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성민 관악구노동복지센터 사무국장

# 노동자 A씨는 동영상 편집 일을 하다 퇴행성 디스크로 걷지도 못할 지경에 이르러 퇴사했다. 실업급여를 받고 싶은데, 사업주는 일자리 안정자금을 받고 있어 퇴사 후 2~3달이 넘었는데도 이직확인서를 처리해 주지 않고 있다. 자진퇴사 처리를 종용하고 있다.

# 노동자 B씨는 어린이집 근무 중 목 디스크로 인해 목과 다리에 장애가 왔다. 어린이집은 퇴사를 종용하면서도 “해고”라는 말은 명시적으로 하지 않았다.

# 행사 대행 일을 했던 노동자 C씨는 나무 합판이 쓰러지는 바람에 발목·허리를 다쳤다. 처음에는 단순 타박상으로 봤다. 사측에서 공상 처리를 하자고 해 동의했다. 그런데 다친 부위에 차도가 없어 다시 검사하니 디스크·복합부위통증증후군 확진을 받았다. 회사에서는 소정의 합의금을 주는 대신 산재를 신청하지 마라고 하고 있다.

관악구노동복지센터가 상담한 ‘산업재해’ 사연들이다. 모두 지역의 소규모 사업장에서 벌어진 일이다. 재해를 당한 후의 ‘삶’에는 한동안 재해의 그림자가 아른거린다. 사례에서 보이는 업무상재해 이후 사업주와의 일들은 모두, 계속되는 삶 속에서 일어나는 ‘재난’이다.

우리 지역 소규모 일터의 노동환경은 어떠한가. 최근 서울연구원에서 발간한 ‘서울시 중소기업 노동환경 현황과 정책 개선방안(2020)’에 따르면 서울시 전체 재해자의 93.8%, 전체 사망자의 85.2%는 중소기업에서 발생하고 있다. 특히 판매업과 요식업에 집중된 10명 미만 규모의 사업체에서는 반복적 동작과 고객 등에 의한 위험 외에 정신적 위험에 특히 취약했다. 오히려 화학물질이나 감염물질 취급에는 거의 노출되지 않은 편이었고, 이는 담배 연기에 대한 노출 정도보다 낮다. 산재에 대해 노사자치 차원에서 선제 대응할 수 있는 노조·노사협의회 조직 비율이 300명 이상 대기업은 48.8%에 이르지만, 10명 미만 영세사업장의 조직 비율은 2.3%에 불과하다.

영세사업장의 업무상재해는 일터의 물리적 환경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사회 구조적 원인에 좀 더 기인한다. 노동자는 자신에게 도사리는 위험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어떤 안전보호 장구가 필요한지 알지 못한 상태에서 사고를 당하기 일쑤다. 서울시의 2018년 산재사고 사망자 971명 중 92.9%가 중소규모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47.3%는 10명 미만 영세사업장에서 일어났다. 인지하지 못한 위험에서 발생하는 사회의 손실, 다른 말로 하면 “참사”일 것이다.

전체 재해자와 사망자의 적지 않은 수가 10명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서 발생한다. 그러나 영세사업장에 대한 실효적인 감시와 예방 시스템은 마련돼 있지 않다. “소상공인 응원”은 좋다. 그럼에도 사업주는 창업하면 안전한 노동환경을 갖출 의무가 있다. 하지만 현실의 취약계층 노동자는 산재 이후 꽤 자주 삶이 가로막힌다. 그것도 일자리 안정자금이나 무재해시 산재보험료 감면과 같은 “좋은 제도” 때문에.

소규모 사업장 산재와 그 이후의 해고·권고사직 같은 상황에 대해 한국 사회는 여전히 온정적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래도 되기 때문”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의 안전보건관리담당자 선임 의무에 10명 미만 영세사업장은 제외된다.

일하는 사람의 위험은 모두 통제가 가능해야 한다. 그것은 시민 안전보장에 대한 국가의 당연한 책무다. 모든 위험은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는 위험을 감시하고, 안전을 강제해야 한다. 그래야 정의로운 사회 아닐까. 왜 우리는 누군가가 죽어야만 위험을 인지하는가. 죽음만이 사람을 사람으로 보게 하는 걸까. 죽음에 이르지 않은 재난은 그저 누군가에겐 “비용”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걸까.

중대재해기업처벌법‘만’으로는 부족하다. 누군가가 죽기 전에 재난을 예방하고 위험을 관리하며 통제한다는 것에 내가 일하는 곳의 규모가 변수가 될 수 없다는 당연한 원칙. 국가가 짊어질 책임은 바로 이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 개정‘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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