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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부가 숙련도가 높은 건설기능인에게 초급 건설기술자 대우를 해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노동계는 “기능인등급제 취지에도 맞지 않고, 관련 단체들과도 협의하지 않았던 내용”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19일 건설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국토부는 다음달 건설 기능인등급제 시행을 앞두고 제도 활용방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건설기능인 등급과 건설기술자 등급을 연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건설기능인은 현장에서 몸을 이용해 일하는 노동자, 건설기술자는 토목기사·산업기사와 같이 설계를 비롯한 사무 업무를 하는 노동자다.

노동계 “건설기능인을 기술자 밑에 놓겠다는 거냐” 반발

기능인등급제는 건설기능인의 경력관리를 지원하기 위해 현장 경력과 자격증·교육훈련·포상을 비롯한 요소들을 반영해 초급·중급·고급·특급 등 4단계로 구분하는 제도다. 건설기능인의 경력을 종합적으로 관리해 주고 기능인력의 직업전망을 제시해 더욱 안정적인 건설 일자리를 조성하자는 취지의 제도다. 2019년 건설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건설근로자법) 개정으로 법적 근거를 마련한 뒤부터 도입 논의에 속도가 붙었다. 국토부는 제도 도입을 앞두고 건설업계와 노동계를 비롯한 20여개 단체와 협의체를 구성해 제도 운영방식과 기준을 논의해 왔다. 다음달 27일 시행 예정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기능인등급제는 다음달 시행하고, (세부적인) 활용방안은 이후 시범사업을 거쳐 적용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그런데 기능인등급제 활용방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국토부는 숙련도가 높은 건설기능인에게 초급 건설기술자와 비슷한 역할과 지위를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토부 관계자는 “건설기능인들의 실제 현장 경험을 관리자 (업무)에 접목할 수 있을 것 같아 해당 방안을 도입하려고 한다”며 “아직 확정된 건 아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기능인과 기술인을 연계하는) 활용방안은 (다음달에 기능인등급제를 시행한 뒤), 시범사업을 거쳐 단계적으로 도입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건설기술자 등급은 초급과 중급·고급·특급으로 구분돼 있다.

“20년차 회계사에게 변호사 초급 자격증 주겠다는 꼴”

노동계를 포함한 업계 일각에서는 기능인등급제와 기술자등급제를 연계하는 방안에 우려를 표했다. “도입을 위해 2~3년 동안 관계자들이 본격적인 논의를 했는데, 시행을 코앞에 두고 다 된 밥에 재 뿌리는 것이냐”는 비판도 나왔다.

노동계는 특급 건설기능인을 초급 건설기술자로 분류하는 것은 기능인을 기술자의 하위개념으로 치부하는 것과 같다고 비판한다.

육길수 건설산업노조 사무처장은 “정부 검토안은 회계사를 20년 하면 변호사 말단 자격증을 주겠다는 것과 비슷하다”며 “회계사와 변호사의 업무 영역이 다른 것처럼 기능인과 기술직의 업무 영역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능인이 일정 등급이 되면 기술직 밑으로 놓겠다는 것은 기능인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부안이 기능인등급제의 취지를 훼손한다는 지적도 했다. 심규범 건설근로자공제회 조사연구센터장은 “고급·특급 수준의 기능인이 기술자 초급보다 더 잘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음에도 기능인력은 시공 중에 얻은 경험을 체계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며 “공사가 제대로 이뤄지게 하기 위해 잘할 수 있는 사람(기능인)에게 그 일을 맡기고 건설기능인에게 직업전망도 보여주자는 취지로 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데 정부안은 이와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노동계는 정부가 기술자들의 입장을 반영한 안을 검토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했다. 노동계에 따르면 발주자가 전문건설업체를 대상으로 공사를 입찰할 때나 건설업을 등록할 때 기술인을 특정 숫자 이상 보유해야 한다. 그런데 노동계는 기능인등급제를 도입하면서 기능인도 보유기준에 포함되도록 시행령 개정 등을 추진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 경우 그동안 기술인들이 누리던 독점적 지위가 깨지면서 이들의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

노동계는 국토부가 협의체에서 관련안을 논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추진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송주현 건설산업연맹 정책실장은 “국토부가 해당안을 시행한다 하더라도 협의체와 논의를 거쳐서 진행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논의를 하지 않았다”며 “정부가 협의체와 논의도 없이 이익단체인 기술자협회의 입장을 소원수리하듯 받아 추진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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