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어머니, 배가 고파요.”

현정희(54·사진)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이 전태일 열사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했다던 말을 꺼냈다. 그는 “22년 인생을 살면서 한 번도 배불리 먹은 적이 없던 것”이라며 “알바 자리가 없어 하루 한 끼를 먹는다던 우리 사회 청년들이 겹쳐 보였다”고 말을 멈췄다.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현 위원장은 “사람을 물질화하고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를 우리는 꼭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선거운동을 하던 중 한 조합원에게 전태일 50주기를 맞아 출판된 <전태일 평전>을 선물받았다. 이를 계기로 최근 세 번째 다시 읽기를 했다.

현정희 위원장이 새삼 느끼게 됐다던 열사의 핵심 정신인 “사람은 다 똑같은 사람이다. 사람을 물건 취급하지 하지 말라”는 최근 공공운수노조 안에서 진행 중인 투쟁의 구호와도 맞닿아 있다.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가 참지 않고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자 회사는 마른 가지 자르듯 너무 쉽게 잘라 냈다. 하청노동자 신세에서 벗어나 무기계약직이 된 코레일 자회사 노동자들은 “20년이 지나도 최저임금” “정규직과 차별하지 마라”며 싸우고 있다.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를 주장하기도 어려운 상황 속에 현정희 위원장의 고민은 깊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1월1일 임기를 시작한 현 위원장에게 계획을 들었다. 인터뷰는 지난 1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공공운수노조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LG트윈타워 집단해고 사태
우리 사회 비정규직 인식 드러내”

- 당선을 축하한다.
“조합원 선택에 감사드린다. 어깨가 무겁다. 24만 조합원, 민주노총 제1 산별노조 위원장으로서 제 역할을 잘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 코로나19로 전통적인 방식으로 투쟁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가 방역을 이유로 집회의 자유를 너무 많이 침해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26일 방역지침을 다 지키고 하는 드라이브 스루(차량행진) 집회에도 비상식적인 탄압과 방해를 했다. 우리나라처럼 공론장이 잘 형성되지 않은 사회에서 거리 집회는 직접민주주의 방법의 하나다. 정부는 방역지침을 잘 지키면서도 어떻게 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할 것인지 연구해야 한다. 물론 환경 변화에 맞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공동행동이나 복수의 장소에서 같은 공동행동을 하는 식으로 다양한 투쟁방법들은 고민하고 있다.”

-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투쟁이 해를 넘겼다.
“LG트윈타워에서 십수 년을 일한 노동자를 하청업체가 바뀌었다며 하루아침에 내쫓는 것은 누가 생각해도 납득이 안 되는 비상식적인 일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우리 사회, 정부, 재벌기업이 비정규 노동자들에게는 그래도 된다고 생각해서다. 상시적으로 일하던 노동자가 업체가 바뀌었다는 이유로 마음대로 해고할 수 없는 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

- 유사사례가 되풀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누구나 LG가 진짜 사장인 것을 안다. 그런데 LG와는 정작 교섭 한 번 못하고 있다. 지난해 10만명이 동의해 발의됐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조 개정안이 제대로 통과됐다면 원청에 교섭 책임을 물을 수 있었을 것이다. 노조법 개정, 더 근본적으로는 간접고용을 양산해 진짜 사장이 뒤에 숨는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등을 폐지하고 상시·지속업무는 직접고용하도록 하는 법과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지난해 국민동의청원으로 발의된 노조법 개정안에는 사용자 정의를 넓히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이러면 하청·간접고용 노동자가 원청 사용자와 교섭할 권리가 생긴다. 그런데 지난달 통과된 노조법 개정안에는 이런 내용이 담기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대선후보 시절 ‘용역업체 변경시 고용·근로조건 승계 의무화’를 공약으로 제시했지만 제도개선은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의 예산지침,
침대 크기 맞춰 다리 자르라는 것”

-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하다.
“아직 전환 방식이 결정되지 않아 전환되지 않은 숫자도 많다. 모회사로 직접고용된 곳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회사로, 공무직 무기계약직 직제로 전환됐다. 전환된 곳이나 전환되지 않은 곳 모두 처우가 달라지지 않았다는 동일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지난해 투쟁으로 공무직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정부는 전환자들의 처우를 개선하겠다고 하면서도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다. 예산부담을 이야기하는데 예산 없이 처우개선은 불가능하다. 사실상 정부 의지가 없는 것이다. 정부는 각 부처에 시중노임단가를 주도록 권유했고 철도공사는 시중노임단가를 주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지켜지지 않았다.”

