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설산업연맹 주최로 1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양성 평등한 건설현장을 위한 제도개선 마련 토론회에서 김경신 연맹 여성위원장이 발제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건설노동이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2019년 고용노동부 사업체노동력조사에 따르면 건설노동자 201만9천587명 중 20만2천399명은 여성이다. 편견을 딛고 건설업에 새로 뛰어든 여성노동자는 2015년 2만7천895명에서 지난해 6만5천638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그러나 건설현장은 여전히 남성의 공간으로 남아 있다.

건설산업연맹은 18일 오후 국회에서 송옥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과 김주영·권인숙·김교흥 더불어민주당 의원, 심상정·강은미 정의당 의원과 ‘양성 평등한 건설현장을 위한 제도개선 마련 토론회’를 열고 건설현장의 여성 건설노동자 차별 문제를 진단했다.

“여자화장실 깨끗하다며 들어오는 남성노동자”

여성 건설노동자는 편의시설 사용부터 차별을 겪는다. 화장실과 휴게실 같은 기본적인 시설 마련도 안 돼 있다. 2018년 ‘건설현장 편의시설 실태조사’ 연구에 따르면 샤워장·탈의실을 건설현장에 설치한 비율은 2018년 기준 44.8%에 불과했다. 이 가운데 28.7%는 샤워장·탈의실의 성별을 구분하지 않아 남녀가 같이 쓰거나 남성이 독점해 여성 건설노동자는 개인차량 등에서 혼자 쉬거나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휴게실 역시 설치 비율은 88%였으나 남녀를 구분한 경우는 60%에 그쳤다.

화장실은 남녀를 구분한 비율이 92.1%로 높았으나 현장의 목소리는 달랐다. 2018년 여성가족부의 특정성별영향평가에 참여한 한 여성 건설노동자는 “남자화장실보다 깨끗해 일부러 여자화장실에 들어오는 사람도 있다”며 “원청에 불편하다고 항의했으나 어쩔 수 없다는 말만 했다”고 지적했다.

“원청·업체 관리자가 성희롱 더 많이 한다

성희롱은 시시때때로 일어났다. 특정성별영향평가에 참여한 여성 건설노동자는 “원청사람부터 성희롱을 하기 때문에 현장 노동자 뿐만 아니라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성희롱 예방교육)을 받아야한다”며 “성희롱은 같이 일하는 동료가 아니라서인지 업체 관리자가 더 많이 한다”고 했다.

토론회 주제발제를 한 김경희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건설노동자들은 무엇이 성희롱이고 성폭력인지 인지하지 못하고 있고, 피해자가 인지했더라도 어디에 도움을 요청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다수”라고 설명했다.

건설노조가 지난 13~16일 조합원 9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59명(63%)은 현장에서 성적 수치심을 느낀 경험이 있었다. ‘현장 사람들의 음담패설·욕설’(22%), ‘아무 데서나 볼일을 보는 현장 사람들’(68%), ‘임금·처우 비하’(10%) 등이다.

명칭도 차별적이다. 건설현장에서 여성 건설노동자는 이름으로 불리기를 바랐지만(49%), 이모님·아줌마·여사님 등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았다.

여성이란 이유로 임금·채용 차별

임금 격차와 고용불안도 호소했다. 김 선임연구원은 “여성 건설노동자는 남성 위주 현장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낮은 임금을 받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채용이 되지 않거나 채용 이후에 단순 업무에 배치돼 기술을 배울 기회를 갖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지속적인 임금 불평등 구조에 놓이고, 경력도 짧다는 것이다. 실제 남녀 임금차별을 묻는 건설노조 설문에 응답자 43명이 있다(46%)고 답했다. 없다는 응답은 33명(35%), 모르겠다는 응답은 17명(18%)이었다.

2018년 특정성별영향평가에 참가한 또 다른 여성 건설노동자는 “플랜트 건설현장에서 여성은 조공 이상 진급할 수 없다”며 “남자는 기능공이 되지만 여성은 경력을 쌓아도 단가만 조금 올라간다”고 말했다.
 

타워크레인 배우려 했더니 “이걸 여자가 왜 하냐”

이런 배경에는 지인을 통해 일을 얻는 고용방식이 자리한다. 건설노동자는 팀장·반장·기능공 등 인맥으로 일을 구한다는 비율은 76.3%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용역 등 유료직업소개소는 18.5%, 새벽 인력시장은 3.3%, 노조나 무료직업소개소를 통했다는 응답은 0.9%였다. 지인을 통해 일을 얻고, 이후 지인을 통해 현장에서 기능을 습득하는 과정에서 여성은 밀려나는 셈이다.

2018년 영향평가에 참가한 한 여성 건설노동자는 당시의 경험을 생생히 전했다. 그는 “타워크레인을 배우려고 다른 남성 기사 장비에 올라갔는데 그가 네 시간 동안 이걸 왜 배웠냐고 묻더라”며 “80미터를 죽을 각오를 하고 올라갔는데 나를 뒤에 세워 놓고 여자는 취업이 안 된다고 말하니까 비애감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전문가들은 여성 건설노동자 기술교육과 건설현장 성희롱 예방교육 강화 등을 촉구했다. 김경희 선임연구원은 “미국은 남성이 집중된 직종에서 여성 참여를 높이기 위해 여성을 위한 비전통적 고용법을 제정해 운용하고 있다”며 “건설업과 같은 남성중심적 업종에 여성 진입을 높이기 위해 여성 재취업 과정에 건설기능인력 양성 등 훈련과정을 적극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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