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차곤 변호사(법률사무소 새날)

대상판결 : 대법원 2021. 2. 25. 선고 2017다51610 판결

1. 사건의 경과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 유성지회(아산지회·영동지회)가 2011년 1월부터 ‘주간연속 2교대제 도입’과 관련한 특별교섭을 요구하자 유성기업은 노조파괴 전문 노무법인인 창조컨설팅의 자문을 받으면서 노조파괴 시나리오를 가동시켰다. 유성지회가 2011년 5월18일 조합원 찬반투표를 거쳐 파업을 결의하자, 유성기업은 같은날 아산공장에 대해, 같은달 23일 영동공장에 대해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유성기업은 선별적·단계적 업무복귀만을 주장하며 유성지회 및 조합원들의 업무복귀 요구를 거부한 채 2011년 8월21일까지 직장폐쇄를 지속했다. 2011년 7월1일부터 법률상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가 허용됨에 따라 유성기업은 어용노조인 유성기업㈜노조(2노조)를 설립하고 2노조가 과반수의 조합원을 확보해 교섭대표 노조가 되게 함으로써 유성지회를 무력화시키거나 와해시킬 방법을 기획했다. 유성기업은 2011년 7월2일 노조 출범과 관련해 2노조의 규약, 노조설립 신고서, 창립총회 의사록의 초안을 작성해 주는 등 2노조의 설립에 개입했다. 직장폐쇄가 철회된 이후 유성기업은 유성지회 조합원들에게 연장근로 및 휴일특근 기회를 부여하지 않는 방법으로 임금상 불이익을 가했고, 유성지회 간부와 조합원에 대해서 대량 해고와 징계를 했다. 2노조를 육성해 과반수노조로 만들기 위해 유성기업은 각 팀별로 팀장 등 관리직원들을 전방위적으로 동원했다. 이들은 유성지회 조합원들을 개별적으로 접촉해 유성지회에서 탈퇴하고 2노조에 가입할 것을 권유하거나 종용했다. 위와 같은 조치에도 2012년 임단협을 앞두고 2노조가 과반수의 조합원을 확보하지 못하자 유성기업은 관리직 사원들의 노조가입을 추진했다. 유성기업은 그 동안 한 번도 노조에 가입한 적이 없던 관리직 사원 49명을 2노조에 가입하게 함으로써 2노조가 2012년 임단협에서 교섭대표노조가 되게 했다.

금속노조는 2013년 1월 2노조 설립의 무효확인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고, 서울중앙지법은 2노조 설립이 무효라고 판결했다. 2노조가 불복해 항소를 제기했지만(유성기업은 2노조를 위해 보조참가했다.) 서울고법은 항소를 기각했고, 2노조와 유성기업이 다시 불복해 상고를 제기했지만 대상판결에서 대법원은 2노조와 유성기업의 상고를 기각했다.

2. 쟁점 및 판결의 요지

가. ‘확인의 소’인지 여부 및 ‘확인의 이익’이 있는지 여부

‘형성의 소’는 명문의 규정으로 허용되는 경우에만 인정되는 것이 원칙이고 반면 ‘확인의 소’는 그러한 명문의 규정이 없는 경우에도 인정될 수 있기 때문에, 이 사건 청구가 ‘형성의 소’인지 아니면 ‘확인의 소’인지는 중요한 쟁점이 됐다. 또한 ‘확인의 소’인 경우 복수노조 사업장에서 하나의 노조가 다른 노조를 상대로 설립무효의 확인을 구할 이른바 ‘확인의 이익’이 인정되는지도 중요한 쟁점 중 하나였다.

