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정부의 총체적 난국을 틈타 있는 사람들의 기득권을 부활시키고 없는 사람들의 보호막을 낮추려는
보수회귀 조짐이 갈수록 완연해지고 있다는 점에 더더욱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요즘 우리는 한심스런 역사의 반복을 지켜보고 있다.

지난 4년전 이맘쯤 국가부도 위기에 직면하여 IMF 구제금융에 치욕스럽게 연명하던 고통스런 시절이 지나갔다 싶더니, 다시금 또다른 혹독한 경제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외환위기 상황에서 걷잡을 수 없이 이어지는 기업부도와 전례없던 고용조정의 열풍속에서 빚어졌던 대량 실업사태가 한동안의 경기회복을 통해 진정되는가 했더니, 최근 계속되는 경기침체로 기업들이 인력감축과 채용중단에 나서면서 실업난이 또다시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역사의 악순환은 이에 그치지 않고, 현정부의 개혁실패와 집권말기증세에서 역시 찾아보게 된다. 신한국을 건설하겠다는 김영삼 정부의 요란스런 개혁정책들이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정쟁으로 뒤범벅되어 권력 누수를 재촉하여 급기야 외환위기를 자초하였다면, DJ 정부는 임기말의 1년을 앞두고 닮은꼴처럼 똑같은 전철을 밟아나가고 있는 것이다. 초유의 정권교체를 통해 등장한 국민의 정부는 시장의 원리를 전면적으로 도입하려는 4대 부문(기업·금융·공공·노동)의 구조혁신과 복지·의료·교육·남북관계·여성 등의 사회 전 분야에 대한 개혁정책들을 야심차게 벌여왔다.

그러나 4년이 지난 지금 현 정부는 개혁추진의 신자유주의적 발상과 어설픈 시행착오로 인해 이해당사자들의 거센 반발과 예상치 못한 파생문제들에 사로잡혀 깊은 수렁에 빠져들게 되었을 뿐 아니라, 벌써부터 집권기반의 와해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DJ 개혁정책의 요체로서 관통되어온 시장 원리는 있는 사람(기업)들에게는 아직껏 충분치 않다는 볼멘 불만의 소리가 제기되고 있는 반면, 없는 사람(노동자)들에게는 이미 두려운 원성의 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노동자들은 정부와 기업들의 고용유연화 정책에 의해 방출의 대상이 되거나 비정규직의 불안정 취업을 감수하게 되었으며, 시장의 전제적 규율에 의해 소득격차의 확대와 빈곤가구의 증가가 그 돋보이는 성과(?)로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전 정부들에 비해 나름대로 진보성을 보였던 DJ 정부의 복지정책 역시 없는 사람들에겐 미미하게 체감하게 되어지거나, 의료부문 등에서와 같이 혼란과 부담을 가중시키는 결과만을 초래하기도 하였다.

이렇듯, DJ 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경제위기의 극복과 21세기 선진사회로의 발돋움이라는 희망은 여지없이 깨진 채 서민생활의 시계추는 4년 전의 암울한 시절로 되돌아가 있는 것이다. 외환위기 직후 나라의 파국을 막아보자고 너도나도 장농속 반지를 헌납하던 국민적인 열기도 시장의 횡포와 정치권의 무능과 아귀다툼에 시달리면서 차갑게 식어버렸으니 닥치는 경제위기를 넘어설 새로운 희망 찾기가 더욱 어렵게 된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아울러 DJ 정부의 총체적 난국을 틈타 있는 사람들의 기득권을 부활시키고 없는 사람들의 보호막을 낮추려는 보수회귀 조짐이 갈수록 완연해지고 있다는 점에 더더욱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열심히 노력한 대통령'으로 기억되길 바라는 DJ의 소망과는 달리 그의 집권성과가 없는 사람들에게 참담한 고통과 시련을 안겨주고 이에 더하여 보수회귀의 여지를 열어준 대통령으로 기록될지 모를 지난 4년의 궤적이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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