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이 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했다. 처벌 대상과 범위, 처벌 수준, 적용 시기 등이 입법취지를 살리지 못했다며 노동계는 반발하고 있다. 특히 5명 미만 사업장에는 법을 적용하지 않기로 한 것에 대해 비판이 거세다. 반면 재계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과잉입법이라며 재논의를 요구하고 있다. 법사위 법안소위에서 처리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에 대한 평가를 들어 봤다.<편집자>


중대재해기업차별법인가 중대재해책임구멍법인가
권영국 변호사(민변)
 

▲ 권영국 변호사(민변)
▲ 권영국 변호사(민변)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으로 귀결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의 전철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고 간절하게 당부했지만, 국회는 중대재해를 만들어 온 자들의 과잉처벌이라는 주장에 떠밀려 그 장본인들이 법망을 벗어날 수 있도록 구멍이 숭숭 뚫린 개악안을 만들어 가고 있다. 나아가 가장 사고가 많이 발생하고 있는 사업장들을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법의 적용에서 제외하거나 시행을 유예하도록 해 중대재해를 예방하고자 한 취지를 몰각한 ‘빈수레’ 법을 만들고 있다.

첫째, 5명 미만 사업장을 법 적용에서 제외하는 생명차별법을 만들고 있다. 5명 미만 사업 또는 사업장을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법 적용 대상에서 전면 제외했다. 전국 사업체 중 5명 미만 사업체는 79.8%에 이르고, 지난해 1~9월 사고재해 중 33.3%, 중대재해 중 30%, 사고사망자 중 35.0%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눈을 감아 버렸다. 근로기준법 적용에 대한 차별에 이어 목숨까지도 차별을 하겠다는 발상이다. 법의 정의에 합당한가?

둘째, 법 적용 범위를 정의 규정에서 심각하게 축소하고 있다. 1) 질병재해에 대해 사고재해와 달리 적용 범위를 대통령령으로 위임해 인정요건을 협소하게 만들었다. 사고재해에 대해서는 6개월 이상의 요양을 필요로 하는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한 재해로 정의한 데 반해 질병재해는 동일한 유해요인으로 급성중독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에 3명 이상 발생한 재해로 제한했다. 재해를 당한 사람의 수를 차별하고 이조차 시행령으로 일괄 위임해 범위를 더욱 좁힐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2) 다중이용업소에 대해 영업장 바닥면적 1천제곱미터 이상으로 적용대상을 제한했다. 이 조건에 포함하는 업소는 전체 다중이용업소 17만9천256개 중 2.5%인 4천492개소에 불과하고 97.5%는 제외된다. 즉 97.5%에 해당하는 다중이용업소는 화재 및 소방안전에서조차 사각지대로 남게 됐다. 3) 공중교통수단 중 여객자동차의 경우 노선을 운행하는 시외버스만 포함시키고 그보다 훨씬 숫자가 많고 규모가 큰 시내버스·일반택시까지도 적용대상에서 제외해 육상교통수단에서도 광범위한 사각지대를 만들었다.

셋째, 사고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발주사와 발주공사를 법 적용 대상에 제외함으로써 재래형 사망사고에 대해 큰 구멍을 열어 두고 있다. 건설공사나 조선업에서 참사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주된 이유는 발주사의 공사기간 단축이나 탈법적인 공법변경에 따른 경우가 허다하다. 2020년 39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천물류센터 화재참사는 발주사인 한익스프레스의 공기단축 요구에 따른 혼재작업 때문이었다. 나아가 공공기관 사고사망자의 85.2%가 발주공사에서 발생하고 있음이 통계로 확인되고 있다. 그럼에도 발주를 적용대상에서 완전히 배제했다.

넷째, 이 법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책임의 주체와 관련해 경영책임자를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해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이 정의에서 “and(와)”가 아니라 “또는” 이라는 문구를 사용함으로써 안전보건이사에게 책임을 떠넘길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권한과 책임이 있는 최고경영자에게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출구를 만들어 준 셈이다.

다섯째, 경영책임자와 법인에 대한 처벌 수위를 애초 법안이나 정부안보다 훨씬 낮춰 처벌의 실효성을 크게 반감시키고 있다. 1) 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에 처하기로 해 애초 발의안(3년 이상 징역, 5년 이상 징역)은 물론이거니와 정부안(2년 이상 징역)보다 낮춰 버렸다. 그리고 사망 인원수에 따른 형의 가중조항을 삭제해 한 사람이 죽든 100명이 죽든 한 사건이면 한 건으로 처벌하도록 해 처벌 수위를 대폭 축소했다. 2) 법인에 대한 벌금형에서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방지대책으로 마련한 하한형과, 경영책임자 등이 지시한 경우 매출액 10분의 1범위에서 벌금을 가중 처벌하도록 한 조항을 삭제해 대기업 처벌 실효성을 제거해 준 셈이 됐다.

여섯째,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하한(3배 이상 혹은 5배 이상) 삭제와 사업주에 대한 입증책임전환 조항을 삭제한 반면 사업주 면책규정을 추가해 줌으로써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실효성을 반감시켜 버렸다. 기업의 사고처리비용을 안전투자비용보다 높여 안전조치와 투자를 자발적으로 유도하려던 시도를 허사로 만들고 있다.

