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산업재해 예방사업을 전문으로 하는 민간 종합컨설팅기관인 대한산업안전협회의 새로운 수장이 뽑혔다. 박종선(63) 신임 회장은 자신이 협회의 ‘전환점’으로 기억되기를 바라고 있다. 지난 10년간 협회장으로 역임했던 4명 중 절반은 불명예스럽게 협회를 떠났다. 조직 곳곳에 그런 생채기가 남아 있다. 박 회장이 ‘전환점’을 강조하는 이유다.

협회의 전환이 필요한 이유는 또 있다. 어느 때보다 노동자의 안전할 권리에 대한 목소리가 뜨겁다. 전면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이 올해부터 시행된 데 이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도 가시화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청 설립도 공론화 단계에 있다. 국내 최대 민간 재해예방기관에도 환골탈태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매일노동뉴스>가 23일 오전 서울 구로구 대한산업안전협회 중앙회에서 박 회장을 만나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 대한산업안전협회 기획이사로 2015년부터 2년간 재직하다가 회장이 돼 3년 만에 돌아왔다.
“2년간 몸담았던 곳으로 다시 돌아오게 돼 기쁘다. 2년이라는 시간이 짧다면 짧지만 온갖 열정을 쏟았기에 고향에 돌아온 것처럼 느껴진다.

협회의 지난 3년을 잃어버린 10년으로 비견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협회 유사 이래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원칙과 공정은 사라지고 지나친 실적주의와 자의적이고 불공정한 인사, 방만경영으로 직원들의 사기는 바닥을 쳤다.

이런 상황을 협회 밖에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협회가 좋아서 고용노동부를 그만 두고 협회를 택했던 사람으로서 지난 3년간 협회를 잊은 적이 없다.”

- 이달 초 치러진 회장 선거에 최종후보자 3명 모두 노동부 출신이었다. 3파전인데도 86.7%라는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높은 지지율은 변화에 대한 회원들의 열망이 분출된 것이라 생각한다. 과거에 반복했던 시행착오를 멈춰 달라는 요구다. 협회를 잘 아는 사람, 준비된 사람이 협회를 이끌어야 한다는 주문이다.

협회는 협회만의 독특한 문화가 있다.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라도 협회의 문화와 직원들을 이해하는 데 1년이 걸린다. 재임 기간에 실적을 남기려고 무리하다 보면 직원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생략하고 혼란에 빠지게 된다. 기획이사로 재직하면서 비전 2020을 만들고 실천했다. 그리고 실천과정에서 문제점도 파악했다. 2년간의 경험이 나에게 있었고 3년을 준비했다고 볼 수 있다.

대외적으로도 변화의 물결이 거세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과 산업안전보건청 신설 등 제도나 법령의 큰 틀이 바뀌는 과도기에 있다. 이런 상황이 위기냐, 기회냐를 결정하는 것은 협회가 얼마나 선제적이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느냐에 달렸다. 내부적으로 조직 안정화에 집중하는 한편 환경변화에 적극 대응할 생각이다.”

- 우리나라는 수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산재사망 만인율이 가장 높은 나라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일터에서 노동자의 죽음이 계속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문재인 정부는 2022년 자살·교통사고·산업재해 등 3대 분야 사망자수를 절반으로 줄이는 ‘국민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다. 정부 정책의 목표는 명확하지만 아쉽게도 산업안전 분야에서 뚜렷한 성과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사고가 터질 때는 언론과 국민이 관심을 보이지만 사고가 없으면 관심도 사라진다. 기업에서도 긴장의 끈이 풀어진다. 여전히 산업안전에 대한 투자와 예산이 기업에서 후순위로 밀리는 실정이다.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과 국회에서 논의 중인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경영책임자와 발주자의 산업안전 책임성을 강조하고 있다. 산업안전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인식이 바뀌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인식이 아직까지는 시스템으로 작동하지는 않고 있다. 사고가 났을 때만 관심을 보인다는 것은 안전문화로 정착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안전의 진정한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 그것이 재해발생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에도 중대재해가 줄지 않으면서 국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가시화하고 있다. 일선에서 안전을 책임지는 협회도 무거운 책임감을 느낄 것 같다.
“안전은 누구나 누려야 할 마땅한 권리다. 안전문화가 자리를 잡으려면 특정 정부부처나 기관, 단체의 힘만으로는 안 된다.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협회가 2016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안전문화 컨설팅 사업은 안전문화의 현주소를 정확히 진단하고 처방하며 의식변화까지 이끄는 종합컨설팅 사업이다. 롯데케미칼·SK머티리얼즈·LG이노텍·한국수력원자력 월성원자력본부가 협회로부터 컨설팅을 받았고, 평가가 좋다.

그런데 산재는 90%가 50명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다. 규모가 작은 사업장은 안전문화 컨설팅을 받기가 쉽지 않다.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 열악한 중소기업들도 국가 지원으로 안전컨설팅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나 정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기업도 안전에 우선순위를 두고 투자해야 한다.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으로 기업의 최고경영책임자(CEO)와 발주자에 사고 책임을 부과하고 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논의도 기업주의 의식 변화에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기업주의 안전에 대한 의지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노동자들도 작업할 때 안전수칙을 지키다 보면 작업속도가 느려지고 까다롭다고 생각해 안전을 귀찮은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정부와 사업주·노동자 모두 안전이 가장 소중하고 내 생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인식해야 한다.”

-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일상화하고 강도 높은 방역지침이 시행 중이다. 협회의 상황은 어떤가.
“재해예방 활동 대부분 대면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곤란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지속하면서 협회에서는 사업장 점검이 가능한 경우와 사업장 방문이 어려운 경우, 코로나19 확진 등으로 사업장이 임시 폐쇄된 경우로 구분해 매뉴얼을 만들었다. 대면이 어려운 경우 서면과 원격관리를 진행하고 있다.

우려스러운 점은 코로나19로 산업안전보건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특히 안전교육은 코로나19 시대에도 지속해야 하는데 현재 집합교육은 멈춤 상태나 다름없다. 물론 온라인 교육 시스템을 사전에 준비해 왔기 때문에 온라인 교육은 이어지고 있다.

언택트 시대 안전교육에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최근 몇 년간 우리 협회는 안전보건 이론뿐만 아니라 재해 상황을 간접 체험할 수 있도록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을 안전교육에 적용하고 있다. 언택트 시대에 맞게 비접촉·비대면 사업을 활성화할 계획이다.”

-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사업 한 가지만 꼽는다면..
“우리 직원 1천100명 중 1천명이 매일 현장으로 나간다. 사업장에서 안전 실태를 점검하고 사업주의 고충을 듣고 무엇이 문제인지 파악한다. 수천 개의 사업장에서 안전진단을 한다. 이런 조직은 대한민국에 우리 말고 없다. 우리가 아는 것을 데이터베이스화 해 안전을 위한 제도와 정책을 생산하는 데 힘이 되고자 한다. 가장 현실에 입각한 타당성 있는 정책과 법령을 만들 수 있다고 본다.”

박종선 회장은

연세대 사회학과를 나와 1991년 행정고시 34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25년여간 노동부에서 근무하면서 노사조정과장·서울남부지청장을 거쳤다. 충남지방노동위원장을 끝으로 공직을 떠났다. 2011년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의 사용자를 현대차로 판단하고 부당징계 판정을 이끌었다.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강단에 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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