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개발연구원(KDI)을 비롯한 일부 국책연구기관이 매년 1억원 가까운 돈을 들여 외국에서 박사급 연구원을 영입하면서 국내 박사급 연구원은 단 한 명도 채용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국내 박사가 아무리 좋은 연구성과를 내도 중요한 연구를 맡기지 않는 등 ‘유리천장’이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18일 배진교 정의당 의원이 경제인문사회연구회에서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26개 국책연구기관 중 KDI와 조세재정연구원·대외경제정책연구원·산업연구원·에너지경제연구원·정보통신정책연구원·KDI국제정책대학원·한국노동연구원·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2017~2020년 외국 박사급 연구원을 채용하기 위해 매년 1월께 열리는 전미경제학회에 참여해 16억8천만원을 썼다.

이들은 전미경제학회에 참가해 외국 박사를 대상으로 1차 사전 인터뷰를 하고, 이들을 다시 국내로 초청해 2차 인터뷰를 진행한다. 사전 인터뷰를 위한 체류비는 물론이고, 채용 대상자의 국내 항공료·교통비·심사비용 모두 국책연구기관이 부담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이를 위해 지난해에만 9천877만1천원을 썼다.

기관 9곳이 이렇게 채용한 외국 박사급 연구원은 2017~2020년 136명이다. 이 기간 동안 채용한 박사급 연구원 202명의 67.3%다. 이 기간 동안 KDI와 조세재정연구원은 국내 채용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외국 박사 채용 과정에서는 블라인드 채용 원칙도 무시된다. 배진교 의원에 따르면 사전 인터뷰 기초자료인 구직자 이력서에 학교 이름과 학부 정보, 학위 정보를 모두 공개한다.

문제는 이렇게 어렵사리 채용한 외국 박사급 연구원이 기관에 채 5년도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내 인력을 단 한 명도 채용하지 않은 KDI와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5년 내 이직률은 각각 60%·50%다. 도리어 외국 현지채용 절차가 없는 국토연구원과 한국교통연구원의 이직률이 각각 12.5%·13.3%로 낮았다.

기관 내부에서는 외국 박사급 연구원에 대한 특혜 의혹도 제기한다. 배진교 의원은 “한 연구원에 따르면 해외 채용을 고집하는 일부 연구기관은 업무배분·승진에서 유리천장이 있다”며 “국내 학·석사 입사자는 이후 박사학위를 취득하거나 국내외 학술지에 좋은 연구성과를 발표해도 중요 연구를 책임지고 수행하거나 박사급 직위로 승진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차별이 있다”고 밝혔다.

배진교 의원은 외국 박사급 연구원 채용을 고집하는 것은 차별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수천 만원을 들여 해외 채용을 고집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국내 연구 성장과 국내 대학교육 발전을 저해할 것”이라며 “불공정 채용 관행과 내부 업무·승진 기회를 차단하는 차별 관행을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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