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호 한국노총 대변인

“투명인간, 영웅이 되다!”

영화 포스터 문구가 아니다. 코로나19 시대 필수노동자 이야기다. 필수노동자는 재난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 사회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위험한 환경에서도 일하는 노동자를 뜻한다.

시작은 서울 성동구였다. 전국 최초로 필수노동자를 재조명하고 보호·지원하기 위한 조례를 지난달 10일 공포했다.

대통령도 이어받았다. 지난달 22일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대통령은 보건의료 종사자, 돌봄종사자, 배달업, 환경미화원 등 ‘필수노동자’를 거론하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을 하고 있고, 우리 사회 유지를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있다”며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저임금과 불안정한 고용형태에 놓여 있는 필수노동자들에 대해 각별히 신경 쓰고 챙겨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 뒤 국회의원과 지자체장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필수노동자 응원캠페인’을 했다. 언론은 이를 보도하며 노동자들을 “숨은 영웅”이라고 칭송했다.

연휴기간 동안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버스노동자를 만나 “필수노동자 지원을 위해 늦었지만 당장이라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 때문이라 해도 격세지감이다. 필수노동자라 지칭되는 이들 대부분은 우리 사회 울타리 밖에 있던 노동자다. 2012년 고 노회찬 의원은 진보정의당(현 정의당) 대표직을 수락하면서 말했다.

“6411번 버스라고 있습니다. 내일 아침에도 이 버스는 새벽 4시 정각에 출발합니다. 새로운 사람이 타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매일 같은 사람이 탑니다. 이 버스에 타시는 분들은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새벽 5시반이면, 직장인 강남의 빌딩에 출근을 해야 하는 분들입니다. 수많은 직장인들이 그 빌딩을 드나들지만, 그 빌딩에 새벽 5시반에 출근하는 아주머니들에 의해서, 청소되고 정비되고 있는 줄 의식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한 달에 85만원 받는 이분들이야말로 투명인간입니다.”

바야흐로 투명인간 취급을 받던 노동자들이 ‘영웅’이 됐다.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은 듯 여겨졌고 노동을 하되 노동의 가치를 평가받지 못했던 노동자들의 노동을 재평가하고 제도적인 지원을 하겠다니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정치권과 언론의 ‘설레발’은 불길한 기시감을 들게 한다. 지난 시간 숱한 재난 속에서 노동자들의 삶과 죽음에 대해 많은 약속이 뿌려졌지만 흩어지고 잊혀 쭉정이만 남았던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은 그저 기우일까.

과거 누구도 이들의 노동을 ‘필수’라고 부르지 않았을 뿐 필수노동자들은 이전에도, 지금도, 이후에도 자신들의 노동을 했으며, 하고 있고, 할 것이다.

지금 당장 이들에게 시급한 것은 정부의 ‘지원’일 수는 있지만, 실상은 정당한 ‘노동권’이 더 긴요하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영웅 대접이 아니라 노동자로서 누려야 할 대우와 권리이기 때문이다.

권리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언젠가 ‘필수’는 ‘족쇄’가 될 수 있다. 예컨대 11월 파업을 경고하고 있는 학교 돌봄노동자들에게 정부와 여론의 시선이 지금과 같을까. 떠받들던 ‘돌봄노동자’는 학생을 ‘볼모로 하는 노동자’가 될 수도 있다. ‘영웅’이 ‘악당’이 되는 스토리는 영화에서 비일비재하다.

정부의 필수노동자 지원방안이 ‘시혜’가 아닌 ‘소통’ 속에서 나오기를 바란다. 이들의 노동은 정부나 사회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한 명의 노동자가 삶을 이어 나가는 데도 ‘필수’적이다.

한국노총 대변인 (labornews@hanmail.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