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5일 고용노동부를 포함한 관계부처 합동으로 2021년 산재 사망사고 감소대책을 발표했다. 산재 사망사고가 집중하는 건설현장과 제조업 밀착관리가 주된 내용이다. 사망사고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추락사고와 끼임사고를 예방하겠다는 것이다. 노동부의 산업안전보건 분야 기획감독을 이례적으로 공개한 것인데, 산재 사망사고를 2022년까지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과제를 이행할 마지막 기회로 보고 있는 셈이다. 정부의 대책은 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 봤다.

획기적이지 않은 재탕삼탕 대책, 인력·조직 확대하라
조기홍 대한산업보건협회 산업보건환경연구원 실장

▲ 조기홍 대한산업보건협회 산업보건환경연구원 실장
▲ 조기홍 대한산업보건협회 산업보건환경연구원 실장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과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으로 어느 때보다 산업재해 예방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럼에도 산업현장에서는 여전히 중대재해가 발생하고 있다. 산재예방 업무를 담당하는 고용노동부 관료와 예방사업을 전개하는 안전보건공단 전문가들이 발에 땀이 나도록 현장을 지도·감독하고 각종 지원사업을 전개하고 있는데도 산재는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지 않다.

산재사망 등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온갖 질책과 비난이 쏟아진다. 이처럼 노력을 하는데도 왜 산재 사망사고 등이 줄어들지 않는 것일까. 안타깝고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노동부가 25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마련한 ‘21년 산재 사망사고 감소 대책’을 발표했다. 사망사고를 실질적으로 감축시키기 위해 건설업과 제조업 등의 사망사고 발생 위험 사업장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안전관리 주체 간 협업을 통해 안전관리 사각지대를 최소화하며, 기업이 스스로 안전보건관리 체계를 구축하도록 적극 지도·지원해 근원적 산재예방 기반을 마련한다는 것이 중심 내용이다.

부처 간 많은 논의를 거쳐 만든 대책에 대해 시행도 하기 전에 평가를 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번 대책이 산재 사망사고를 과연 감소시킬 수 있을까라는 우려가 앞선다. 그동안 정부는 매년 반복적으로 산재 사망사고 감소대책을 발표했지만 노동자의 산재사망은 줄어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2017년 관계부처 합동으로 ‘모든 일하는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고 산업재해를 획기적으로 감소시키기 위한 혁신 방안’을 발표했고, 2018년에는 ‘2022년까지 산업재해 사망자수 절반 감축을 위한 산업재해 사망사고 감소대책’을 내놓았다. 2019년에는 건설업 중심의 산재 사망사고 감소대책을 발표했다.

거의 해마다 관계부처 합동으로 획기적으로 산재를 줄이겠다고 발표했지만 현실은 어떤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했다. 말로만 획기적으로 줄이겠다고 했지 사실 획기적인 내용은 거의 없었다. 과거에 발표했던 내용을 조금 가다듬는 수준에서 회전문식 발표만 되풀이 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대책은 열심히 발표했지만 획기적인 산재사망 감소대책이 어떤 성과를 냈는지, 성과를 내지 못했다면 원인은 무엇인지에 대한 평가는 알 수 없다. 대책만 쏟아낼 뿐 이행 여부에 대한 진솔한 평가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발표한 대책을 보면, 과연 노동부 이외 국토교통부나 환경부 같은 관계부처가 합동으로 대책을 마련했는지 의문이다. 산재사망 감소를 위해 관계부처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어떤 지원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산재사망 감소는 노동부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관계부처 간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업무 협력이 마련돼야 한다.

과거에도 늘 그래왔듯이 이번 대책의 대부분이 지도·감독 강화, 특별관리, 기술지원, 제정지원 등의 내용이다. 그야말로 백화점식 대책이다. 사망재해가 발생하는 기업의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대책은 미흡하다. 원·하청문제, 고용의 문제, 공정계약의 문제 등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이고 실질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또한, 산재 사망사고 감소대책이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동부의 산업안전보건 조직과 인력이 확대돼야 한다. 올해 7월 신설되는 산업안전보건본부조직 내에 안전과 보건·화학물질과를 확대하고 건설·비정규직 노동자의 안전보건을 담당하는 부서를 신설해야 한다. 부족한 산업안전감독관을 증원해야 한다.

