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지난해 역대 최장 기간 장마, 한반도를 따라 치솟는 여러 개 본 적 없는 태풍을 경험하면서 사람들은 기후위기를 체감했다. 북극에 발생한 이상 고온, 바뀐 제트기류 속도 같은 기상학 박사들 얘기가 아니라도 미래가 디스토피아 영화 같은 풍경이 될 것이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도 대응책을 발표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7월 그린뉴딜 정책을 발표한 데 이어 10월에는 ‘2050년 탄소중립’ 선언을 했다. 탄소중립은 온실가스 배출량과 제거량이 같아져 순배출량 ‘0’이 되는 상태다. 그런데 정부의 환경정책에 반대 목소리도 적지 않다. 기후위기 대응 과정에서 탄소 배출 산업 분야에서 일했던 노동자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그에 따라 지역사회 경제권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미래는 멀지만 현실은 곁에 있다.

우려처럼 환경과 노동 문제는 상충되는 것일까. 정부는 환경을 보호하면서 동시에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지키는 ‘정의로운 전환’을 이뤄 낼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 노동계는 어떤 전략을 세우고 실행해야 할까.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9일 오후 서울 마포구 청년문화공간 JU동교동에서 전문가와 노동·환경운동가를 만나 의견을 들었다. 좌담회에는 김병권 정의당 정의정책연구소 소장과 김진억 민주노총 서울본부장·김현우 기후위기비상행동 집행위원이 참여했다. 김미영 매일노동뉴스 노동사회팀장이 사회를 봤다.

“기후위기, 노동자 생명권·건강권 위협”
“질 좋은 녹색일자리 요구하면 영향력 커져”

사회 : 기후위기가 심각하다고들 이야기하지만, 노동계는 기후위기에 침묵하고 있는 듯하다.

김진억 : 제가 처음 생태·환경문제를 노동과 연관에서 고민했던 것은 1990년대 말이었다. 당시 레미콘 노동자 투쟁을 할 때 기업이 이윤을 늘리기 위해 법을 위반해 폐기물을 함부로 처리한 적이 있었다. 그때 노조는 위법 폐기물 문제를 지적했는데, 환경을 고려한 측면도 있었지만 투쟁에서 사측을 압박할 수단으로 이 문제를 거론했다. 그래서 현안을 타결하면서 이 문제도 없었던 일로 하기도 했다. 환경문제를 수단으로 활용했다. 당시만 해도 환경문제를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최근 여름에 폭염이 지속되면서 실제적 문제로 다가왔다. 희망연대노조에 가입돼 있는 케이블방송 수리·설치, 방송스태프 노동자들이 무더위에 외부에서 노동하며 위험에 처하는 것을 보면서 기후위기가 노동자 생명권·건강권과 직접 관련된 것이라는 것을 현실 속에서 느끼게 됐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노동계는 기후위기에 크게 관심 없다. 고용문제·생존권 문제에 천착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김병권 : 노동계도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걸린 것만 말하지는 않는다. 평화·다양성 문제를 비롯한 여러 이슈들에도 목소리를 내는데, 그 가운데 기후문제는 다른 주제보다는 확실히 늦게 다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김현우 : 한국 사회가 10~20년 안에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을 부분은 인구 감소와 기후위기인 것 같다. 그런데 여기에 정부나 노조 모두 대응이 느리다. 물론 노조에도 많은 변화가 있긴 했다. 최근 노조에서 기후위기 강의를 요청받은 건수가 10건이 넘었다. 그런데 교육을 받고는, 거기까지가 끝인 것 같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행동으로는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기후변화는 노동시장·산업의 변화로 이어지기 때문에 노조가 정부에 대항해 투쟁해서 따내는 방식으로 활동하면 미래변화에는 계속 방어적으로만 접근하게 될 것이다. 노동계는 녹색경제가 더 많은 일자리와 더 안정적인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관점을 가지고 위기를 기회로 활용해 나가면 좋을 것 같다. 그러면 노동운동의 사회적 목소리·영향력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사회 : 최근 민주노총 임원선거가 있었다. 이번 선거 때 기후위기가 이슈로 부각된 부분이 있나.

