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석군 변호사(법무법인 민국)

대상판결 : 서울동부지방법원 2020. 12. 24. 선고 2018가단132951 판결

1. 사건 개요

망인은 2017년 8월19일 서울아산병원에 간호사로 입사했고 같은해 9월4일부터 내과계 중환자실에서 근무했다. 병원은 10주간의 프리셉터 기간을 마치고 망인의 업무적응도를 미흡으로 판정했다. 망인은 1주일의 프리셉터 교육 기간을 더 가진 후 2017년 11월17일 독립해 근무했다. 망인이 2018년 2월13일 환자의 체위를 변경하는 도중 환자의 담즙배액관이 찢어지는 일이 발생했고, 이틀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망인의 사망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은 2019년 3월6일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상 업무상 사유에 의한 사망에 해당한다고 인정했다. 이 사건은 그와 별도로 서울아산병원을 피고로 해 노동자에 대한 보호의무 위반으로 인한 손해배상과 망인의 초과근로에 대한 수당을 청구한 사건이다.

2. 판결 요지

법원은 서울아산병원이 신입 간호사로서 실제 임상경험이 없는 망인이 11주간의 프리셉터 기간이 경과하자 중환자실에서 2명에서 3명의 환자를 담당하도록 함으로써 기본간호·투약·의료기기, 시술 및 처치 간호 등 일련의 실습 항목을 제대로 습득하지 못한 상태에서 업무를 적절하게 처리하지 못하고 실패감에 빠지게 했다고 봤다. 과중한 업무량으로 인한 압박감과 피로가 더해져 망인이 비정상으로 자괴감이 누적돼 자살에 이르렀다고 판단했다. 즉 아산병원이 망인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과중한 업무를 부여하고 그 업무 부담을 개선하기 위한 관리·감독을 하지 않아 망인이 극심한 업무상 스트레스에서 비롯된 우울증세로 인해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 선택능력 또는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에서 자살에 이르렀고, 병원측이 이를 예측할 수 있었다고 봤다.

그러나 망인으로서도 과중한 업무가 힘들거나 업무에 문제가 있다면 상급자 등에게 정당하게 문제를 제기해 이를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은 점, 선배 간호사로부터 질책을 들었더라도 그 내용이 인격을 모독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이는 점, 피고 병원의 근무환경이 오로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취할 수밖에 없을 만큼 극심한 상황이라거나 다른 선택을 할 여지가 없을 만큼 절박한 상황에 있었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을 참작해 피고의 책임을 40%로 제한한다고 판시했다.

망인의 연장근로 제공에 따른 수당청구에 대해, 망인이 3교대 근무제에 따라 근무하면서 퇴근시간을 경과해 일한 날이 많았던 사실, 중증도가 높은 다수의 환자를 간호하는 경우 환자 상태에 대한 기록 작업이나 근무시간 중 행해야 할 처치를 마쳐야 하는 경우 등에 있어 정해진 근무시간 내에 일을 마무리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피고 병원 간호사의 진술이 있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망인이 근무지 아닌 곳에서의 전산시스템 접속기록만으로 실제 근로시간으로 단정하기 어렵고, 동료들의 귀가 종용을 받았던 적이 있던 사실이 있으며, 담당업무에 필요한 근로시간을 특정하기 어렵고, 연장근로시간을 산정하기도 어렵다고 봐 연장근로수당 청구는 기각했다.

3. 판결의 의미와 과제

이번 판결은 사용자는 근로계약에 수반되는 신의칙상의 부수적 의무로서 피용자가 노무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생명·신체·건강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물적 환경을 정비하는 등의 필요한 조치를 강구해야 할 보호의무를 부담해야 한다는 원칙을 확인했다. 신입 간호사에 대한 교육 미흡 및 과중한 업무 부여를 병원의 보호의무 위반으로 인정하면서, 이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에 대해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하고 손해배상을 명했으므로 환영할 만한 판결이다.

이 판결에서 법원은 서울아산병원의 신규 간호사 교육 미비를 인정했다. 통상적으로 병원들은 신규 간호사들을 ‘프리셉터’라는 경력 간호사에 의한 한두 달여 도제식 교육을 거친 후 바로 업무에 투입하고 있다. 일대일 도제식 교육은 업무의 특성을 고려할 때 필요한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재의 프리셉터 교육 제도는 교육에 대한 체계적인 시스템과 지원 없이, 기존 업무와 더불어 교육 업무를 추가해 경력 간호사들만의 일방적인 희생 속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해 프리셉터의 능력과 처한 상황에 따라 교육의 편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으며, 수직적인 일대일 관계의 특성상 신규 간호사는 교육에 대한 의견 제시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사건에서 당해 병동의 수간호사 또한 10년이 넘는 자신의 수간호사 경력 동안 프리셉터가 변경된 일은 단 한 번 뿐이라고 진술할 정도로 프리셉터와 프리셉티는 일방적인 관계로 묶여 있다. 간호사 개인의 역량과 희생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현재의 신규 간호사 교육은 신규 간호사들이 업무역량이 부족한 채로 현장 투입돼 초과근로와 태움의 악순환에 빠지는 주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이번 판결은 이러한 신규 간호사 교육 시스템 미비와 그로 인한 교육 부재가 망인의 업무 부적응과 실패를 야기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로 인한 업무 부적응에 대한 스트레스가 망인의 사망 원인이며 병원이 이를 충분히 관리하지 못한 책임을 인정했다.

판결의 긍정적인 취지에도 망인 사망에 대한 병원의 책임을 40%로 제한하며, 그 이유로 상급자 등에게 정당하게 문제를 제기해 이를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점 등을 이유로 들고 있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간호사들은 인력부족으로 인해 만성적인 초과근로 상황에 처해 있다. 이를 병동 내부에서 해소하기 위해 업무역량과 적응 여부를 떠나 무조건 현장에 투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망인은 ‘남의 탓을 하지 않는 성격’임에도 자신의 교육부재로 인한 업무능력 미비를 지속적으로 걱정했고, 병원은 이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신규 간호사에게 더 이상의 어떤 정당한 문제제기를 요구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망인의 초과근로가 인정되지 않은 것 또한 아쉬운 점이다. 2019년 고용노동부의 종합병원 11개소에 대한 수시근로감독 결과 연장근로수당 미지급이 모든 병원에서 적발돼 이른바 ‘공짜노동’이 병원 업계 전반에 널리 퍼져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런데 서울아산병원은 수시근로감독 대상에서 벗어나 있었고, 노동부 서울동부지청은 망인에 대한 초과근로수당 미지급을 이유로 한 근로기준법 위반 사건을 불기소 처분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법원이 독자적으로 근무 교대시 발생하는 초과근로시간을 특정하지 못한 점도 어느 정도 이해되는 측면이 존재한다. 그러나 교대시간은 명백히 근로시간이며, 서울아산병원이 초과근로 없이 업무교대를 하기 불가능한 현실을 무시하고, 교대 중 초과근무가 발생할 경우 이를 간호사 개인의 역량부족으로 치부해 온 관행이 명백하기에 이를 인정하지 않은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망인이 사망한 이래로 아산병원은 망인의 사망을 오로지 망인 개인의 성격 탓으로만 돌리며 책임을 회피하고, 제대로 된 사과 한번 하지 않은 채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아산병원은 이번 판결을 계기로 망인의 사망에 대한 자신들의 책임을 인정하고 제대로 된 사과를 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간호사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병동 운영시스템을 개선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다른 병원들 또한 간호업계의 만성적인 인력부족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되돌아보고 반성해야 한다. 다시는 간호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일이 없도록 근무환경 개선을 위해 적극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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