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명진 한국노총 플랫폼노동공제회 추진단 본부장

‘함께 구제한다’는 뜻의 공제(共濟)는 ‘길드’나 ‘계’와 같이 사람들이 공동체를 꾸리고 협동하며 살아온 역사의 곳곳에서 그 원형을 찾을 수 있다.

노동자 공제사업도 이미 자본주의 형성 초기부터 시작됐다 한다. 우리나라도 1920년 조선노동공제회가 최초의 전국적 노동단체로 설립됐다. 해방 이후에도 여러 현장 노조들이 소비조합과 신협을 운영하며 공제사업을 진행한 역사가 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노동조합운동의 변혁적 역할이 강조되고, 노동권 향상으로 노조활동이 교섭을 통한 임금인상에 집중되면서 ‘공제’는 노동운동에서 잊혀진 과거가 됐다.

그런데 최근 들어 노동자공제회 설립이나 기존 노동자조직이 공제사업을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대개는 노사교섭이나 노조 조직화가 어렵다고 인식되는 소규모 사업장, 비공식 경제영역 또는 비정형적 고용형태 노동자가 대상이다. 열악한 처우와 불안정한 고용상태에 있으면서도 노동관계법과 사회보험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 스스로 취할 수 있는 최소한의 보호망이 상호부조 방식 공제회인 것이다.

하지만 경제적으로도 취약한 노동자가 각출한 회비만으로는 다른 전문직종 노동자공제회와 같은 보호기능을 갖추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 이에 노동자협동조합운동을 초기부터 지원해 온 사회적경제 조직들이 노동공제운동의 마중물 역할을 자임하며 조직노동의 적극적인 참여와 연대를 요청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노총은 올해 핵심사업의 하나로 플랫폼노동공제회 설립을 추진하며 미조직·비정형 노동자의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플랫폼 노동을 비롯한 비정형노동의 확산에 본격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운동 전략의 일환이다.

공제회 사업은 노조로의 조직화 가능성과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노동력의 안정적 공급과 표준화를 위한 지휘·통제의 메커니즘이 ‘디지털 플랫폼’에서도 본질적으로 존재한다면 플랫폼기업에게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지우고 ‘노무제공자’에게도 노동권을 부여하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노동법을 확장함으로써 플랫폼 노동자에게도 보편적 근로기준과 노조를 통한 교섭과 행동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 한국노총의 기본 입장이다.

다만 현 시점에서 공제회를 주목하는 이유는 비정형 노동자 조직화 경로의 현실성과 보호망 마련의 시급성을 놓고 볼 때 공제회가 유력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노동관계법과 사회보험의 실제 적용이 이뤄지기까지 시차가 존재할 것이니만큼 그 과정에서 공제회가 보완장치로 작동할 수 있고, 여러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다층적 보호망으로서도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분산화돼 개별적으로 일하는 노동자 스스로 조직화할 수 있는 계기와 자원을 마련하는 역할도 기대한다.

아직은 다양한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는 준비 단계다. 여러 현실적 어려움도 예상되지만, 노동운동의 영역을 확장하는 돌파구이자 거점이 될 수 있도록 공제회를 꾸리고 가꾸고자 한다. 노동공제회 운동을 추진하고 있는 조직들과 노동시장 변화에 대한 노동운동의 능동적인 대응전략을 고민하는 활동가들의 논의와 연대가 확산하길 바란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