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적 소유구조 단순·투명화 재벌개혁 '해결사' 매력 불구 적은자본으로 여러기업 지배 경제력 집중 더 심해질수도

“지주회사체제는 재벌지배구조 개혁으로 가는 묘약인가, 아니면 재벌의 탈출구인가?”

엘지의 2003년 지주회사체제 전환 발표를 계기로 지주회사제가 재벌 지배구조 개혁에 미칠 효과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주회사제가 재벌의 복잡한 소유관계를 단순·투명화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경제력 집중을 더욱 심화시킬 위험이 있는 데다 총수의 경영전횡을 자동 차단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대책마련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본지 5일자 21면 참조) ■ 장단점=지주회사는 주식의 소유를 통해 타회사를 지배하는 것을 주사업으로 하는 회사로 △다른 사업을 하지 않고 주식소유를 통해 타회사를 지배만 하는 순수형과 △다른 사업을 하면서 타회사를 지배하는 사업형으로 나뉜다.

지주회사의 장점은 오너와 계열사간의 복잡한 주식소유를 매개로 선단식 경영을 하는 재벌의 소유관계를 지주회사-자회사라는 단순·투명한 관계로 전환하는 것이다.

오너 일가가 5%도 되지 않는 지분으로 계열사간 순환출자를 통해 43%가 넘는 내부지분을 확보하는 기형적 소유구조는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또 하나는 기업구조조정이 쉬워진다는 점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이동규 독점정책 과장은 “여러 사업부문을 자회사로 전환할 경우 비주력부문을 좀더 쉽게 매각할 수 있고, 외자유치도 용이하다”면서“경영효율성 면에서도 모회사-자회사간 자원배분의 왜곡 시정, 자회사간 경쟁유도 등의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주회사제는 순기능에 못지 않은 역기능의 위험을 안고 있다.

무엇보다 오너가 적은 자본으로 여러 기업을 쉽게 지배할 수 있어 경제력집중을 심화시킬 우려가 크다.

예를 들어 지주회사의 부채비율을 100%, 자회사의 부채비율을 200%, 지주회사의자회사 지분율을 30%로 가정할 때, 이론적으로 대주주가 50억원의 출자금으로 지주회사를 설립하면, 자산규모 300억인 자회사를 6개까지 지배할 수 있게된다.

(그림 참조) 또 하나는 이른바 황제경영으로 비난받는 총수의 경영전횡이 자동적으로 사라지거나, 소유-경영의 분리에 따른 전문경영인체제가 정착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엘지 관계자도 “오너는 앞으로도 갖고 있는 지분만큼 경영권을 행사할 것이며, 지금처럼 계열사 회장직을 유지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 재계 움직임=지난해 4월 지주회사제 도입 이후 지주회사 승인을 받은 곳은 모두 4개 뿐이고, 30대그룹에서는 에스케이가 설립한 에너지분야의 지주회사 에스케이엔론이 유일하다.

재벌들은 겉으로는 지주회사 전환에 따른 현실적 어려움을 강조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지주회사제가 결국 가야할 방향이라는 판단 아래 심도있는 검토작업을 벌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달초 공정위가 전경련에서 지주회사제도 설명회를 열었을 때 현대 삼성 엘지 에스케이 롯데 동양 등 40여개 그룹이 참석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면서 “다만 재벌해체 여론이 주춤해지면서 눈치를 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엘지 다음 타자로 삼성, 에스케이, 두산, 동양 등을 유력하게 꼽고 있다.

삼성의 지주회사체제 전환 여부는 이건희 회장의 아들 재용씨로 경영권승계작업과도 관련돼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에스케이는 (주)에스케이를 사업지주회사로 삼아 다른 계열사를 자회사로 두는 안을, 두산과 동양은 각각 (주)두산과 동양메이저를 지주회사로 삼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재계가 지주회사 전환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로 지적하는 것은 돈이다.

현행법상 지주회사가 자회사 주식을 소유하는데는 천문학적 자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다분히 과장된 측면이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엘지는 내부적으로 지주회사의 자기자본은 5조~6조원, 부채비율은 0%, 대주주의 지주회사 지분은 20~25% 정도로 구상 중인데, 이 경우 대주주가 필요한 자금은 최대 1조5천억원 정도”라며 “대주주가 이미 갖고 있는 주식이 있기 때문에 그 규모는 더욱 줄어든다”고 말했다.

다만 계열사의 시가총액이 큰 삼성의 경우는 어려움이 예상된다.

■ 과제=지주회사를 통해 재벌의 지배구조를 개선하려면 무엇보다 기업안팎의 경영감시장치가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공정위 간부는 “재벌총수의 전횡과 선단식 경영을 개선하려면 선진국처럼 이사회 중심의 경영, 사외이사·소액주주의 권한 강화, 시장의 감시·견제기능제고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는 정부가 마련 중인 기업지배구조 개선안이 지주회사체제에서도 여전히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참여연대의 장하성 교수도 “경제력 집중의 단점을 없애려면 지주회사설립요건을 강화해 지주회사 부채비율을 100% 아래로 낮추고, 자회사 주식지분을 50%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며 “선진국의 경우 미국의 지이(GE)처럼 모회사가 자회사의 지분을 100% 보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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