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명교 플랫폼C 활동가

지난 4년간 늘어난 국방 예산을 보면 과연 문재인 정부가 ‘평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의구심이 생긴다. 문 정부 시기 매년 국방 예산은 평균 7% 늘어났는데, 이는 과거 정권들의 국방비 증가액 4.1%보다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지난해 국방부가 발표한 ‘2021∼2025년 국방중기계획’에 따르면 앞으로 5년간 300조원의 예산을 쏟아부을 예정이다. 이런 추세로 5년 후인 2026년에는 70조원 가량을 국방비로 첨단 무기를 구매하는 것에 소모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세 배 수준 경제 규모를 지닌 일본에 근접하는 군비다. 물론 이는 대부분 ‘자주국방’이라는 명목이다.

문제는 ‘자주국방’이 얼마나 효용성 있고 실제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강요된 동아시아 질서에서 동아시아 각국 민중은 항상적으로 전쟁 위기의 불안에 시달려 왔다. 문재인 정부는 이런 체제를 극복하고 동아시아 평화질서를 위한 ‘신한반도 체제’를 구축하겠다고 표명해 왔다. 문제는 ‘자주국방’ 노선 이행이 낳는 실질적 효과와 ‘신한반도 체제’라는 포장이 충돌한다는 데 있다. 군비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리고 전쟁연습을 지속하면서 남·북 관계의 포용으로 나아가겠다는 상대를 대체 누가 신뢰하겠는가.

최근 들어 북한 김정은 정권이 우리 정부를 비난하고 미사일 도발을 저지른 것은 이와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트럼프 미 대통령·문재인 대통령과 연달아 정상회담을 가진 김정은 국방위원장은 2018년 모든 미사일 실험을 중단한 바 있다. 하지만 하노이 회담 파국 이후 싱가폴에서 맺은 약속들이 희미해지자 미사일 실험은 재개됐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북한이 새로 개발한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용 고체연료 엔진 미사일은 발사 속도가 빠르고, 발사체의 운반이 용이하며, 타겟팅은 더 어렵다. 더구나 남한의 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혼란에 빠뜨릴 수 있는 더 높은 정확성과 회피 기동력을 갖고 있다.

문제는 이런 악무한의 군비경쟁이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불안에 빠뜨린다는 사실이다. 세계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서 빠져나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 점점 더 높은 비중의 세금을 군비 증강에 쏟아부으면, 정작 우리 삶을 증진시키고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필요한 예산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 거대 양당과 행정관료 체계는 빈곤층 복지를 확충하기 위한 개혁에 대해서는 소극적이다. 코로나19 이후 K자형 양극화가 뚜렷해지는 상황에서 막대한 규모의 세금을 군비에 쏟아붓는 것은 노동자들의 일상에 하등 좋을 게 없다.

이는 북쪽 민중에게도 마찬가지다. 주지하다시피 북한은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하에서 경제 봉쇄를 당하면서, 불평등한 독재 체제를 유지해 왔다. 국내총생산 대비 군비지출 비중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 이런 상황에서는 ‘고난의 행군’이 언급될 정도로 빈곤에 허덕이고 있는 현실을 벗어날 수 없다. 남의 군비 증강과 북의 핵무기 몰입은 고통을 가중시킨다.

동아시아에서의 군비 경쟁은 비단 한반도만의 문제는 아니다. 16일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스가 일본 총리는 정상회담 후 공동 성명을 통해 “일본은 동맹과 지역 안보를 더욱 강화하기 위해 자국의 국방 능력을 강화할 것”을 강조하고, “미국은 핵무기 등 모든 능력을 동원해 미·일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일본의 방위에 대해 확고하게 지지할 것”임을 확인했다. 또 ‘대만 해협’과 ‘센카쿠 열도’를 언급했는데, 이는 동아시아의 긴장을 첨예하게 고조시킬 것이다.

최근 일본은 스텔스 전투기 ‘F35B’를 센카쿠 열도와 가까운 미야자키현에 재배치하고, 신형 함선 진수와 사이버전 부대 발족, 합동군사연습 실시 등 동북아시아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행위에 적극 가담해 왔다. 일본 정부는 이번 미·일 공동성명을 계기로 군비증강 계획을 업데이트하고 있다.

남쪽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분쟁 지역으로 구분된 섬과 암초로 가득한 남중국해에 위치한 둥샤군도는 대만이 실효 지배하고 있는 곳인데, 지난 2월 대만 정부가 둥샤 공항 활주로 확장 공사를 결정한 이래 긴장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둥샤군도 방공식별구역에 연일 10여기의 전투기와 무인드론을 보내고 있고, 대만군은 4월25일과 5월5일 군사 훈련을 예고하고 있다. 이에 더해 미국과 중국 양국은 남중국해 일대에서 항공모함을 동원한 군사 훈련을 펼치고 있다.

이처럼 동아시아에서 전쟁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할까. 우선 각국의 군비경쟁이 우리의 삶을 개선시키는 것과는 완전히 무관한 일이라는 걸 자각해야 할 것 같다. 치솟는 군비 경쟁과 전쟁 위기 속에서 파괴되는 것은 대다수 사람들의 일상이다. 둘째, 작금의 위기가 정치 엘리트들과 외교관들에게 기대기만 해선 나아지기 어렵다는 걸 인식해야 한다. 노동조합이 나서서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민간부문 국제연대 활동을 해야 한다. 셋째, 시야를 한반도에 국한시키지 않고 동아시아 전역으로 넓히고, 남·북 통치 엘리트들의 결정과 오판을 비판적으로 해설하고 노동자운동의 자주적인 입장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앞서 서술했듯 오늘날 동아시아 각국 정부는 군비 증강에 몰두하고 있고, 이는 노동자들의 처지와는 거리가 멀다. 가령 소위 ‘민주 정권’에서 심화하는 군비 증강 문제나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중국의 천문학적 국방 예산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하고, 동아시아 각국 사회운동을 연결하고 공동으로 실천해야 한다. 그래야 진정 노동자의 시선으로 동아시아의 평화를 이야기할 수 있다.

남이든 북이든 현재 어느 정부도 노동자·민중을 위한 정부가 아니라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그러니 노동조합답게 평화를 이야기하려면, 우리의 실천도 현실에 맞게 뜯어고쳐야 한다.

플랫폼C 활동가 (myungkyo.h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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