- 취임사에서 기획재정부 개혁을 강조한 이유인가.
“정의로운 자원 배분은 우리(노동자·시민)가 결정해야 하지만, 국회와 기재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있다. 기재부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권한을 남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의 예산지침, 기재부의 총액인건비 제한은 침대 크기에 맞춰 다리를 자르라는 것이다. 한국전기안전공사·한국도시가스공사 등 안전을 책임지는 공공기관의 경우 폭설이 오면 24시간 안전관리를 해야 한다. 노동자들에게 시간외수당·야간수당을 줘야 하는데 이런 것들 모두 다 총액인건비로 묶여 있다. 불합리하고 비상식적인 정부 예산지침으로 비정규 노동자나 사회적 약자가 생존권 위협을 받는 상황이다. 지침은 법이 아니라 정부가 의지로 충분히 바꿀 수 있다.”

- 공공부문 정규직화가 민간으로 확산하지 않으면 공공과 민간의 임금격차를 심화할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이 제대로 돼 노동조건이 좋아지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민간도 그런 분위기를 따라가도록 하고 법·제도가 안착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저평가된 노동가치가 올라가고 노동이 존중받는 조직문화 역시 생기게 된다. 그런데 공공부문 정규직화의 좋은 모델을 만들지 못했다. 민간한테 나쁜 신호를 줄까 걱정된다. 상시·지속업무에 비정규직 사용을 금지하고 차별시정 제도를 전면 개편하겠다던 대통령의 약속이 지켜졌다면 LG트윈타워 집단해고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 최근 일었던 공정성 논란을 어떻게 생각하나.
“공정성 논란은 과정의 문제를 너무 단편적으로 끊어서 보는 데서 온 갈등 문제가 많다. 근본적으로는 좋은 일자리가 없어서 나타난 문제다. 나는 힘들게 공부해 공공기관에 들어왔는데 왜 당신은 힘들이지 않고 들어오느냐는 지적은 순간의 입직경로만을 보고 이야기한 것이다. 힘들게 공부도 할 수 없던 사람들, 또 산업재해 등 위험을 겪으며 일하는 비정규 노동자도 공정하지 않은 상황에 놓여 있다. 공정을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해 많은 대화와 토론을 하면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최근 다시 꺼내 읽었다는 전태일평전 얘기를 하던 현정희 위원장 눈에 눈물이 고였다. <정기훈 기자>
▲ 최근 다시 꺼내 읽었다는 전태일평전 얘기를 하던 현정희 위원장 눈에 눈물이 고였다. <정기훈 기자>

“기재부 상대 공동투쟁 할 것”

- 앞으로 노정교섭을 어떻게 확대해 나갈 생각인가.
“2019년 투쟁으로 공무직위원회가 만들어졌고, 화물연대본부 같은 경우 3년 일몰제이기는 하지만 대정부교섭이 진행되고 있다. 중앙행정기관 공무직도 부처별 교섭을 하고 있는데, 이런 부분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 부처별 교섭으로 부처에 속한 노동자 임금·처우·인력 요구를 성사시키고, 각 부처의 공통 요구를 모아 기재부를 상대로 투쟁과 교섭을 해야 한다. 현장 요구를 이행하려면 예산이 수반되는 만큼 예산편성 시기에 공동투쟁을 통해 이를 관철하겠다.”

- 공공운수노조 내 산별교섭 조직과 운영을 재점검해 발전 방안을 만들어 내자는 제안을 했다.
“우리는 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로 대정부·대지방자치단체 투쟁을 잘 해야 한다. 개별 기업별노조 투쟁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결국 기업별이 아니라 초기업노조 초기업 교섭을 만들어 가는 내부 과정이 필요하다. 이미 지역지부 단위의 집단교섭, 지자체교섭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초기업단위 교섭 현안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조직 요구에 맞는 교섭 대상을 찾아 초기업 교섭 발전 방안을 짜야 한다는 의미다.”

- 대선후보라면 어떤 노동 의제를 반드시 다뤄야 한다고 생각하나.
“교육부터 노동에 이르기까지 불평등 문제가 코로나19 재난 시기를 지나면서 더 크게 드러날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최소한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노동이다. 노동의 가장 기본은 먹고사는 임금 문제인 만큼 먹고살 수 있는 최저임금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공공기관이 민간이 모범이 되는 만큼 생활임금도 안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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