정부는 이번 대책이 차질 없이 수행되고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점검할 계획이며, 산업현장의 안전의식과 관행 변화로 이어지고 확실한 사망사고 감축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정부합동으로 마련한 대책이 산업현장에서 제대로 이행돼 우리나라 노동자의 산재 사망 감소 및 중대재해 예방에 기여할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더 이상 양치기 정부가 되면 안 된다.

근본대책 부족해, 산재예방 행정 패러다임 전환해야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안전공학)
 

▲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안전공학)
▲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안전공학)

‘2021년 산재 사망사고 감소대책’을 보면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새로운 대책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새롭다고 무조건 좋은 건 아니지만 본질적인 개선 의지가 보이지 않다는 점에서 실망스럽다. 안전보건 관계자들 대부분이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평가를 할 것 같다.

그간의 산재예방대책에 대한 면밀한 진단과 평가가 이뤄지지 않은 채 현상에 대응하는 미봉적인 대책을 마련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혼을 불어넣은 대목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질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개선계획은 없고 단기처방 일색이다.

철학과 중장기적인 비전하에 수립했다는 느낌도 들지 않는다. ‘김용균법’이라 불린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에서 보였던 철학의 빈곤과 무개념의 정책기조가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

새로울 것도 없는 재탕적 성격의 대책을 범정부 대책이라는 이름으로 거창한 대책인 양 발표한 이유부터가 의심스럽다. 새로운 것은 “사업장이 스스로 안전보건관리 체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가이드를 제작·배포하고 안전보건관리 체계 구축 및 작동 여부를 확인·지도할 계획이다”는 내용 정도다. 이조차도 집행기관부터가 안전보건관리 체계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김용균법’을 통해 개악된 산업안전보건법상의 안전보건관리 체계 문제를 그대로 방치한 채 안전보건관리 체계를 활성화시키겠다는 것은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많은 대책이 실효성에 대한 충분한 고민 없이 종전의 정책을 양적으로 확대하겠다는 내용 중심으로 돼 있다. 물량 위주의 정책을 반복하고 있고 패트롤 점검과 같은 효과 없는 일회성 대책을 개선하겠다는 의지는 엿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기업, 특히 중소기업의 안전보건 수준을 끌어올리려는 콘텐츠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마냥 효과가 의심스러운 재정·기술지원을 확대하겠다는 정책만 보일 뿐이다. 지원사업의 질을 높이는 정책이나 중소기업의 안전보건 역량 제고를 위한 전략과 로드맵은 발견되지 않는다.

현실성과 실효성 없는 법제를 개선하겠다는 대책도 제시돼 있지 않다. 산재예방대책의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법규범의 현장 작동성·실효성을 높이지 않고 산재감소 성과를 과연 거둘 수 있을까.

수요자 관점은 결여돼 있고 공급자 위주의 대책인 것도 문제다. 예컨대 재해예방전문 지도기관 기술지도사업의 경우, 여전히 안전관리의 책임주체인 건설업체가 아닌 컨설팅기관에 지도감독의 초점이 맞춰 있는 점은 방향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수요자가 아닌 공급자를 대상으로 하는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미 드러났는데도 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안전보건관리의 초석이라고 할 수 있는 위험성평가 미실시에 대한 처벌규정을 무력화시키고 형해화시킨 제도적 모순을 그대로 방치하고 재해를 줄이겠다는 것 또한 어불성설이다. 기업의 자율적 안전보건 역량을 높이려는 전략은 없이 타율적인 지도·점검에 의존하는 방식으로는 산재예방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다.

도급작업 안전기준 등 엉성한 법기준을 개선하겠다는 대책은 아예 언급조차 돼 있지 않다. 가장 위험한 작업인 발주공사를 법규제의 공백으로 만들어 놓은 문제를 개선하지 않은 채 무엇을 가지고 감독하고 처벌하겠다는 것인가. 공포탄만 계속 쏘겠다는 것인가. 이런 상태에서는 엄포로 그치거나 무리한 적발에 기대는 잘못된 관행이 개선되지 않을 성 싶다.

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 등 산재예방 행정기관의 역량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역대 어느 정부보다 산재예방 행정에 많은 예산과 인원을 투여하고 있음에도 산재예방 행정의 체질이 개선되고 있지 않은 큰 이유 중 하나로 거칠고 조잡한 산재예방 대책이 꼽히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법·제도 또한 개선은커녕 개악으로 점철되고 있다는 현장의 평가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금번 대책과 같은 접근으로는 고비용 저효과 행정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산재예방 행정의 패러다임 전환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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