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중기 한신대 교수(사회학)

올해 여름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 상황에서 ‘의사 파업’ 사태가 있었다. 정당성이 취약하고 여러 가지로 무리했던 의사 집단의 파업행위에 대해 사회적 비난이 쏟아졌다.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담보로 한 파업’ ‘특권적 지위를 가진 의사 집단의 이기주의적 행태’ ‘노조도 아니고 필수인력배치 등 절차적 정당성도 갖추지 못한 불법 의료 거부행위’ 등 이유도 다양했다. 오랫동안 파업에 대해서 비난과 악선동을 일삼던 자본단체나 수구언론 또는 보수정부만이 아니었다. 문제는 민교협과 참여연대, 보건의료 분야의 시민단체는 물론 관련 노조와 일부 진보정당·민주노총까지도 비난 성명에 동참했다는 점이다. 필자의 눈에 그것은 의사 집단의 이기적 행태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파업행위 자체를 부정하는 것처럼 보였다(코로나19 사회경제 위기대응 시민사회대책위원회, ‘정당성도 명분도 없는 의사협회의 진료 거부행위 즉각 중단하라’, 2020. 8. 27).

피해 주지 않는 파업은 없어
간호사 파업도 금지해야 하나


의사 파업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런 여론몰이가 필자는 무척 못마땅하다. 무엇보다 민주노조운동의 역사에서 처절했던 순간들이 여지없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80년대, 90년대에 지하철과 철도노동자의 파업은 ‘시민을 볼모로 이익을’ 추구하므로 불법이었다. 병원노동자는 ‘환자의 생명을 담보로’ 파업한다고 해서 그때도 비난받았고 노동자는 감옥에 가야 했다. 많은 공공부문 사업장의 파업은 필수공익사업으로 분류돼 최근까지도 불법이었다. 또 조선과 자동차 등 민간 제조업 노동자의 파업은 ‘국가경쟁력을 좀먹고 경제 위기를 불러 온다’는 이유로 불법이었고, 조종사 파업은 ‘고임금이므로 불법’이어야 했다. 물론 공무원·교원의 파업도 ‘국가의 안위와 백년대계 교육’을 책임지는 공적 임무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당연히 불법이었다. 수백, 수천 명이 감옥에 갔다. 그보다 수십 배나 많은 이들이 이런 여론 앞에서 해고됐음은 물론이다. 상당수의 노동자는 그 때문에 희생됐다.

필자가 아는 한 사회나 타인에게 직접·간접적으로 일정한 ‘피해’를 주지 않는 파업은 없다. 먼저 사용자인 자본가에게 경제적 피해를 준다. 또 노동하지 않으면 사회적 생산물이 줄어들고 고용과 소비 등에서 당연히 경제적인 영향이 있다. 서비스업에서 파업하면 시민이 불편하든, 노약자가 힘들든 간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이런 부정적 영향은 꼭 간호사·의사 파업이 아니더라도 때로는 생명을 위협하는 이차적·간접적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의사들의 집단행동과 파업이 환자들의 생명·건강을 위협한다는 말은 옳다.

그러나 그 때문에 파업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둘은 전혀 다른 문제다. 생명을 위협하므로 파업해선 안 된다면 국민 건강과 국가 경제, 사회안정을 위협하는 많은 파업이 금지될 수 있다. 아마도 간접적으로 생명을 위협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지금 합법파업인 간호사들의 파업도 금지해야 한다. 결국은 대개의 파업이 제한되거나 불법으로 취급될 수 있다. 나아가 파업을 금하면 더 많은 생명이 위협받을 수도 있다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한다. 현재의 불합리한 의료체계, 과다한 의료 노동으로 오진이 발생해 많은 이들의 생명이 희생되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 시간에도 과로로 사망하고 있는 택배노동자와 한 해 2천명이 넘는 산업재해 사망노동자들을 생각하면, 어쩌면 파업은 생명을 구하는 보다 적극적인 노력일 수도 있다.

목숨 걸고 확보해 온 파업할 권리
사회적 지위에 따라 제한할 수 없어


분명히 밝혀 두자.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말자거나 의사 파업을 지지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필자는 올해 여름의 의사 파업을 지지하지 않았으며 단호히 반대했다. 다만 그 반대 이유가 파업에 대한 오해나 비방에 기초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파업, 곧 노동을 중단할 권리는 그것이 시민의 불편을 초래하든 생명과 사회를 위협하든 말든 원칙적으로 모두에게 허용돼야 한다. 그것이 우리 헌법의 파업권이고 근대 노동기본권이다. 전근대적 강제노동이 용인되지 않는다면 근대의 파업은 원칙적으로 정당하다. 요컨대 의사들의 파업 ‘행위’가 아니라 그 이유와 논리, 숨겨진 이해관계에 대해 반대하는 것이 맞다. 이 둘을 구분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더 생각해 보자.