김진억 : 서울본부 선거 때도 기후위기 문제가 큰 이슈가 되지는 않았다. 다만 저는 노조가 사회운동센터가 돼야 한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노동 문제뿐 아니라 인권·기후위기·성평등 같은 보편적 사회 가치에 대해 사회 운동을 하는 주체들과 연대해서 함께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것과 관련해 쟁점화한 적은 없다.

김현우 : 노조운동은 대체로 조합원들이 좋아할 단기 이해에 시야를 가두다 보니 정작 주목해야 할 큰 변수들을 고려하지 않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사회 : 기후위기 대응 정책이 노동권과 상충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김병권 : 과거와 달리 기후위기 이슈가 중앙정부 정책으로 연결되면서 산업 구조조정이 현실적인 일정 속에 들어오게 됐다. 충남의 석탄화력발전 주변지역 주민분들은 이미 기후위기 정책의 반경 안에 들어왔다. 시민사회의 요구로 인해서든, 정부 정책으로 인해서든 석탄화력발전을 축소하는 것이 불가피해진 상황에서, 당장 그곳 노동자들·지역주민들이 생존을 고민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발전소가 셧다운되면 지역권·경제권도 흔들리니 지금부터 대비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직은 초보적인 수준이지만 일부 자동차산업도 마찬가지다. 자동차산업이 전기차 위주로 전환될 경우 현대자동차에서는 자연퇴직하시는 분들을 그대로 두면 완성차쪽에선 큰 충격이 없다고 하지만 협력업체들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조선업종도 점차 기후위기 정책의 반경 안에 들어오고 있다. 영향을 받을 업종들에 대해서는 노동자들과 지역경제가 피해를 입지 않도록 노동계에서도 선제적으로 기획해서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본다.

“정부, 탄소중립 선언했지만 구체적 계획은 없어”

사회 : 같은해 10월 문재인 대통령은 ‘2050년 탄소중립’을 이루겠다고 선언했다. 지난해 7월 그린뉴딜도 발표했다.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 대책은 어떻게 보나.

김병권 : 선언만 했고 내용은 없다. 정부 정책을 보면 결국 기업들이 해 왔던 전기차·수소차를 늘리는 데 재정지원을 하거나, 새로 녹색 아파트를 짓는다거나 하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온실가스 감축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안은 아직 없고, 모든 것을 사실상 다음 대선 이후로 미뤄 두고 있다. 실제 정부는 구간별 탄소배출량 감축 목표를 제대로 잡아 놓지 않았다. 탄소배출량은 2020년대에 절반으로 줄이고, 2030년대에 다시 절반으로 줄이고, 2040년대에 또 절반으로 줄이는 식으로 가야 한다. 그중 2020년대에 절반을 줄이는 일이 가장 쉬울 것으로 예상된다. 2030년대에 다시 절반으로 줄이려면 제철산업·석유화학 같은 분야에서 획기적으로 감축해야 하는데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쉬운 2020년대 구간 목표를 제대로 잡아 놓지 않은 것은 목표를 이루지 않겠다는 소리와 비슷하다고 본다. 하다못해 경제성장률도 매년 목표를 소수점 단위로 제시하고 분기마다 체크해 안 지켜지면 조정하는 절차를 밟는다. 그런데 탄소배출과 관련해서는 10년 뒤에 절반을 줄이려면 올해 몇 퍼센트로 줄일지, 내년에 몇 퍼센트 줄일지 목표를 말한 적이 없다. 사실 지금 여의도(국회)에서 일하는 분들 중 2050년에 몇 분이나 있겠나. 이 문제에 책임 질 생각이 없는 것이다. 황당한 것 중 하나는 정부가 지난해 경기부양을 이유로 자동차 개별소비세를 인하한 것이다. 그 덕분에 대한민국에서는 내연기관 자동차가 늘었다. 심지어 올해 상반기까지 개별소비세 인하 혜택을 연장했다. 국가 재정을 들여 탄소 배출에 큰 영향을 주는 내연기관차 구매를 독려한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거의 없는 사례다. 말과 행동이 다르다. 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과 연설을 할 때 기후위기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현재 정부에 실천적 의지가 있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거창한 이야기도 좋지만 당장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를 중앙정부가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데 그런 것이 없어서 걱정이다.

