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프리랜서 마켓’을 내세운 ‘크몽’은 요즘 가장 주목받는 노무중개 플랫폼이다. 크몽은 스스로의 소개처럼 “온라인 쇼핑몰에서 물건을 사듯 디자인, 프로그래밍, 통·번역, 레슨, 주식투자까지 전문가 스킬을 사고파는 온라인 플랫폼”이다. 지난해 12월 기준 누적 거래수가 180만건을 기록하면서 높은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그만큼 전문기술을 지닌 프리랜서 노동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뜻이다.

안창용(37·사진) 프리랜서협동조합 이사장은 “크몽 같은 프리랜서 마켓 앱이 등장하기 전에는 네이버나 다음 같은 포털에 ‘카페’ 형태로 자발적인 커뮤니티가 존재했고, 그 안에서 구인구직이 이뤄졌다”며 “지금 같은 구조에서는 프리랜서는 계속 늘어날 수 있고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조직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프리랜서협동조합은 수년 전부터 논의되다가 지난해 12월 창립총회를 열고 올해 2월 설립했다. 사회적기업 인가를 앞두고 예비 조합원들을 모집하고 있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1일 오후 여의도에서 안 이사장을 만나 프리랜서 노동자들이 ‘협동조합’으로 뭉친 이유를 들어봤다.

- 어떻게 프리랜서협동조합을 만들게 됐나.
“지금은 방송 촬영감독으로 일하지만 먹고살기 위해 안 해 본 일이 없다. 디자인도 하고 사진 촬영도 하고 대필작가도 했다. 에세이도 쓰고 자유기고를 납품하기도 하고 상품 페이지에 글을 쓴다거나 하는 재능 위주 프리랜서 일을 닥치는 대로 했다. 콘텐츠 제작 분야라면 가리지 않았다. 그러면서 부당한 일을 많이 겪었다. 나와 같은 프리랜서들이 뭉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고 협동조합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프리랜서 보호 넘어 권리 찾기
벨기에 스마트협동조합 모델 ‘지향’

- 노조나 협회가 아니라 협동조합 모델을 택한 이유가 있나.
“프리랜서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다. ‘건당 페이’를 받는 인생이다. 세상을 바꾸자고 해도 당장 내 일에 피해가 간다면 모이기가 힘들다. 서로 같은 일을 하는 동료이기도 하지만 시장에서 경쟁자이기도 하다. 자신의 전문성과 일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데 출자형식의 협동조합이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델은 벨기에 스마트(Smart)협동조합이다.”

- 스마트협동조합은 어떻게 운영되나.
“스마트협동조합은 예술가가 본인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자조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보통 프리랜서들은 구두계약으로 일을 한다. 그런데 스마트협동조합은 ‘대행 계약’ 방식으로 발주자와 문서계약을 맺는 공동사업을 한다. 우리도 ‘대행 계약’ 사업을 통해 프리랜서인 조합원을 단기고용한다면 사회안전망 안으로 끌어올 수 있다. 스마트협동조합은 또 지역·분야별로 교육·컨설팅·사업팀을 두고 있는데, 역량 있는 프리랜서들을 묶어 사업 컨설팅을 하고 소규모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프리랜서는 일이 있는 곳에서 필연적으로 모인다. 협동조합이 사회보험이나 상조회 같은 역할에 머문다면 후원금에 고마워하면서 죽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영세한 단체에 그칠 수 있다. 단순히 프리랜서를 보호하는 역할을 넘어 자체 사업을 가져야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프리랜서를 원해서가 아니라
프리랜서로 일할 수밖에 없는 시대

- 코로나19를 거치면서 프리랜서가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프리랜서 노동권에 대한 시선도 달라지고 있다.
“종속된 근로자는 보호하는 법이 있다. 사용자에게 종속돼 있기 때문에 근로기준을 정하고 고용주에게 지키라고 한다. 프리랜서는 사실 ‘프리’하지 않다. 클라이언트에게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클라이언트는 프리랜서와 계약을 할 때 보통 ‘창의적인 방식’을 요구한다. 그리고 창의적으로 만들어 납품하면 자기들 기준에 안 맞는 건 다 없애고 바꾼다. 사실 자기들이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데 그게 없으니까 일단 일을 시켜 놓고 잘라 내는 방식을 쓰는 거다. 요즘 문제가 되는 ‘페이크 프리랜서’들은 종속 근로자처럼 출퇴근도 한다. 과거에는 프리랜서가 업계의 표준을 만드는 ‘장인’ 같은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프리랜서를 원해서 프리랜서가 되는 시대가 아니다.”

