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준형 공인노무사(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 모임)

2014년께 사기 피해를 당한 적이 있다. 인터넷에서 중고로 전자기계를 구입했는데, 고칠 수도 없을 만큼 심하게 고장난 제품이 배송된 것이다. 주말에 일한 돈으로 평일에 공부하고 있던 나는 한 달에 벌 수 있는 임금(30만원)을 모두 날리게 될 위험에 처했다. 앞이 깜깜했다. 부주의한 나를 탓하기도 했다.

사기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는 범죄다. 나는 관할 경찰서에 신고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사가 진행됐고, 피해금을 모두 돌려받을 수 있었다. 피해자로서 나는 국가기관의 도움으로 어렵지 않게 범죄 피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노무사로 일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떤 범죄의 피해자인지에 따라 국가기관이 개입하는 정도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형벌을 받을 수 있는 범죄행위라고 할지라도 위반 법률이 노동법이라면 국가기관에서 적극적으로 수사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말이다.

첫 고용노동부를 찾아갔던 첫 사건이 아직도 기억난다. 호텔에서 일하면서 최저임금도 지급받지 못한 노동자의 신고 사건이다. 담당 근로감독관은 노동사건의 경찰관임에도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보였다. 최저임금으로 계산한 임금 차액분을 제출하자 “숙박업소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임금액으로는 과도하다”는 이유로 계속해 합의만을 종용했다.

결국 노동시간을 입증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제출했는데도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는 근로감독관에게 “판사처럼 판단만 하려고 하지 말고 수사를 하라”며 싸운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 이후에도 유사한 일은 수도 없이 반복됐다. 2교대로 숙박업소 청소를 하며 최저임금도 지급받지 못한 이주노동자는 근로감독관으로부터 “우리는 못 받은 돈 받아 주는 곳이 아니다. 오늘 합의하지 않으면 한푼도 못 받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결국 최저임금법에 따라 산정된 체불임금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에 합의하기도 했다. 주휴수당을 지급받지 못한 청소년 노동자 사건을 맡은 근로감독관은 사업주가 강력하게 반발한다는 이유로 소정근로시간에 따라 주휴수당을 산정하지도 않았다.

오로지 근로감독관 인성을 탓할 문제는 아니다. 노동부 근로감독관 1명이 약 1만5천여명의 노동자, 약 1천500곳의 사업장을 담당하면서 나타나는 부작용이다. 아무리 능력 있는 근로감독관이라 할지라도 물리적으로 부족한 시간은 어찌할 수 없다. 한 근로감독관은 넌지시 당장 자신이 처리해야 하는 사건만 150건이라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모든 사건에 집중할 수 없는 근로감독관은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이다. 뒷말이 나오지 않을 사건은 적당히 처리하고, 대리인이 있거나 강한 노조가 신고한 사건에 집중하는 ‘선택과 집중’이다. 이에 따른 피해는 오로지 미조직 사업장 노동자,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자에게 전가된다.

모든 노동자의 노동인권 무게는 같다. 금액과 무관하게 범죄피해를 신고받은 국가기관은 피해 회복과 가해자 처벌을 위해 최선을 다해 조사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일반 형사사건을 담당하는 경찰조직이 지구대·파출소·치안센터 등으로 촘촘하게 설치된 것 처럼, 노동부도 촘촘하게 설치된다면 가능하다.

며칠 전, 어느 노동자에게 꿈이 뭐냐는 질문을 받았다. 나의 꿈은 ‘노노모 노무사가 필요 없는 사회’를 보는 것이다. 노노모 노무사가 없더라도 국가기관에서 당연히 피해자를 위해 일하는 사회. 노동인권이 실현된 사회가 조속히 오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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