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1소위원회는 5명 미만 사업장을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을 의결했다. 그동안 한 번도 쟁점이 된 적이 없다가 법안심사1소위 논의 중에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의 강력한 요청과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의 주장으로 끼워 넣어 신속하게 여야가 합의한 내용이다. 게다가 ‘유예’도 아니고 ‘제외’다. 5명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350만명이 넘고, 5명 미만 사업장에서 산재로 사망하는 노동자가 한 해에 400명이나 된다. 작은 사업장이라고 해서 산재가 피해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큰 위험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노동자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해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던 정부와 여야가 또다시 이 노동자들을 죽음의 일터에 다시 방치하려 한다.

정부와 여야는 중소사업장 사장들의 어려움을 핑계 삼는다. 그런데 이 정부가 중소사업장의 어려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대안을 마련하려고 노력한 것을 본 적이 없다. 대기업의 단가인하 압력에 대한 제대로 된 대응도 없었고, 노동안전을 위한 기본적인 체계 마련도 없었다. 5명 미만 사업장에서 산재가 많이 발생하는데 그 산재를 줄이기 위한 지원방안을 제대로 마련한 적도 없다. 다만 그저 노동자들에게 그 비용을, 책임을 떠넘길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을 뿐이다. 그래서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도 적용받지 못했으며, 재난 상황에서 가장 먼저 쫓겨났으며, 가장 위험한 일터에서 일해야 했다. 왜 중소기업 사장들의 어려움은 모두 노동자들이 책임지도록 만드는가.

제조업과 건설현장 등에서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너무 많이 죽고 있다. 그런데 그 죽음을 막기 위해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엄청난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니다. 안전발판을 만들고, 유해하지 않은 세척제를 사용하고, 안전장치를 잘 관리하면 되는 일들이다. 그래서 너무 원시적인 사고이고 죽지 않아도 될 죽음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5명 미만 사업장은 안전보건체계를 갖추지 않아도 되고, 안전교육을 받지 않아도 된다. 사업장에서 무엇이 유해위험요인인지 알고 바꾸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이것은 방치다. 정부가 지금보다 더 신경 쓰고, 교육하고, 관리·감독하고, 지원하면 더 많은 목숨을 살릴 수 있는데 이 현실을 방치함으로써 한 해 400명이 죽도록 만들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처벌만을 위한 법이 아니라고 계속 이야기해 왔다. 이것은 예방을 위한 법이다. 지금까지 5명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 직업병은, 왜 아픈지를 모르니 아픈 노동자가 그만두는 방식으로 처리됐고, 누군가가 죽으면 은폐되거나 혹은 사업주가 처벌받아 기업이 문을 닫는다. 위험은 상존하지만 누군가가 죽는 것은 그야말로 복불복이다. 관리도 없이 방치된 이 현장에서 산재예방을 위한 조치들은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적용되고 산재 사망에 대한 경각심이 생겨야 작은 사업장의 현실이 드러나고 안전관리체계를 갖추기 위한 정부의 노력과 지원도 강제될 수 있다. 그런데 5명 미만 사업장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적용을 제외하겠다는 것은 이 방치를 더 지속하겠다는 정부와 국회의 선언인 셈이다.

문제는 또 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하청노동자가 사망했을 때 원청의 책임이 있는지 확인해 그에 대한 책임도 묻고 있다. 그런데 5명 미만 사업장의 하청노동자가 사망하면 원청의 책임을 묻기 어려워진다. 이제부터 원청 대기업들은 5명 미만으로 쪼개 하청을 주기 시작할 것이다. 이미 근로기준법이 5명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되지 않는 현실을 이용하는 기업들의 관행이 횡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도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서류상으로 사업장을 쪼개서 위장하기도 하고, 4대 보험을 신고하지 않아서 5명 미만으로 행세하기도 하고, 정규직은 4명 미만으로 일하고 대부분을 파견과 용역으로 채워서 일하는 기업까지 온갖 가짜 5명 미만 사업장이 난무하고 있다. 이런 일이 더 확대될 것이다. ‘제외’가 편법을 낳는다.

여기에 여야는 50명 미만 사업장 적용을 또 3년 유예하기로 했다. 작은 사업장 사업주들의 더 큰 고통, 즉 원·하청 불공정거래나 단가인하 압력 등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서 오로지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법만 만들어 내는 국회다. 단지 작은 사업장에서 일한다는 이유만으로 생명이 저울질당하고 있다. 국회의원들은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을 죽어도 되는 목숨으로 간주하고 지금까지의 방치상태를 지속하겠다고 선언한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은 위험이 아래로 흐르는 것을 막자는 운동이었다. 가장 아래에 있는 노동자들의 위험을 방치하도록 만드는, 5명 미만 사업장 적용제외와 50명 미만 사업장 적용유예가 포함된다면 이 법을 어떻게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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