김진억 : 제가 우려하는 것은 시장을 활용한 녹색성장이다. 이윤추구를 하는 기업들을 활용한 녹색성장이 얼마나 실효성 있을지 의구심이 있다. 또 정의로운 전환과 관련한 노동·고용문제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우려된다. 마지막으로 정부에 실행 의지가 없는 것이 우려된다. 정부는 환경 관련 정책을 발표하면서도 삼척 등에 신규 석탄화력발전소를 짓고 있다. 탄소중립을 선언하면서 한편으론 탄소를 배출하는 화력발전소를 새로 짓는 것이 말이 안 되고, 정부가 의지가 없음을 보여주는 것 아닌가 생각된다.

김병권 : 정부 정책이 아직 실효성이 없다 보니 해당 정책이 고용이나 산업에 미치는 영향도 아직은 미미하다. 하지만 기후위기 대응은 우리만 하는 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하기 때문에 우리가 하기 싫다고 안 하게 되는 건 아니다. 미국도 유럽도 탄소국경조정 또는 탄소국경세를 도입하겠다고 하면 우리도 그 영향권 안에 들어와 버린다. 그러면 기업은 틀림없이 움직인다. 걱정되는 것은 전환 과정에서 기업들이 자기 수익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하면 노조는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노동계가 기업이 주도하는 전환 과정에 끌려가면 안 된다. 오히려 기업과 비슷한 수준이거나 한 발 앞서서 기획해야 한다고 본다. 노동계가 나름대로 중심을 가지고 어떤 방향으로 전환할 것인지, 어떤 비용으로 전환할 것인지 먼저 화두를 던져야 한다고 본다.
 

▲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기후위기와 불평등을 어떻게 엮을 것인지가 중요”

사회 : 정부가 ‘정의로운 전환’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거버넌스가 필요할까. 노동계는 어떤 요구를 해 나가야 할까.

김현우 : 노동계가 먼저 제안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슈를 주도해 나가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노동계가 경제사회노동위원회든 다른 기구를 통해서든 노동자 몫과 역할을 요구하는 태세로 가야 한다. ‘시장이나 성장에 매달리지 않고 고용·지역사회를 지키면서도 기후위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내놓으라’고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노조는 방관하고 있다고 본다. ‘닥치면 막아 내고 싸우자’고 하기엔 너무 늦다. 기후변화 대응정책은 물리적으로 시행되기까지 10년, 20년 걸리기 때문에 나중에 요구하려면 그저 과거와 같은 방식의 총고용 보장을 요구하는 총파업밖에 할 수 없다. 특히 저는 기후위기 정책을 논의할 때 지역사회 생존과 노동자 일자리 문제까지 다룰 수 있을 정도의 규모의 거버넌스가 필요하다고 본다. 독일의 경우 주요 정당과 사용자단체·노동자단체·연구기관 등이 다 포함된 탈석탄위원회를 만들어서 그곳에서 기후위기 정책과 관련해 6개월 이상 협의해서 권고안을 내고 합의했다. 석탄화력발전소 운영이 중지되는 지역에 2038년까지 53조원을 투입하기로 한 것이다. 우리도 그 정도의 예산과 스케일이 있어야 (기후위기 대응 정책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타격을 받는 지역이나 공장·업종까지 지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감을 못 잡고 아직 한 발도 못 내딛고 있는 것 같다.

