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원준 사단법인 전태일의 친구들 이사

“우리는 생각합니다!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울 시간도 없이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열차에 치여 숨진 열아홉 살 특성화고 졸업생 청년노동자를 생각합니다. 무거운 감정노동에 시달리다 ‘콜수를 다 못 채웠다’는 문자를 남기고, 끝끝내 숨진 열아홉 살 전주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노동자를 생각합니다. 생일을 닷새 앞두고 살벌한 프레스 기계에 끼여 숨진 열여덟 살 제주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노동자를 생각합니다. 다음달엔 여행을 갈 것이라고 이야기하며 작은 행복을 바라던, 이마트에서 무빙워크 수리 도중 몸이 끼여 숨진 특성화고 졸업생 스물한 살 청년노동자를 생각합니다.”

이 글은 2018년 5월1일 출범한 전국특성화고졸업생노동조합 설립선언문의 첫머리에 나오는 구절이다.

노동조합 출범선언문이라기보다는 추모사에 가까운 이 글은 우리 사회의 가슴 아픈 노동 현실을 말해 주고 있다. 1960년대 전태일 열사가 바꾸고자 노력했던 평화시장의 비인간적인 노동 착취 현실이 아직도 우리 주변 곳곳에 놓여 있는 것이다. 또래보다 일찍 노동현장에 들어선 노동자들의 잇따른 희생은 평화시장의 어린 노동자들이 쉬는 날도 없이 하루 15시간을 일하고도 커피 한 잔 값의 일당을 받던 노동현실과 겹쳐져, 우리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한다. 열악한 노동현장에서 고통받던 노동자들과 공감하며 현실을 바꾸려 노력하다, 끝내 스스로를 불사른 전태일 열사가 서거한 지 어느덧 50년이 흘렀다. 해마다 전국의 노동자들은 전태일 열사를 추모하면서 전국노동자대회를 열어 왔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로 한없는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노동자들이 더욱 비장한 마음으로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또 모든 노동자들에게 적용되도록 근로기준법을 개정하고, 누구나 노조활동을 할 수 있도록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을 개정하고, 중대재해를 일으킨 기업을 처벌하는 법을 제정하는 이른바 ‘전태일 3법’의 국회 통과를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이하는 열사의 고향 대구에서는 다채로운 추모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특히나 지역 시민들이 오랫동안 모금을 통해 조성한 기금으로 열사가 살던 집을 매입해 ‘전태일’ 문패를 다는 뜻깊은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전태일 열사가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시절”로 기억하는 ‘청옥고등공민학교’를 다니던 때 살았던 집이, 다행히도 도시의 개발 바람을 피해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해마다 열사를 추모하는 행사를 진행하던 지역 시민사회가 2019년 3월 ‘전태일의 친구들’이란 단체를 설립하고 대대적인 모금운동에 나섰다. 수많은 대구시민과 지역 단체들, 전국 각지에서 십시일반 정성을 모은 덕분에 지난해 7월 매매계약을 체결했고, 이제 전태일 열사 50주기가 되는 날 잔금을 치르고 마무리하려 하고 있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매입금액 모금이 다 채워져 열사가 살던 집이 시민의 품으로 돌아오면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 일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작은 공간이 만들어질 것이다.

‘전태일의 집’은 거창한 기념관이 아니라 열사가 살던 공간을 오래오래 보존하면서 시민과 노동자들이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자취를 둘러볼 수 있는 기억의 공간이 될 것이다. 특히 학생과 청년 등 미래의 노동자들이 찾아와서 점점 잊혀 가는 열사의 삶과 정신을 되새기는 곳이 되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나아가 열사의 삶을 돌아보고 기억하며, 노동의 가치를 일깨우는 이런 공간이 대구에도 생긴다면 우리 사회의 노동자, 무엇보다 노동자로서 첫 발을 내딛는 청년들의 노동현실이 좀 더 나아지는 데 보탬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게 된다. 꽃다운 나이에 일하다 희생되는 비극이 사라지고, 이 정부가 내팽개친 ‘노동존중 사회’가 좀 더 가까워지는 디딤돌이 되지 않을까?

대구 전태일기념관 건립 시민모금운동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곁으로….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마침내 자신을 다 바쳐 어둠을 환하게 밝히는 불꽃이 된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되새기게 되는 지금, 전국의 노동자들이 ‘보수의 도시’ 대구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 뜻깊은 일에 함께하면 좋겠다. 노동자들이 힘을 보태서 열사의 정신을 알리고 노동의 가치를 드높이는 ‘전태일의 집’을 만들어, ‘아름다운 청년’들이 더 이상 희생되지 않고 당당한 노동자로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은 어쩌면 열사의 정신을 계승하는 우리의 당연한 책무이기도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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