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과 한국경제연구원이 금융권의 부실채권규모 추정을 놓고 정면 충돌했다. 특히 학자들이 양측의 공격수로 나서 더더욱 이목을 끌었다.

금융감독원은 19일 한국경제연구원이 전날 발표한 `금융권의 잠재부실채권규모와 2차 금융구조조정방향'(서강대 남주하 교수 작성)이란 보고서에서 금융권 잠재부실이 110조∼120조원이라고 밝힌 데 대해 강병호 부원장이 직접 나서 객관성이 없는 `학생리포트 수준'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보고서 작성자인 남주하 서강대 교수도 "정부가 부실채권규모를 인정하라"고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 금감원 `근거 빈약' 지적

강병호 부원장은 19일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한경연의 부실채권 추정은 합리성이 결여됐다며 금감원이 당초 발표한 91조2000억원이 타당한수치라고 반박했다.

강 부원장은 "한경연이 조사대상으로 삼은 5290개 업체중 20%가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는 부실기업이며 따라서 금융기관 총여신 590조원중 20%인 120조원이 부실채권이라고 주장했으나 근거가 박약하다"고 말했다.

강 부원장은 우선 "조사대상 기업 중엔 금융기관 여신을 받지 않는 곳이 있으며 각 금융기관도 여신심사 전문가들이 우량기업을 선별해 대출하기 때문에 이자를 제대로 못내는 부실기업은 여신심사 대상에서 제외되는 곳이 많다"고 설명했다.

강 부원장은 또 "총여신 중엔 지급보증(작년말기준 45조원)이 포함돼 있어 이 부분이 모두 이중 계산됐으며 총여신 중엔 가계대출이 20% 정도 포함돼 있다는 점도 간과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한경연이 부실기업의 회사채발행규모를 20조~30조원으로 보고 이를 모두 부실채권에 포함시킨 데 대해서도 이들 업체는 재무구조가 불량해 금융기관으로부터 회사채 지급보증을 받기가 극히 어려운 상황이라며 반박했다.

@ 한경연 `현실 인정하라' 반박

이에 대해 남주하 교수는 "정부가 금융기관의 부실채권규모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엄격하게 구조조정을 해야한다는 취지에서 자료를 작성했는데 오히려 부인하는 게 이해가 안 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잠재부실에 대한 연구는 매년 해왔으며 올해도 3개월전부터 준비해와 당초 이달 초순에 발표하려고 했으나 금융파업 때문에 시기를 늦추게 됐다고 보충 설명했다.

남 교수는 "조사대상기업의 부실기업 차입금만 해도 96조원에 이르고 대상에서 빠진 기업들의 98년 차입금만 해도 20조원에 이른다"며 금감원이 부실채권의 실체를 인정할 것을 촉구했다.

남 교수는 "특히 금감원이 91조2000억원이라고 밝힌 것은 2금융권에 대해서는 FLC기준을 적용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하며 "이 기준을 적용하게 되면 2금융권 잠재부실은 급속히 늘어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금감원은 금융기관의 보고서를 토대로 작성했고 나는 기업의 결산자료를 토대로 조사했다"며 금융기관에서 부실채권규모를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을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남 교수는 강 부원장이 지적한 △부실기업 20%의 타당성 △지급보증중복계산 △가계대출분 미고려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일리있다"고 수긍하면서도 전체적인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정도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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