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지희 서울시 동부권직장맘지원센터장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쩨쩨하다’는 형용사를 “너무 적거나 하찮아서 시시하고 신통치 않다”고 풀이하고 있다. 미루어 짐작건대, 여자가 하는 집안일 정도로 치부되는 ‘가사노동’도 쩨쩨하게 여겨지는 일들 중 하나일 것이다. 실제로 국어사전에는 가사노동이나 가사노동자라는 단어 자체가 없다. 대신 식모·파출부·가정부 따위의 단어를 찾아볼 수는 있다.
식모(食母) : 남의 집에 고용되어 주로 부엌일을 맡아 하는 여자
파출부(派出婦) : 보수를 받고 출퇴근을 하며 집안일을 하여 주는 여자
가정부(家政婦) : 일정한 보수를 받고 집안일을 해 주는 여자
우리 사회에서 가사노동자는 그저 반찬값을 벌거나, 애들 학원비나 보탤 요량으로 남는 시간을 활용해 부업에 나선 중장년 주부 정도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는 실체적 진실과 거리가 멀다. 가정을 방문해 세탁·청소·요리 등 가사서비스를 제공하는 가사노동자 규모는 최소 15만6천명에서 최대 6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최근 급증하는 택배기사 규모가 5만4천여명 수준임을 감안하면, 가사노동 시장은 그보다 최소 3배에서 최대 11배로 어마어마한 규모다.

가사노동자 규모 택배기사의 3~11배

문제는 열악한 노동조건이다. 산업화 이전인 1953년 제정된 근로기준법은 이른바 ‘가사사용인’에 대한 적용 배제를 명시하고 있다. 이는 노동관계법·사회보장법 전반의 적용 제외로 귀결됐다. 오늘날까지도 가사노동자들은 최저임금·퇴직금·연차수당 등 최소한의 법적 보호를 기대할 수 없는 처지다. 직업훈련·경력개발을 통한 사회적 지위 향상을 도모하기도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가사노동자 취업알선은 주로 직업소개소나 개인 간 거래 위주의 비공식 시장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는 가사노동자에 대한 사용자 책임을 불분명하게 만드는 핵심 요인이다. 사용자 부재는 업무표준화 지체와 그에 따른 가사서비스의 품질 저하를 초래하기도 한다. 그에 따른 피해는 소비자의 몫이다.
여기에 최근 코로나19 전염병 확산은 가사노동자들의 고충을 가중하고 있다. 대면접촉 서비스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가사노동자들은 40%가량 수입이 감소하는 등 생계난에 직면한 상태다. 그럼에도 실업급여·휴직급여 등을 받을 수 없고, 정부 차원의 긴급고용지원금 역시 소득 증빙의 어려움으로 받기 힘든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현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는 3건의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안’이 제출돼 있다. 3개 법률안 모두 정부가 인증한 가사서비스 제공기관이 가사노동자를 직접 고용함으로써 해당 노동자가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법령과 사회보험법의 적용을 받도록 하고 있다. 요컨대 정부가 인증한 가사서비스 제공기관이 사용자 책임을 부담하도록 하자는 취지다. 아울러 3개 법률안 모두 가사노동자의 최소 노동시간을 주당 15시간으로 규정함으로써 사회보험 가입과 최저임금 적용 등이 가능하도록 규율하고 있다.
물론 국회에 제출된 3개 법률안이 지닌 한계도 뚜렷하다. 이들 법안은 외형상 가사노동을 수행하는 모든 가사노동자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고, 고용노동부 장관이 인증한 가사서비스 제공기관과 근로계약을 체결한 가사노동자에게만 적용된다. 기존처럼 직업소개소나 개인 간 거래를 통해 일자리를 구하는 가사노동자의 경우 여전히 각종 보호의 사각지대에 남게 된다.

가사노동자법 ‘가사노동자 보호 첫발’

지난달 4일 여성노동단체들이 국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가사노동자 관련 법률안의 통과를 한목소리로 촉구했다. 법률안이 지닌 한계에도 가사노동자 당사자들은 법률 시행이 가사노동시장을 공식화하고 노동자 처우를 개선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앞서 대한상의 등 경영계 역시 양질의 가사서비스 확대를 통한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증가가 기대된다는 점에서 법률 제정에 찬성했다. 노사의 이견이 크지 않은 무쟁점 법안인 셈이다. 정쟁에 밀려 노사의 목소리가 외면받는 상황이 더 이상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한다. 12월 정기국회 내 관련 법안 처리를 거듭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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