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보현 마필관리사노조 서울경마장조교사협회지부장

한국마사회는 국가에서 경마산업의 독점권을 부여받은 공기업이다. 경마산업 독점기업으로서 마사회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공공성을 강화해야 하는데 오히려 그 권한을 경마유관 단체들과 소속 노동자들에게 직접적인 갑질을 하는 데 쓰고 있다. 각종 갈등에도 관리감독 의무를 져야 할 경마시행체인 마사회는 수수방관만 하고 있다.

마사회 권한은 단순히 마방(마구간)을 임대하고 경주를 시행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마주 모집부터 개인사업자인 조교사와 기수의 면허 부여, 조교사의 마방대부, 장제사와 개인 수의사의 개업, 마필관리사에 관한 모든 규정 등 경마산업 전반적인 부분을 마사회가 정하도록 돼 있다.

또한 기수와 조교사의 면허발급, 면허의 갱신·정지·취소·징계를 포함한 제재를 비롯해 마주·조교사·기수·마필관리사의 상금, 장제 금액, 수의사의 진료비 등 경마 관련 상금 책정과 배분에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조교사와 기수, 마필관리사뿐만 아니라 경마유관단체들은 마사회 권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처럼 마사회는 막대한 권한을 독점하면서도 각 경마단체들의 정당한 요구를 묵살하고 있다. 경마유관단체들의 불공정한 거래나 비리 또는 갑질을 감시하고 단속하는 책임과 의무 또한 병행해야 하는데 나 몰라라 하면서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벗어나기 어려운 부당한 지시
거부할 수 없는 조교사와의 갑을 관계

마사회는 조교사 면허를 발급하고 마방을 임대한다. 조교사는 마주에게 경주마를 위탁받아 조교사협회(조교사 구성단체)에 소속된 마필관리사를 배정한다. 마필관리사는 경주마를 훈련하고 관리한다. 각 조교사에게는 관리(위탁) 두수에 따라 마필관리사 8~12명을 배정한다.

조교사는 소속된 마필관리사의 교육 및 자격시험 응시 추천권을 갖고 있다 승진·승급심사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또한 조(팀)를 옮기려고 해도 조교사 승인 없이는 불가능한 구조다. 그러다 보니 훈련 도중 산업재해사고 위험에 처할 수 있음에도 조교사의 부당하거나 무리한 업무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혹서기·혹한기나 미세먼지 등 기상조건이 악화됐을 때는 훈련 또는 경주를 중단해야 하는 상황인데도 매출을 올리려는 마사회와 조교사협회의 막강한 권력 앞에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구조다. ‘마사회→조교사→마필관리사’로 이어지는 권력구조 먹이사슬이다.

서울경마장조교사협회는 47명의 조교사들로 구성된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협회에 소속된 노동자는 490여명으로 이 중 마필관리사는 450명에 이른다. 조교사협회는 해마다 마사회에서 책정된 경마상금과 마주들에게 받은 위탁관리비로 마필관리사 인건비·복지비 등을 책정해 사용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해마다 일정 규모의 불용예산이 발생한다. 지난 3년 동안 조교사협회가 이 불용예산을 창고에 쌓아 두고 있어 현재 노사 갈등의 주요 쟁점이 되고 있다. 또한 노사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근로조건을 변경하고 단체협약을 위반해 노사 분쟁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임에도 시행체인 마사회는 강 건너 불구경하고 있다. 책정한 예산만 넘겨주면 그만이고, 노사 문제는 노사가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마필관리사의 높은 산재율를 줄이고 조교사협회가 일방적으로 통보한 연차휴가보상제 등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우선 인력을 충원해야 하고, 이를 위해 마사회의 개입이 반드시 필요하다.

경마는 사람과 동물이 교감하면서 진행하는 유일한 스포츠 응용과학이다. 그래서 경마를 스포츠의 왕이라고 한다. 생산에서 육성, 훈련까지 이 모든 단계를 걸치고 경주마가 상품으로 나오는 데 3년이 걸린다. 3년 동안 노심초사 어린아이 키우듯이 키워서 경주에 출전하는데 기계로 찍어내는 복권 취급도 못하는 어두운 현실이 안타깝다. 사행성은 있지만 단순히 불로소득으로 취급해 도박으로 치부해 버리는 언론의 잘못된 홍보와 선전이 경마문화를 퇴색하게 만든다.

지난해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직격탄을 맞은 경마산업 자체가 무너지고 있다. 매출이 없는 상태에서 경마유관단체들은 힘겹고 어려운 고통의 세월들을 보내고 있다. 경마산업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으며 코로나19 확산이 지속하면 경마산업 노동자를 비롯해 연관된 사업에 종사하는 약 12만명이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온라인 마권발매가 허용돼야 하는 이유다.

마사회의 책임과 역할

경마산업은 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경마는 도박이라는 뿌리 깊은 인식에, 걸핏하면 여론의 뭇매를 맞고 개혁 대상이 되고 있다. 현장 경마종사자로서는 억울한 부분이 없지 않지만 내부적으로 마사회가 개혁할 부분은 분명 존재한다. 따라서 한국마사회법 개정을 통해 마사회의 권한과 책임이 균형을 이루고 공기업으로서 소임과 역할을 충실히 하고 나아가 어떤 위기에도 경마산업이 든든히 뿌리내릴 수 있도록 온라인 마권발매를 비롯한 상생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