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연수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정책국장

아슬아슬하게 쌓아 올린 적재물과 압도당하는 크기. 고속도로에서 화물자동차를 보고 불안한 마음에 속도를 내서 추월해 본 경험은 누구나 한 번씩 있을 것이다. 매년 고속도로 사망사고의 51%는 화물자동차 사고이고 이는 대형 교통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뉴스에서 화물자동차는 대부분 ‘가해 차량’으로 소개된다. 하지만 실제 화물노동자는 불합리한 화물운송시장 구조의 피해자다.

벌크시멘트르레일러(BCT)는 총길이 16미터, 높이 3.5미터, 총중량 40톤에 육박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화물자동차 중 하나다. 지난달 28일 BCT 화물노동자 고 심장선씨는 3.5미터 높이의 차량 꼭대기에서 상·하차 작업을 하다가 안전장치 없이 추락해 사망했다. BCT 화물노동자들은 이 같은 죽음이 일상이라고 말한다. 이미 영흥화력발전소에서 세 달 전 상·하차 산업재해 사고가 났고, 매년 수많은 화물노동자가 운전 중에, 상·하차 중에, 휴식 중에 목숨을 잃는다.

사망 경위는 다양하다. 고 심장선 노동자처럼 안전장치와 책임자 없이 무리한 상·하차 업무 과정 중에 사고를 당하는 경우도 있고, 졸음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 과로로 인한 심혈관질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사고의 원인이 ‘3과’로 불리는 과적·과속·과로라는 일상적인 노동환경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화물노동자들은 낮은 운임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항상 시간에 쫓기며 장시간 노동을 한다. 결국 구조적으로 노동환경을 바꾸기 위한 대책이 있어야 도로의 안전과 화물노동자의 생명을 지킬 수 있다.

대안은 있다. 2019년부터 수출입 컨테이너와 시멘트 운송 품목에 적용되는 안전운임제는 화물노동자에게 적정한 운임을 보장해 위험한 운송(과로·과적·과속)을 줄이는 취지로 도입된 제도다. 화물연대는 출범 이후 꾸준히 안전운임제(옛 표준운임제) 도입을 요구로 내걸고 투쟁했다. 운임이 1만원 증가할 때마다 사고 횟수는 3.19%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이광훈·김태승, 2017)처럼, 안전운임은 노동자의 권리 확대가 사회 전체의 이익과 맞닿아 있음을 확인하는 사례다.

안전운임제를 도입해 그동안 공급사슬의 정점에서 책임을 은폐한 대기업 화주들에게 직접적인 책임 부여가 가능하다. 다단계 하청구조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고 심장선 노동자 사망 당시에도 원청인 한국남동발전은 하청업체인 고려에프에이에 책임을 떠넘겼다. 안전운임제가 적용됐다면 운임을 주는 주체가 남동발전으로 명확하기 때문에 벌어지지 않았을 책임 공방이다. 특히 현재 안전운임제 구조가 상향식 운임결정(화물운송에 소요된 원가 비용을 아래부터 계산해 결정)이기 때문에 특수고용 노동자들인 화물노동자들의 노동에 소요되는 비용을 구조적으로 원청 화주가 지불하게 된다.

문제는 이러한 안전운임제가 3년 일몰제이며 제한된 품목에만 적용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같은 BCT로 실어 나르더라도 고 심장선 노동자가 운송했던 탄재, 돌가루, 일부 시멘트 제품 등은 안전운임 미적용 대상이다. 화물노동자는 모든 비용과 책임을 전가받는 것도 모자라 도로 위의 시한폭탄이라는 오명까지 쓰며 위험한 노동환경에 내몰리고 있다. 이제 화물노동자가 질문할 차례다. 수많은 사회적 비용을 야기하는 화물차 교통사고와 산업재해 사고의 진정한 가해자는 누구인가? 무엇이 바뀌어야 도로가 안전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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