김병권 : 기후위기와 불평등을 어떻게 엮을 것인지가 중요하다.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정책에 가장 반대할 만한 사람은 역설적으로 저소득층과 지역주민, 노동자일 가능성이 높다. 가령 기후위기를 막겠다고 전기요금을 올리면 저소득층은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또 지금처럼 준비 안 된 상태에서 석탄을 줄인다고 하면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반발할 것이고, 태양광 발전을 하는 과정에서 지역의 임야나 농지를 훼손한다고 지역주민들이 반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그분들의 탓이라기보다 (정책이) 정의롭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소득기준 상위 20%의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탄소배출이 한 국가 탄소배출의 4분의 3을 차지한다고 한다. 나머지 70~80% 정도의 국민은 책임이 전체 탄소배출의 4분의 1정도 밖에 없는데 똑같이 n분의 1로 전기요금 인상 부담과 일자리 감소를 감당하라고 하면 누가 찬성하겠나. 지금 정부는 그렇게 가고 있다. 일자리와 기후위기는 엮여 있다. 정부가 이렇게 경제적 불평등 문제까지 감안해서 밑에 있는 사람들을 보호·지원하는 것과 기후위기 대처를 맞물려서 가지 않으면, 시민들이 기후위기 대처에 공감하고 지지·참여하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결국 기후위기 대응에 실패하게 된다.

김현우 : 지금은 온실가스 감축 정책은 환경부만 하고, 탄소배출 비중이 가장 큰 기업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산업통상자원부는 에너지 소비 감축에 큰 관심이 없다. 기후위기 대응정책으로 인한 일자리 피해는 고용노동부가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정작 자기 소관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산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도 마찬가지다. 각 부처가 모여서 해야 정의로운 전환의 퍼즐이 맞춰지는데 지금은 따로 놀고 있는 것이다. 또 노동계도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 전략을 세울 때 적극적인 참여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 계획을 세울 때 ‘왜 우리를 부르지 않느냐’고 뭐라고 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

김병권 : 저도 그린뉴딜의 성공은 노동자·지역주민·저소득층이 얼마나 공감하고 참여하느냐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처음 한국판 뉴딜을 발표했을 때 현대차 대표와 네이버 대표 같은 대기업 대표들이 왔고, 1차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에는 금융권 관계자들이 참여했다. 그런데 아까 말한 것처럼 어느 동네에 공동체 태양광을 만들더라도 지역주민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못 한다. 냉정하게 그린뉴딜과 관련한 거버넌스는 중앙정부와 대기업·금융권들의 기초적인 거버넌스 말고는 없다. 불평등 해결과 그린뉴딜을 접목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지방자치단체에 일임돼 있다. 그러다 보니 각 지방정부가 추진하는 그린뉴딜은 총천연색이다. 그린뉴딜과 아예 관계없는 정책을 추진하는 곳도 있고, 조금이라도 가깝게 하는 지자체는 재원이나 법안이 없는 상태에서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회 : 민주노총은 각종 대정부 요구사안을 총파업을 통해 관철하겠다는 입장이다. 탄소배출 감축 요구를 내걸고 총파업을 할 계획도 있나.

김진억 : 올해 선출된 민주노총 지도부는 노정교섭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공약사항이니 어떻게 할지 검증의 문제로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아니면 경사노위가 아닌 기후위기 관련 사회적 논의기구를 비롯한 의제별 사회적 대화기구를 구성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사회 : 노동계는 기후위기 대응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을 할 수 있을까.