19세기 초 영국에서 노동자들이 파업하는 일은 교수형을 당하는 범죄였다. 당시 단결금지법 아래서 자본가와 국가가 볼 때 그것은 생명을 빼앗아도 될 만큼의 악행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초기 자본주의에서 노동자는 목숨 걸고 파업했다. 이후 200년 가까이 이런 여론과 법 제도에 맞서 노동자들이 싸웠고 지금은 노동을 중단할 권리를 제대로 확보하게 됐다. 노동하지 않고 소득을 얻는 자본가의 파업, 곧 자본 파업(capital strike)이 역사적으로 불법이었던 적이 없었던 사실과 크게 대비된다. 어쨌든 오늘날 서구에서는 교사·교수나 공무원은 물론 의사나 간호사, 심지어 판·검사나 경찰관도 파업할 권리가 있고 실제로 파업한다. 그런데 올해 우리 시민사회와 노조는 의사 파업에 대해 당당히 파업권을 부정했다. 1987년 이래 30년간 노동기본권을 위해 싸운 민주노조운동의 파업에 대한 이해가 아직도 이 정도에 머문다는 사실이 너무나 당황스럽다.

한편 의사가 독점적 면허를 보유한 고소득의 특권 집단이므로 파업은 안 된다는 논리도 마찬가지로 타당하지 않다. 생명을 담보로 더 많은 이득을 요구하므로 특권적 이익 추구, 혹은 이기주의라는 비판적 지적은 매우 정당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파업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이유일 수는 없다. 만일 그러하다면 연봉 1억원을 상회하고 정년이 보장돼 ‘귀족노조’로 공격받는 조종사노조나 대기업·공공부문 노조의 파업도 금지해야 한다. 또 교수들이 지금 주장하는 교수노조의 쟁의권, 제한 없는 노동 3권 허용은 기만적인 것이 되고 만다. 보기에 따라서 직업집단 중 정규직 교수만큼 특권적인 임금 노동조건을 가진 집단은 없기 때문이다. 파업의 권리가 소득·노동조건이나 사회적 지위에 따라 제한되는 것이어선 곤란하다.

노동하지 않을 권리
사회구성원 전체가 누려야


마지막으로 현행법, 즉 노동법에 기초해서 의사·전공의 파업을 부정하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의사협회나 전공의 단체는 합법노조가 아니고 현행 노동법의 절차적 의무, 필수기능의 유지 등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파업이 아니라 불법적인 집단 진료 거부행위’라는 논리다. 합법파업이 아니고 업무개시 명령에도 복귀하지 않은 만큼 법적 책임을 지는 것이 옳고 ‘공정하다’고 본다. 이는 한마디로 ‘법 물신주의적’ 인식이다. 그리고 군부독재 이래 독재국가나 법정의 노동탄압 논리를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인데 진정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이런 인식은 파업이 법 이전에 자본주의 체제에 의해 강요된 노동자 투쟁이자 삶의 양식인 것을 이해하지 않는다. 노동운동 역사에서 러다이트운동(Luddite movement)이나 불법파업이 근대 노동법의 원천임을 전혀 모르는 것일까. 법이 노동운동을 가능하게 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 그리고 현실 노동운동이 노동법을 만들어 온 역사 말이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군부독재 시기 국가의 노동탄압은 정당한 것일지도 모른다. 또 현재 법적 권리 밖에 있는 대부분의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단결권과 파업권은 당연히 부정된다. 그리고 현행 노동법이 개선의 여지가 많은, 악법의 요소가 넘치는 통제 수단일지도 모른다는 인식이 자리 잡을 여지가 없다. 곧 자본주의 사회와 계급국가, 노동법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전혀 없다.

아마도 의사 파업에 대한 비난에는 특권적 전문직 집단에 대한 우리 사회 특유의 부정적 여론이 작동했을 것이다. 한국에서 의사 다음의 대표 전문직은 변호사와 함께 교수집단이다. 주지하듯이 교수에 대한 부정적 여론은 의사보다 못하지 않다. 그들에게는 단결권이 있을 뿐 현행법 아래서 파업권이 없다. 그렇다면 노동법 개정과 파업권을 요구하고 있는 민주노총 소속의 교수노조는 의사 파업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까. 나아가 정규직 교수들이 임금 노동조건을 더 개선하거나 정부 정책에 반대하기 위해 파업할 수밖에 없다면 그들은 자신을 어떻게 정당화해야 할까. ‘철 밥그릇’ 귀족인 교수노조가 집단이기주의 불법 파업에 나섰다고 시민사회와 국가가 비난하면 이를 겸허히 수용하고 스스로 파업을 금지해야 할까.

요컨대 파업을 ‘노동법과 국가권력이 허용하는 약자의 몸부림’이나 ‘피해를 일으키는 부정적 행동’ 정도로 인식하고서 노동운동을 할 수는 없다. 파업은 법이나 여론이 허용해서 하는 일이 아니었다. 서구에서 그러했고 전태일 50주기를 맞는 우리 사회에서도 그러했다. 지금도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 또 그것은 사회적 약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노동자로 규정되는 이들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다. 지위나 소득, 법적 규정 여부와 무관하게 사회구성원 전체가 누려야 할 기본인권, ‘노동하지 않을 권리’다. 바람직하지 않으나 어쩔 수 없는 피해가 발생한다고 해도 면책을 보장해야 하는 권리다. 지금 의사 파업을 금지하는 것이 옳다면 교수나 비정규 노동자의 파업도 당연히 그러할 것이다. 의사 파업이 지금 남의 일이 아닌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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