- 프리랜서를 원하지 않았지만 프리랜서가 될 수밖에 없다는 말인가.
“경제위기와 정부 청년일자리사업 실패로 대학을 졸업해도 갈 곳이 없다. 반면 전문적인 기술을 습득하기가 예전보다 쉽고, 일을 시작하기도 쉽다. 방송 영상만 놓고 봐도 예전엔 2천만~3만천만원짜리 고가 장비가 필요했고 일자리를 소개하는 곳도 한정돼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저가의 카메라로도 충분히 영상을 만들 수 있고 유튜브 동영상으로 3~4개월만 배워도 크몽이나 오투잡같이 프리랜서 플랫폼을 통해 일을 시작할 수 있다. 처음부터 프리랜서를 꿈꾸며 일을 시작하는 게 아니라 일을 시작할 수 있는 길이 프리랜서인 거다.”

- 플랫폼 노동자와 함께 프리랜서 노동자 보호에 대한 사회적 압력이 점점 커지고 있다.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프리랜서·외주부터 잘렸다. 나도 그사이 힘든 시기가 있었다. 1~2개월만 버티면 대금이 들어와서 괜찮은데 그 1~2개월을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대출을 받고 싶고 실업급여를 받고 싶었다. 하지만 은행들은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대출을 거부해 결국 3금융권을 알아봤다. 실업급여를 받는 사람은 배달음식 한 번 덜 시키고 허리띠 졸라매면서 잠시라도 버틸 수 있다. 그런데 프리랜서는 공과금도 내야 하고 자기 장비 운영을 위한 월 유지비도 상당하다. 이걸 잠깐 버틸 비용이 없어서 무너지는 것이다. 비빌 곳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실감했다.”

“폭발적 성장한 프리랜서 플랫폼 권력화
목소리 대변할 조직 있어야”

- 프리랜서 플랫폼 시장이 커지면서 플랫폼의 횡포나 갑질도 문제로 떠오를 것 같은데.
“대부분 플랫폼의 계약조건은 클라이언트와 프리랜서가 서로 직접 연락할 경우 위약금을 물고 영구 제적이라는 페널티를 준다. 전화나 이메일도 주고받을 수 없고 플랫폼 안에서 쪽지로 해야 한다. 일하는 것보다 소통하는 게 더 어려운 구조다. 그렇다 보니 건당 100만원 이하로 가격이 크지 않은 업무들이 주를 이룬다. 그런데 점점 규모가 커지고 있다. 그곳으로 쏠리고 있는 것이다. 권력화되고 있다. 여기에 맞서 일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조직이 분명 있어야 한다.”

- 프리랜서협동조합의 앞으로 계획이 궁금하다.
“사회적기업으로 인가를 받는 게 가장 시급한 목표다. 프리랜서가 할 수 있는 사업들을 모두 망라하는 사회적기업을 만들려고 하는데 이런 전례가 없다고 하더라. 인가를 받으면 우리를 알리고 조합원들을 모아 사회안전망을 확보할 수 있게 목소리를 낼 것이다. 조합원이 된 프리랜서들에게 스킬을 향상할 수 있는 교육사업도 하고, 사무공간이나 장비 대여도 저렴하게 할 수 있다. 선배가 후배를 끌어 줄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들도록 돕고 업무공간과 주거공간이 함께하는 센터도 만들고 싶다. 가능하다면 지역별로도 그런 센터들을 만들어서 프리랜서들이 언제든지 일을 배우고 일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프리랜서를 위한 소액대출이 가능하도록 자조기금도 마련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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