기관이라고 하는 것을 인증하고 양성화를 인정함으로써 개인 간 거래에 머물렀던 가사서비스를 양성화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근기법 몇 개 조항이 제외되기는 하지만 적용을 통해 노동환경 질서를 새롭게 만들어 냈다는 점도 평가할 만하다. 입주가사노동자에 대한 규정도 중요하다. 90%가량이 중국동포들인데 이들은 가사노동이 그림자노동이라는 이유로 외국인 노동자 정책에서도 배제돼 온 탓이다.

법 하나로 모든 게 바뀔 수는 없다. 다만 가장 크게 아쉬운 점은 공익적 제공기관 육성방안이 빠진 점이다. 새로 만들어지는 시장에서 공익적 기관, 사회적 협동조합을 인정해 줌으로써 일반 기업을 끌어갈 수 있는 모범을 보였어야 한다. 이게 빠진 것에 대해서는 유감이다.

이번 법제정은 가사노동자에게 명함을 준다는 의미가 있다. 소속감과 명함을 준다는 것은 곧 자부심이 올라간다는 의미다.

노동존중은 노동·노동자를 인정하는 것부터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근로자의 날은 메이데이(May Day)에서 유례하고 있다. 메이데이는 1886년 미국 노동자들이 하루 8시간 노동 쟁취를 위해 투쟁했던 5월1일을 기념하고자 1889년 7월에 제정돼 현재 세계 다수 국가에서 기념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노동자단체들이 해방 후부터 1957년까지 이날을 메이데이라 부르며 기념해 왔다. 그러나 1963년 제정된 옛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근로자의날법)로 인해 3월10일을 기념하기도 했다. 그러다 1994년 3월 다시 개정해 5월1일로 변경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근로(勤勞)는 일제 강점기부터 사용돼 온 용어로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부지런히 일함”으로 정의돼 있다. 국가 통제의 의미가 담긴 단어라 지적받는 이유다.

근로를 “몸을 움직여 일을 함”으로 정의되는 노동(勞動)이라는 가치중립적 의미를 담은 용어로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미 상당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오늘날 대부분 일상에서 ‘노동자’라는 말을 쓰고, 정부 부처 명칭도 ‘고용노동부’다.

21대 국회 출범 후 1호 법안으로 근로자의 날을 노동절로 바꾸는 근로자의날법 전부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최근에는 노동절에 교육공무원을 포함한 공무원에게도 유급휴일을 부여하도록 하는 법안 발의에 참여하기도 했다. 현행법상 근로라는 용어 전체를 노동으로 바꾸는 내용의 법안도 발의했다. 근로기준법을 노동기준법으로 바꾸고, 그에 따라 법률용어도 노동시간·노동감독관 등으로 바꾸자는 취지다. 나는 이것을 노동자 이름 찾기법이라고 부른다.

노동존중의 시작은 노동과 노동자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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