일곱째, 공무원에 대한 책임과 처벌을 완전히 삭제해 안전에 대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의무와 책임을 면제해 주고 말았다. 국가의 재해예방 의무를 규정한 헌법 규정을 무시하고 안전감독 책임을 외면했다.

여덟째, 중대재해법 시행과 관련해 50명 미만 사업장의 경우 공포 후 3년간 시행을 유예하도록 했다. 사고사망자수의 60~79%에 이르고 사업체의 98.8%, 건설업체의 93.3%에 이르는 사업장에 대해 장기간 법 적용을 지연함으로써 상당 기간 중대재해를 용인하는 과오를 범했다.

이럴 바에야 왜 중대재해법을 만드는 것인가. 중대재해책임에서 도피할 수 있는 법이라면 더 이상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아니라 중대재해기업구멍법이다. 국회는 잠정합의안을 폐기하고 법안심의를 다시 하라. 국민은 구멍 뚫린 ‘바지’ 기업처벌법을 절대 원하지 않는다.


경영책임자·원청에 대한 과잉처벌, 재논의해야
임우택 한국경총 안전보건본부장

▲임우택 한국경총 안전보건본부장
▲임우택 한국경총 안전보건본부장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1소위는 7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을 의결했다. 경영계는 문제 소지가 다분한 동 법안이 충분한 논의 없이 법안소위를 통과한 것에 유감을 표한다.

애초부터 동 법안은 원안 통과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CEO 등 경영고위층 처벌’이라는 일념하에 불명확한 사업주 의무 부여와 근거 없는 과잉처벌, 각종 행정제재 등 동원 가능한 처벌을 총망라했다. 오죽하면 국회 법제실조차 발의 전 법률안 검토 요청을 거부하고 법체계가 전혀 갖춰지지 못했다고 지적했을까.

법안소위 통과안을 두고 ‘입법취지 퇴보’ 같은 평가도 착시현상이다. 최초 발의 당시 처벌 수준이 워낙 비상식적이고 과도했던 탓에 처벌 수준이 ‘완화’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완화된’ 처벌 수준도 현행 세계 최고 수준인 산업안전보건법상 처벌보다 높고, 이토록 강하게 처벌해야 하는 근거와 기준은 찾아보기 어렵다.

일각에선 산업안전보건법상 선고형이 상대적으로 낮은 문제를 지적한다. 그러나 그 문제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과 양형기준 보완 등을 통해 얼마든지 바꿔 나갈 수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그대로 놔둔 채 지킬 수 없는 의무 설정으로 기업을 가혹하게 처벌하는,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법률 제정은 교각살우일 뿐이다.

법안소위에서 의결된 법안도 여전히 헌법과 형법상 과잉금지원칙, 책임주의 원칙 위반 소지가 많다.

특별법으로서 중히 처벌할 수 있으려면 경영책임자 및 원청의 책임 범위를 산업안전보건법보다 명확히 해야 한다. 그러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 3조는 산업안전보건법과 수많은 관계법령 의무를 열거했을 뿐, 정확한 이행 기준이 없다. 결국 형법상 책임주의 원칙에 위배되고, 재해예방 효과도 기대할 수 없다.

경영책임자 처벌도 불합리하다. 경영책임자 처벌형량을 1년 이상 징역으로 낮췄으나 여전히 형법상 과실범에게 부과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과잉처벌이다. 아무리 경영책임자가 최선을 다해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다하고 고의·중과실이 없는 경우에도 면책조항이 부재해 처벌을 피할 수 없다.

특히, 실제 사고가 난 하청기업이 처벌받지 않는 경우까지 원청기업을 처벌토록 규정한 것은 자괴감마저 느끼게 한다. 동 법안은 적용제외된 5명 미만 사업장과 50명 미만 사업장에서 적용유예 기간 중 발생한 사고에 대해 해당 기업은 처벌하지 않으면서 원청은 처벌할 수 있게 규정해 놓았다. 다른 이유는 없다. 단지 ‘원청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법 적용 형평성도 어긋나 버렸다.

사실상 겁박과 협박에 가까운 처벌강화만으로는 산업재해를 감소시킬 수 없다. 이것은 산업안전 전문가들의 일관된 지적이자 선진국에서도 입증된 사실이다. 산재예방에 대한 전문성이 수반되고 행정역량이 뒷받침돼야 의미 있는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경영계는 누차 이 점을 강조하며 예방행정 개선을 요청했다. 하지만 산재 유가족의 단식투쟁으로 일부 단체 의견만 고려되고 경영계 의견은 무시되다시피 했다.

이제 법안이 제정된다면 모든 기업의 CEO는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되고, 소송 폭증 같은 대혼란이 불가피하다. 특히 사망사고 비중이 높은 중소기업의 사업 위축과 일자리 상실이 명약관화하다.

이에 경영계는 동 법안 재심의를 통해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법안을 마련해 줄 것을 간곡히 요청드린다.

최소한 ① 중대산업재해 정의 수정(1명 이상 사망 → 다수 사망자 반복) ② 경영책임자 하한형 징역 삭제 및 상한 규정 ③ 선량한 관리자로서 의무를 다하거나 의무 위반의 고의·중과실이 없는 경영책임자 면책 조항 마련 ④ 법인 벌금 및 징벌적 손해배상 수준 하향이 포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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