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협정에 따라 한국 정부가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비준 노력을 하고 있는지를 판단한 전문가 패널 보고서가 지난 25일 발표됐다. 전문가 패널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근로자 정의를 규정한 2조1호를 포함해 일부 조항 개선을 권고하면서도 한국정부가 FTA 협정문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에 정부는 패널 권고를 해소했다는 입장인 반면, 노동계와 일부 전문가들은 “권고를 이행하지 않아 양국 갈등이 다시 불거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전문가 패널 보고서 의미와 과제를 짚어 봤다.

전문가 패널 권고 유감, 법개정으로 해소돼
노길준 고용노동부 국제협력관
 

▲ 노길준 고용노동부 국제협력관
▲ 노길준 고용노동부 국제협력관

한국·EU FTA 13장(무역과 지속가능발전)에 따라 구성된 전문가 패널은 지난 25일 패널 보고서를 제출했다. EU는 패널 요청에서 우리 노동법 일부 조항이 결사의 자유 등 ”노동기본권 원칙을 국내법·관행에서 존중, 증진, 실현하기로 약속”한 FTA 조항에 부합하지 않고, 우리가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지 않아 “협약 비준을 위해 계속·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라는 조항도 이행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전문가 패널은 보고서에서 우리 노동법 일부 조항의 개선을 권고하면서도,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 들인 노력을 협정문 위반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구체적으로 노조법 2조1호와 2조4호 라목을 보완해 자영업자(특수고용직)·해고자·실직자 같은 모든 근로자가 노조 형태와 무관하게 스스로 선택한 노조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할 것을 권고했다. 노조법 23조1항에 대해서는 노조 임원이 조합원 중에서 선출돼야 한다는 요건을 삭제해 노조원들이 임원을 자유롭게 선출할 수 있도록 하라고 권고했다. 한편, 노조설립신고제를 행정당국의 재량권이 인정되는 허가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주목하면서 한국의 노조설립제도가 협정문에 위반되는지 EU가 입증하지 못했다고 봤다. 마지막으로 패널은 FTA 협정문에 핵심협약 비준 완료 시한이나 추진 일정도 없고,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부터 기울인 협약 비준 노력은 EU도 인정하고 있어, 우리가 협정문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정부는 패널이 협정문 13.4.3조를 구속력이 있는 의무로 판단하고 이에 따라 노조법을 개선하라는 권고를 한 점에 유감이다. 특히 결사의 자유 원칙이 구속력이 있는지와 그 내용은 무엇인지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패널이 충분한 근거를 제시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번 패널 절차가 양자 모두에게 FTA 노동조항을 근거로 한 첫 번째 분쟁이고, ‘결사의 자유 원칙을 국내법과 관행에서 존중’한다는 협정문의 의미에 대해 참고할 만한 기존 사례도 없었던 점을 고려하면 패널의 보다 심도 깊은 검토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패널의 판단을 존중하고, 권고 이행에 노력할 것이다. 패널은 보고서에서 지난해 11월25일까지의 상황을 기준으로 우리 노조법에 대한 판단을 했음을 명시하였다. 따라서 정부는 노조법과 관련한 패널의 권고는 지난해 12월9일 법개정으로 해소됐다는 입장이다.

노조법 2조4호 단서를 삭제해 노조원 자격은 노조가 규약으로 자유롭게 정하도록 개정했다. 한편 특수고용직 노조설립은 법 규정을 바꿀 문제가 아니라 법 적용의 문제다. 우리 노조법은 근로자성을 매우 넓게 규정하고 있고 실제로 2018년 이후로 배달기사·보험설계사 노조 등이 설립돼 활동하고 있다. 성문법으로 특수고용직 노조 가입을 규정하는 나라가 없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노조임원 자격도 노조 규약으로 자유롭게 정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다. 다만, 우리 기업별 교섭 관행의 특성을 고려해 기업별 노조 임원은 그 회사에서 종사하는 조합원 중에서 선출하도록 했다. 기본적으로 결사의 자유 원칙을 준수하면서 당사국의 특성을 존중하는 ILO의 기본입장에 부합하는 조치라고 본다.

앞으로 정부는 현재 국회 외교통상위원회위에 계류 중인 ILO 핵심협약 비준동의안이 2월 임시국회 중에 통과될 수 있도록 하고 105호 협약의 비준을 위해서도 노력할 것이다. 더불어 EU에는 패널의 권고사항이 최근 노동법 개정을 통해 해소됐다는 점을 설명할 계획이다.

