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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의 ‘신정체제’와 민주주의 퇴행
▲ 윤효원 아시아노사관계(AIR) 컨설턴트

아시아 나라들 가운데 식민지로 전락하지 않은 나라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태국은 예외적이다. 하지만 독립 유지가 반드시 좋은 결과만을 가져온 것은 아니다. 귀족과 군부에 의해 떠받쳐지는 봉건군주제가 그대로 살아남아 아직까지 존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식민지를 겪은 아시아 나라들에서 대부분 왕정은 몰락했다. 조선에서 그랬고, 베트남에서 그랬다. 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맞게 된 해방 결과 공화국이 들어섰다. 인도네시아가 그랬고 인도가 그랬다. 태국은 군주제를 유지한 드문 경우에 속한다.

역사적으로 태국에서 정치 권력과 종교 권력은 결코 분리된 적이 없다. 정치가 세속화하지 못하고, 왕족을 둘러싼 종교적 신비주의가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신왕(god-king)인 왕은 “국민의 최고 중재자이자 화해자”라는 사회적 지위를 획득했다. 역사적으로 태국민들에게 왕은 “사랑과 존경과 예배와 감사와 두려움과 숭배의 혼합체”로 신비로운 존재로 인식돼 왔다. 왕은 신이거나 반신(semi-divine)으로 받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20세기 들어와 본격적인 계기는 1957년 군부 쿠데타였다. 이를 계기로 1930년대 이래 성장하고 있던 정치와 종교가 분리된 현대적 군주제는 훼손됐고 ‘신왕’ 이데올로기가 부활했다. 이로써 왕은 “거룩하면서도 민중적이고 동시에 민주적인” 국체라는 이념이 자리 잡게 됐다.

태국의 종교는 불교와 브라만교와 정령신앙(만물에 영혼이 있다는 믿음)의 혼합체다. 서구 기독교가 프로테스탄티즘이라는 형태로 자본주의 발전에 적응해 진화해 왔듯이, 왕을 정점으로 하는 태국 불교도 20세기 들어 글로벌 시장경제 체제에 스스로를 맞춰 왔다. 여기는 냉전체제의 등장과 이로 인한 미국과 서방의 정치적 후원과 군사적 지지가 한몫했다.

국왕 탄생일이 되면, 보이지 않는 정령들의 세계에는 왕을 돕는 ‘수호천사’가 있고, 이들을 통한 초자연적 개입이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같은 각종 국난에서 태국을 구해 냈다는 주장이 언론에 등장하기도 한다. 이 수호천사는 민주적 선거로 권력을 잡은 탁신 같은 사악한 무리로부터 태국을 수호하려 왕과 연합을 맺었다는 주장을 왕당파들은 공공연히 내뱉었다. 신성을 가진 왕으로 대표되는 선한 세력과 부패한 재벌 정치가인 탁신으로 대표되는 악한 세력이 대결하는 장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세계관이 사회 곳곳에 똬리를 틀고 있다. 현실에서 군부나 왕당파 정당은 무신론적 상업주의와 결탁한 세력을 몰아내는 수호천사가 되고, 왕은 그 수호천사가 일으킨 쿠데타를 승인함으로써 태국을 사악한 세력으로부터 지켜내는 신이다. 이런 논리의 연장에서 태국은 “왕을 국가수반으로 하는 민주주의”로 선언된다. 초현실의 신성이라는 브라만 교리와 민주적 불교지도자라는 이데올로기가 공존하게 됨으로써 ‘왕정 절대주의’ 담론과 ‘민중 민주주의’ 관념이 결합된다.

1980년대 이래 태국 경제가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완전히 편입됨으로써 국가에서 종교적 색채가 약화됐던 것은 사실이다. 특히 소련 붕괴와 자본주의의 승리로 인한 시장경제의 급속한 확대는 대중들의 종교관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불교의 상업화가 거세졌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종교의 자본주의화는 부와 행복을 가져다주는 힘을 가진 신적 존재로서 왕의 이미지를 강화시켰다.

이렇게 신자유주의와 왕정 체제는 쌍둥이가 됐고, 나라 곳곳의 상점·사무실·가정·관공서에서 왕과 왕족을 예배하는 재단은 날로 늘어났다. 텔레비전과 인터넷의 등장에 힘입어 왕의 ‘무소부재’는 더욱 확실해졌고, ‘절대적 신정권력 체제’는 견고해졌다. 첨단기술이 동원된 종교 예배가 만들어 내는 힘에 의해 왕족을 둘러싼 신비주의와 물신화는 정점으로 치달았다. 교육부 산하 국민문화위원회와 수상 직속 국민정체성위원회, 그리고 문화부 같은 국가기관이 왕의 신격화와 군주제의 물신화에 앞장서는 선전대 역할을 수행했다.

물론 정치의 종교화와 종교의 물신화는 태국에만 국한되는 일이 아니다. 21세기 들어 미국·브라질·인도 같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다. 친미 극우 기독교의 발광으로 난장판이 되고 있는 대한민국도 예외는 아니다. 20세기의 근대적 국가가 초자연주의적 정치세력을 탄압했다면, 21세기 들어 신자유주의라는 강력한 이데올로기를 상실한 국가는 정치와 종교를 다시 결합시키면서 선과 악이라는 관념론의 광기 어린 구도 속으로 민중을 몰아넣고 있다.

자본주의 불평등에서 고통받는 태국 민중들은 왕을 ‘시장의 파괴력’에 대항하는 방파제로 여긴다. 왕정을 사회 문화와 정치 조직의 ‘비자본주의적’ 원칙들을 실현하는 체제로 받아들여 왔다. 태국의 지배 엘리트는 왕정에 대한 물신주의와 신비주의 확산을 통한 민중의 자발적 복종에 더해 불경죄(왕실모독죄)를 통한 억압 정책도 병행해 왔다. 국가정보부와 비밀경찰을 동원해 왕실과 군주제에 대한 불만과 비판을 찍어 눌렀다.

하지만 세상엔 영원한 것도 변하지 않는 것도 없다. 귀족·중산층·노동계급·농민 모두로부터 흔들림 없는 지지를 받아 왔던 태국 왕정은 2001년 총선에서 재벌 정치가인 탁신 친나왓이 이끈 타이락타이당이 승리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노동계급과 농민 같은 하층민들이 왕당파 정당에 대한 지지를 거두고 민중주의(populism) 정책을 펼친 탁신을 지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민주적 선거를 통해서는 왕당파가 절대 이길 수 없음을 깨달은 귀족과 도시중산층은 2006년 군부 쿠데타를 지지했고 왕은 군부의 집권을 승인했다. 2007년 군사정권이 실시한 선거에서 망명한 탁신의 여동생인 잉락 친나왓이 이끈 민중권력당(PPP)이 하층계급의 압도적 지지 속에 정권을 잡았다. 이후 이어진 선거에서 민중권력당이 계속 승리하자, 2014년 태국 헌법재판소는 권력남용을 이유로 잉락 친나왓을 탄핵했다. 이후 태국은 왕정의 묵인하에 정권을 다시 장악한 군부가 권력을 행사해 오고 있다.

아시아노사관계(AIR) 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윤효원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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