김진억 : 노조는 기후위기에 관심이 크게 없다고 말했는데, 사실 관심을 가질 여력이 없는 측면도 있다. 핑계를 대자면 노조는 임금·단체협상도 해야 하고 해결해야 할 수많은 현안도 안고 있다. 노사관계부터 조합원·비조합원들과의 관계까지 수많은 관계들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러다 보니 노조간부들은 지치고, 조합원들도 보통 자신의 노동조건·고용·현안문제 해결에 집중하기에 보편적 사회 가치에 관심을 가질 여력이 쉽게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노조는 ‘하나뿐인 지구, 지속 가능한 성장’ 같은 보편적 가치에 공감하고 있다고 본다. 상층 간부는 더더욱 그렇다. 실제 민주노총에 아직은 제한적이긴 하지만 ‘기후위기 대응 네트워크’가 만들어졌다. 얼마 전 열린 민주노총 정기대의원대회에서 기후위기 대응 관련 특별결의문을 채택했다. 관건은 이것을 당위와 원칙으로만 가지고 갈 것이냐, 아니면 구체적인 실행으로 옮길 것이냐는 것이다. 아쉽게도 이번에 채택한 결의문은 포괄적이고 거기에 따른 세부 사업계획은 아직 없다. 민주노총이 기후위기대응을 주요 의제로 삼고 전략사업화해야 한다. 기후위기 대응 사업은 단기간 집중적으로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전략적이고 단계적으로 접근해 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특별결의 내용을 구체화할 전담자가 내부에 있어야 한다. 담당자가 중복 업무를 맡으면 더 급한 현안에 대응하게 되기 쉽기 때문이다. 기후위기 문제는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 있다. 민주노총 내부에서 계속 요구하고 토론하면서 이 부분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야 하지 않나 하는 개인적 바람이 있다. 기후위기 대응 논의는 지금부터 시작하면 5년 뒤, 10년 뒤에나 실질적인 성과가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지금부터 하지 않으면 우리는 또 그 상황에 닥쳐서야 구조조정 저지 투쟁이나 고용보장 투쟁을 하게 될 것이다. 고용안전망을 확충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정의로운 전환을 하는 전략적 대응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김병권 : 전환 이후 새로운 일자리가 어떻게 만들어질지 전망·계획을 노동자들에게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 노동자들 사이에선 기후위기 대응정책이 시행되면 석탄화력·자동차산업을 비롯한 분야에서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고민이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다른 나라에서는 석탄화력과 동일한 규모의 태양광·풍력발전소가 만들어졌을 때 일자리는 더 많아진다는 사례도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태양광을 동네에 만들었는데 관리하는 사람이 두세 명밖에 안 되더라, 일자리가 뭐가 많아’ 같은 문제제기가 많다.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를 떨쳐 버릴 수 있는 여러 가지 전망을 보여줘야 한다. 기후위기 대응 과정에서서는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우려는 일부 맞는 말이지만 전체를 보면 그렇지 않을 수 있다. 가령 국외에서든 국내 업체에서든 들여온 재생에너지 기술을 사용하고 정기적으로 수리하는 가구가 많아지면, 그것과 연계한 새로운 산업군들이 풍성하게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태양광 등을 지역에 그리드로 연결해서 모니터링하는 직군, 영업·홍보하는 직군, AS 하는 직군 등이 새로 생겨날 수 있다. 그런 일자리들을 총합적으로 계산해 내야 한다. 지금은 너무 단편적으로 조금씩 시작하는 데 그치고 있다 보니 진짜로 눈에 보이는 것은 너무 얼마 안 돼서 노동자들이 불안해 하는 것이다. 다른 나라 사례들을 공부해서 재생에너지쪽에서 충분히 안정된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업을 누군가는 해야 한다.

사회 : 비슷한 예로 울산에서는 내연기관차 생산이 줄어들면 일자리가 어떻게 변동할지 전망하는 일자리 지도를 그릴 것이라고 들었다.

김병권 : 그런 것도 필요하다. 완성차 부문은 퇴직자로 자연감소해도 1·2차 협력업체 등은 일자리가 없어질 것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이것도 일종의 선입견일 수 있다. 가장 핵심적인 부품인 엔진이 모터로 교체돼 버리기 때문에 엔진과 관련한 수많은 부속들이 왕창 빠지기는 하지만 내연기관에 없는 부품들이 신규로 탑재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터로 전환되면서 기존에 없었던 IT 기반의 다양한 주변시설이 새롭게 만들어질 수도 있다. 없어지기만 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새로 생기는 일자리와 없어지는 일자리를 검토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제대로 검토되고 있지 않다. 환경 관련 정책에 따른 일자리 변화는 금방 닥칠 문제인 만큼 공공투자로 일자리를 어떻게 만들지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덜 일하고 덜 소비하는 삶의 방식 얘기해야”

사회 : 코로나19로 고용위기가 심화되고, 비대면이 확산되면서 노동시장도 변화하고 있다. 노동시장의 변화는 기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노동계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고민해야 할 지점이 있을까.

