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익찬 변호사(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249개 노동·시민단체가 참여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는 9월22일부터 30일 동안 10만명의 지지를 받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 법은 2005년 살인기업 선정식 이래로 영국과 같이 보편적인 산업재해·시민재해의 원인 제공자를 찾아서 처벌하자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나 가습기 살균제 피해 같은 재해가 대상이 될 수 있다.

지난 20대 국회에서도 개별 국회의원의 발의가 있었으나 심의도 하지 못한 채 폐기됐으니, 이번에는 신설된 국회법상 국민동의청원 제도를 이용해서 직접 국회에 법률안을 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정부·여당 일각에서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의견인 것으로 보인다. 또다시 심의되기도 전에 좌초할 위기인 것이다. 15년 넘도록 노동·시민사회계, 참사 피해 유족의 목소리를 담은 법이 이런 대접을 받는 것은 냉담하고 가혹한 처사다.

형법은 업무상과실치사상죄를 둬서 사람의 생명·신체를 다루는 ‘업무’를 하는 사람의 주의의무 위반이 포착되면 처벌해 왔다. 교통사고부터 산재·세월호 참사·가습기 살균제 참사에 이르기까지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처벌받아 왔다. 다만 ‘과실’을 처벌하는 이 조항의 한계상 형량이 낮다. 또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처벌을 피하는 방법도 생겨났는데, 하급자에게 ‘업무’에 관한 ‘권한’을 위임해 버리면 ‘형사책임’도 같이 떠넘겨져서 꼬리 자르기가 가능해졌다. 그럼으로써 위험한 상황을 만드는 데 의사결정을 한 원인 제공자를 찾아 내 기소하고 처벌하기보다는, 당장 눈에 보이는 책임자를 처벌하는 수준에서 그쳐 왔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상대적으로 높은 형량을 정하고 있지만, 근로기준법상 근로관계에 종속된 사람이 피해자인 경우, 그리고 산업안전보건법상 의무위반이 확인된 경우에만 처벌되므로 여전히 한계가 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현행법의 한계를 뛰어넘고, 참사가 발생하면 공식처럼 반복되는 일을 막음으로써, 안전하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주춧돌을 놓기 위한 법이다.

그러면 무슨 일이 반복되는지 살펴보자.

사고 초기에는 담당자의 개인적 일탈이라거나 부주의를 탓하고, 그래서 도저히 예상할 수 없었다고 발뺌한다. 그러다가 구조적인 원인이 드러나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정부 당국은 관련법 수백 건 위반을 적발해 기소한다. 그러나 판결은 꼬리 자르기와 솜방망이 처벌이다. 재발방지 대책이라는 것도 나중에 보면 구멍투성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른 곳에서 비슷한 일이 반복된다.

필자는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이 소규모 사업장의 역량에서 빠짐 없이 준수하기에 과도한 사항들을 요구하고 있어서, 사고가 발생하면 수백 건의 법 위반사항을 처벌하고 끝나는 일이 반복되는 등 무고한 범죄자만 양산한다는 비판에 일정 부분 동의한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이 안전보건에 있어 최저기준 준수만 요구하고 그 기준을 달성하지 못하면 규제와 처벌로 이어지는 단순한 구성이어서, 최저기준 이상을 사업주가 달성하도록 하는 ‘자율규제’에 관한 유인을 제공하지 않아서 문제라는 주장에도 공감한다. 처벌이 우선시되면 자율규제를 포기하고 문제점을 은폐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사고 원인 조사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관점에도 동의한다.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의 권한을 강화하고, 노조가 사업주를 견제할 수 있도록 안전보건 활동을 강화하고, 작업중지권 행사를 폭넓게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에도 동의한다.

정부·여당의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위와 같은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담은 것이라면 환영할 것이다. 그러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대안으로 논의되는 수준이라면 찬성할 수가 없다. 국민동의청원의 대안으로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논의되기에 앞서, 이 법을 심도 있게 논의하는 것이 먼저여야 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