노조법 2조 개정 없이는 여전히 협약 위반
윤애림 서울대 고용복지법센터 연구위원
 

윤애림 서울대 고용복지법센터 연구위원
▲ 윤애림 서울대 고용복지법센터 연구위원

지난 25일 한-EU FTA 전문가 패널 보고서가 공개됐다. 이에 관해 고용노동부는 전문가 패널이 노조법 2조를 포함해 ILO 결사의 자유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 법 개정을 권고했으나, 지난해 말 노조법 개정으로 문제가 해소됐다고 브리핑했다. 하지만 노동부 홈페이지에 게시된 패널 보고서만 읽어 봐도 정부의 이런 주장은 기만이라는 점이 금방 드러난다.

그동안 EU측에서 주로 문제 삼았던 규정은 노조법 2조1호의 ‘근로자’ 정의, 2조4호 단서의 노조 결격사유 규정, 12조 노조설립신고제 등이다. 특히 법원과 정부가 노조법의 ‘근로자’를 너무 협소하게 해석해 특수고용 노동자를 비롯한 다양한 노동자들이 노동 3권을 사실상 박탈당해 온 점이 지적됐다. 이는 지난 수십 년간 ILO가 한국의 결사의 자유 위반으로 지적해 온 것이기도 하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십수 년간 동일한 법 개정을 권고했고, 지난해 10만 국민청원으로 노조법 2조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ILO협약 비준을 위해서” 노조법을 개정한다고 하면서도 이런 조항들을 바꾸지 않았다.

노동부는 2018년 대법원이 학습지교사를 노조법의 근로자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후 다양한 특수고용직 노조게 설립신고증을 교부하고 있으니 법 개정이 필요 없다는 태도다. 그러나 전문가 패널 보고서는 2018년 이후 판례 역시 ILO 결사의 자유 원칙에 비춰 ‘근로자’를 협소하게 해석하고 있음을 상세하게 지적하고 있다. 보고서의 핵심 부분을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노조법 2조1호의 ‘근로자’ 규정은, 한국이 존중하고 촉진하며 실현할 법적 의무가 있는 결사의 자유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 ‘근로자’ 규정은, 한 명의 근로자와 한 명의 사용자가 대응하는 관계를 전제로 해 협소하게 해석되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특수고용 노동자를 비롯한 많은 노동자들이 결사의 자유를 보장받지 못하게 된다. 현행 노조법 2조1호를 개정하지 않는다면 결사의 자유 원칙을 존중하고 촉진할 의무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 된다.”

전문가 패널은 대법원이 노조법의 근로자인지 판단하는 데 활용하는 기준을 상세하게 분석하고 있다. 즉, “노무제공자의 소득이 특정 사업자에게 주로 의존하고 있는지, 노무제공자가 특정 사업자의 사업 수행에 필수적인 노무를 제공함으로써 특정 사업자의 사업을 통해서 시장에 접근하는지, 노무제공자와 특정 사업자의 법률관계가 상당한 정도로 지속적·전속적인지, 사용자와 노무제공자 사이에 어느 정도 지휘·감독관계가 존재하는지 등” 판례의 판단 요소들은, 한 명의 노무제공자(근로자)가 하나의 사용자를 위해 일하는 전통적인 관계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복수의 사용자를 위해 일하는 특수고용 노동자나, 플랫폼을 통해 단기간(시간) 혹은 간헐적으로 일감을 얻는 노동자들의 노조할 권리를 박탈하게 된다. ILO 87호·98 협약으로 구체화한 결사의 자유 원칙은 고용관계가 존재하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노동자에게 보장돼야 한다. 특수고용을 포함한 자영 노동자에게도 차별 없이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 ILO의 확립된 원칙이다. 이러한 원칙에 비춰 볼 때 우리 노조법 2조1호의 ‘근로자’ 규정은 여전히 고용관계를 기준으로 삼아 다양한 노동자들을 배제하고 있기에 개정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 패널의 결론이다.

노동부의 브리핑은 이런 권고에 대해서 함구했을 뿐 아니라 이미 여러 특수고용직 노조가 설립신고증을 받고 있으니 법 개정이 필요 없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 패널 보고서를 다시 한번 인용하자면 정부가 수년간 근로자(조합원) 자격을 심사하며 설립신고증 교부를 지연시키거나 반려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보다 근본적 문제는 노조법이 근로자의 범위를 지나치게 협소하게 규정하고 노조의 결격사유는 지나치게 방대하게 정하고 있어 이를 잣대로 활용해 정부가 노조의 법적 지위를 좌우할 여지가 크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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