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영호 건설노조 정책국장

강원도 원주의 건설현장과 레미콘 공장들에서는 매일매일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싸우는 과정에서 수많은 조합원이 부상을 당하고, 어떤 조합원은 차에 치이기도 했다. 싸움은 점차 격해지고 양상이 복잡해져 간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건설현장에는 수시로 콘크리트믹서트럭이 드나든다. 레미콘을 싣고 와서 현장에 공급(타설)하는 건설기계장비다. 레미콘이 없으면 건물이 세워질 수 없다는 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믹서트럭을 운행하는 레미콘 노동자들은 크게 세 가지 형태로 고용돼 있다. 개인이 사업자 등록을 하고 믹서트럭을 소유하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이다. 이 중 레미콘 공장과 운송(혹은 도급)계약을 맺고, 주로 특정회사의 레미콘을 싣고 다니는 노동자들을 마당차라고 부른다. 중기회사 등에 소속돼 있으며 필요할 때 특정 공장의 레미콘을 운송하는 이들을 용차라고 부른다. 또 레미콘 공장이 소유한 자가용 건설기계(믹서트럭)를 운행하는, 근로계약을 맺어야 하는 노동자들인 자차기사들이 있다.

원주에는 18개 레미콘공장에 150여명의 마당차 노동자들이 있다. 이들은 2020년 7월 건설노조에 가입하고, 강원지역본부 강원건설기계지부 레미콘지회를 결성했다. 레미콘 자본은 곧바로 탄압으로 대응했다. 조합원들에게 계약해지를 통보했고,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일감을 배정하지 않았다. 탄압으로 인해 일부가 탈퇴했고, 80여명으로 시작한 노조는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이후 남아 있는 조합원들의 운송료를 비조합원보다 낮게 책정했고, 레미콘 공장 간 지원을 할 때 조합원들을 쓰지 않았다. 분명한 노조탄압이지만 개인사업자인 레미콘 ‘운송사업자’이기 때문에, 레미콘 자본은 어떠한 법적 책임도 없다는 입장이다.

올해 2월에는 4개의 레미콘 용차 사무실에 소속된 80여명의 용차 레미콘 조합원들이 노조에 가입했다. 이들은 장시간 노동에 턱없이 낮은 운송료 때문에 고통을 받았고 제대로 된 계약을 맺지 않고 일했다. 임금·단체교섭을 요구했지만 레미콘 자본들은 이를 무시했다. 3월 초부터 노조를 탄압하는 레미콘 사용자들에 맞선 투쟁을 시작했다. 또한 이달 8일에는 용차의 임단협 체결, 마당차 조합원 차별해소를 요구하며 파업을 선언했다. 그렇지만 레미콘 회사들은 교섭에 응하는 대신 복수노조까지 끌어들이며, 레미콘 노동자들의 투쟁을 노노갈등으로 몰아가고 있다. 레미콘 공급이 중단되며 원주의 주요 건설현장이 멈췄지만, 원주시청은 이런 상황을 방관하며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지난달 말 양주의 석천레미콘에서도 20여년 가까이 노조활동을 해 온 레미콘 노동자 5명이 계약해지를 당했다. 레미콘 노동자들은 회사를 대신해 물량을 구하는 등 회사와 어려움을 나눴지만, 석천레미콘 자본은 매해 운송계약 만료일자가 다가오면 계약해지를 통보하며 탄압했다.

레미콘 노동자들은 2000년부터 노조결성을 시작했고, 20년 넘는 투쟁으로 현재 건설노조에만 4천여명의 레미콘 노동자들을 조직했다. 노동조합으로서 실체를 가지고 정부 및 자본과 교섭을 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노동자성 시비를 하며 위와 같은 탄압이 지속된다.

1990년대 중반 레미콘 자본은 노동법을 회피하기 위해, 레미콘 차량을 불하하고 회사와 근로계약을 맺던 노동자들을 개인사업자로 만들었다. 현재 일부 레미콘 자본은 노조탄압 목적으로 자가용 레미콘을 구입해 자신의 입맛에 맞는 자차기사들을 고용하기도 한다. 노노갈등을 부추기고 끊임없이 노동자성 시비를 거는 것이다. 레미콘 노동자들은 마당차·용차·자차기사 등 고용형태에 상관없이, 개인사업자등록증이 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믹서트럭을 운전해 레미콘을 타설하는 노동을 한다. 이런 점에서 레미콘을 운전하고, 그 대가를 받아 생활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그에 따른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87호(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 협약)와 98호(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협약)를 국회에서 비준한 취지이기도 하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지속적인 투쟁과 코로나19 사태로 이들의 열악한 처지가 부각됐다. 정부도 각종 보호조치를 실행하고 제도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노조할 권리에는 여전히 소극적이다. 플랫폼 노동자 보호 법안 등을 언급하며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노동자와는 다른 지위로 관리하려 한다. ILO 기본협약에 부합하는 국내 노동법 개정이 필수적이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조 개정과 같이 보편적으로 노조할 권리를 위한 법안은 등한시하고 있다.

건설노조는 원주 투쟁에 힘을 싣는다. 18일 전국에 있는 방송차 200여대와 5천여명의 조합원이 원주로 집결할 예정이다. 원주시내 60여 군데에서 99명 이하로 집회를 하며, 시민들에게 현재 벌어지는 문제를 알릴 것이다. 원주의 레미콘 자본들, 원주시 당국은 원주 레미콘 노동자들을 투쟁으로 내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정부는 노동자성 문제가 원주 레미콘 투쟁 같은 심각한 사태의 원인이 되지 않도록, 노조법 2조 개정 같은 보편적인 노조할 권리를 보호하는 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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