김병권 : 코로나19로 비대면 문화가 확산되는 사이 최근 동네가게들이 전부 온라인 주문플랫폼 밑으로 들어간 사실을 알게 됐다. 지역 노동시장이 배달노동으로, 다른 한쪽은 장사하는 온라인 플랫폼으로 귀속돼 버리는 식으로 동네 판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더라. 이와 관련해 배달노동자들의 산업재해와 4대 보험 가입 문제가 노동계 주요이슈로 불거졌다. 바뀐 사회를 디지털을 중심으로 본 것이다. 그런데 배달노동이 늘어나면서 일회용품 사용률도 증가했는데 이에 대한 문제는 그만큼 잘 언급하지 않는 것 같다. 노동구조가 디지털을 중심으로 바뀌는 미래는 상상하면서, 똑같이 ‘그린’을 중심으로 미래가 재구성되는 것은 상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회용을 사용하는 대신 배달에 따른 것들을 재사용하는 방식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공공투자 방식이 사용됐으면 하는데 잘 안 되는 것 같다. 대한민국은 노동이든 정치든 미래를 생각하면 다 디지털화를 상상하는 것 같다. 대한민국이 디지털이 바꿀 미래를 상상하는 것처럼, 그린이 바꿀 대한민국 사회와 직장·가정 생활을 훈련해야 한다.

김진억 : 노조가 기후위기 대응의 주체가 될 것이냐, 사회적 담론과 압박에 밀려서 대응하는 비주체적 대응을 할 것이냐의 갈림길에 서 있는 것 같다. 주체적 대응 중 하나로 ‘녹색 단체협약’ 같은 것을 맺어서 우리 사업장부터 탄소 중립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희망연대노조 같은 곳도 에너지 소비량이 많아지는 곳이니 선도적으로 녹색단협을 추진·실행하고 이런 사례들을 모으고 확산해 나가는 것을 시도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사업으로 공감대가 확산하고, 동시에 민주노총은 탄소중립 법안 제정에도 힘을 보태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현우 : (기후위기 대응과 고용을 둘 다 잡는 방법으로) 지금과 다른 삶의 방식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려면 안 해도 되는 소비를 줄여야 한다. 그런데 소비가 줄면 일자리가 줄어든다. 대신 녹색 일자리·공공 일자리는 늘어날 텐데 이를 정부가 다 책임지고 만들려면 밑도 끝도 없다. 전체적으로 사람들에게 여러 노동과 삶의 선택지를 주면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것 같다. 탄소세 연동 기본소득제 같은 이야기도 많아져야 한다. 지금은 (일자리를 줄이는 방안에 대해) 노동계가 ‘무슨 소리야, 조합원들이 받아들이겠냐’고 하겠지만 말이 시작이다. 부담 없이 다양한 삶의 방식에 대한 말을 서로 던지고, 사람들이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도 좋다. 월급도 줄이고 소비도 줄이자는 이야기를 하면 민주노총 활동가들도 공감한다는 분들이 많다. 그런데 선거 때는 조합원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김진억 : 그런 이야기를 못 하기도 하고 몸이 안 움직이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 머리로는 알지만, 지금의 사회 흐름과 생활문화 풍토 속에서 노조 활동가 스스로도 그렇게 하는 게 대부분은 쉽지 않은 부분도 있다. 일종의 성장주의·소비문화에서 대전환하자는 건데, 어떻게 물길을 돌릴 것인지 상당한 수준의 사회운동이 대중적으로 벌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