이에 대해 대상판결은 “일반적으로 과거의 법률관계는 확인의 소의 대상이 될 수 없지만, 그것이 이해관계인들 사이에 현재적 또는 잠재적 분쟁의 전제가 돼 과거의 법률관계 자체의 확인을 구하는 것이 관련된 분쟁을 일거에 해결하는 유효·적절한 수단이 될 수 있는 경우 예외적으로 확인의 이익이 인정된다(대법원 1995. 3. 28. 선고 94므1447 판결, 대법원 1995. 11. 14.선고 95므694 판결 등 참조). 복수 노조의 설립이 현재 전면적으로 허용되고 있을 뿐 아니라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가 적용되고 있는 현행 노조법하에서 복수 노조 중의 어느 한 노조는 원칙적으로 스스로 교섭대표노조가 되지 않는 한 독자적으로 단체교섭권을 행사할 수 없고(29조의2, 29조2항 등), 교섭대표노조가 결정된 경우 그 절차에 참여한 노조의 전체 조합원의 과반수 찬성 결정이 없으면 쟁의행위를 할 수 없게 되며(41조1항), 쟁의행위는 교섭대표노조에 의해 주도돼야 하는(29조의5, 37조2항) 등 법적인 제약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단체교섭의 주체가 되고자 하는 노조로서는 위와 같은 제약에 따르는 현재의 권리 또는 법률상 지위에 대한 위험이나 불안을 제거하기 위해 다른 노조를 상대로 해당 노조가 설립될 당시부터 앞서 본 노조법 2조4호가 규정한 주체성과 자주성 등의 실질적 요건을 흠결했음을 들어 그 설립무효의 확인을 구하거나 노조로서의 법적 지위가 부존재한다는 확인을 구하는 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아울러 이러한 확인청구소송의 인용판결은 사실심 변론종결시를 기준으로 노조의 설립이 무효인 하자가 해소되거나 치유되지 아니한 채 남아 있음으로써 해당 노조가 노조로서의 법적 지위를 갖지 아니한다는 점을 확인하는 것일 뿐 이러한 판결의 효력에 따라 노조의 지위가 비로소 박탈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판결했다.

위와 같이 대상판결은 금속노조가 어용노조인 2노조의 설립무효 확인을 소로써 구하는 것이 ‘확인의 소’에 해당하고, 금속노조가 현존하는 위험이나 불안을 제거하기 위해 2노조를 상대로 설립무효의 확인을 구할 ‘확인의 이익’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나. 주체성과 자주성이 없는 노조의 설립이 무효인지 여부

다음으로 노조가 설립 당시부터 실질적 요건을 갖추지 못했을 경우의 법적효과(주체성과 자주성이 없는 노조의 설립이 무효인지 여부)가 쟁점이었다.

이에 대해 대상판결은 “노조의 조직이나 운영을 지배하거나 개입하려는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의해 노조가 설립된 것에 불과하거나, 노조가 설립될 당시부터 사용자가 위와 같은 부당노동행위를 저지르려는 것에 관해 노조측과 적극적인 통모·합의가 이뤄진 경우 등과 같이 해당 노조가 헌법 33조1항 및 그 헌법적 요청에 바탕을 둔 노조법 2조4호가 규정한 실질적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면, 설령 그 설립신고가 행정관청에 의해 형식상 수리됐더라도 실질적 요건이 흠결된 하자가 해소되거나 치유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러한 노조는 노조법상 그 설립이 무효로서 노동 3권을 향유할 수 있는 주체인 노조로서의 지위를 가지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고 판결했다.

대상판결은 유성기업이 주도해 만든 2노조가 주체성과 자주성 등 노조의 실질적 요건을 갖추지 못했고 이러한 2노조는 그 설립이 무효로서 노조로서의 지위를 갖지 못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3. 판결의 의의

유성기업이 어용노조를 설립하고 어용노조를 과반수노조(교섭대표노조)로 육성하는 방법을 통해 금속노조 유성지회를 와해시키려 했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차례 확인됐다. 대법원은 유성기업 임직원들의 노조파괴(각종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고 대표이사는 징역 1년 2월의 실형을 확정했고(대법원 2017. 12. 22. 선고 2017도13781 판결), 부당노동행위를 자문하는 방식으로 유성기업의 노조파괴에 개입한 창조컨설팅의 대표노무사에게 역시 징역 1년2월의 실형이 확정됐으며(대법원 2019. 8. 29. 선고 2019도4481 판결), 2노조 육성 등 유성기업의 부당노동행위에 개입한 현대자동차 임직원들에게도 징역 1년(집행유예 2년) 등이 선고되고 확정됐다(대전지방법원 2020. 11. 19. 선고 2019노2706 판결). 대상판결은 2노조가 유성지회를 와해시키려는 유성기업의 의도에 따라 설립·운영됐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이다.

대상판결은 노조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조4호가 규정한 주체성과 자주성 등의 실질적 요건을 결했을 경우 노동 3권의 향유주체로서의 노조 지위를 가지는지(소극), 하나의 노조가 다른 노조를 상대로 주체성과 자주성 등의 실질적 요건의 흠결을 들어 그 설립무효의 확인을 구할 수 있는지(적극) 등에 관한 최초의 대법원 판결이다.

대상판결은 사용자의 돈과 회사 조직력으로는 노조를 세울 수 없고 자주적인 노동자들이 노조 설립의 주체라는 점을 확인한 판결로서, 사용자의 어용노조 설립을 통한 민주노조 와해 내지 무력화 시도에 제동을 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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