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한국마사회는 코로나19가 확산하자 무관중경기로 하던 경마를 지난 1일 완전히 중단했다. 노동자들은 2일 근무하고 3일 휴업한다. 홍기복 한국마사회노조·박영규 마사회전임직노조·김희숙 마사회경마직노조 위원장은 지금 상황을 “위기”라고 표현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관중석에 먼지만 쌓이고 있다”는 한탄도 나온다. 제시하는 위기 타개책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온라인 마권 도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마사회가 경영위기 타파를 위해 제시한 방안과 같다.

사행성을 조장하리라는 일각의 우려에도 답했다. “마사회와 노조가 그간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해 최근의 어려움에도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점을 잘 안다”며 “사회적 책무를 소홀히 하지 않겠다”고 했다. 감시자·촉진자 역할을 하겠다는 뜻이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2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공공노련 사무실에서 세 곳 노조위원장과 만나 노동자가 바라보는 코로나19 확산과 경마산업의 위기, 그리고 온라인 마권 도입 논란을 짚어 봤다. 마사회노조는 마사회 정규직이, 전임직노조는 경마 경기와 경기장을 관리하는 노동자들이 가입한 노조다. 경마직노조는 마권 현장발매를 담당한 노동자들로 구성됐다.

경마장 ‘셧다운’ 고용은 불안

- 경마산업이 위기라고 한다. 현장 분위기는 어떤가.

김희숙 위원장 : 안타깝다. 한동안 무관중으로 치렀던 경마경기를 9월부터 완전히 중단하면서 마권을 팔던 발매기나 관중들이 앉던 의자에 먼지만 쌓이고 있다. 경마공원도 운영을 중단해 썰렁한 분위기다. 우리끼리는 불안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2018년 정규직으로 전환해 겨우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졌는데 이번엔 코로나19가 확산해 혹시 고용안정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한다. 지금은 일단 휴업수당이라도 받을 수 있어 감사하게 여길 정도다.

박영규 위원장 : 우리의 어려움도 크지만 다른 유관산업 노동자들의 어려움도 크다. 조교사나 기수, 마필관리사에게 지금 상황은 치명적이다. 말 생산농가도 마찬가지다. 전면적인 위기다. 코로나19가 빨리 종식하길 바라고 있다.

홍기복 위원장 : 우려가 크다. 회사가 어렵다는 위기감은 임원을 비롯한 사용자보다 노조와 노동자가 더 크게 느끼고 있다. 임원들이 경영 책임을 지고 있지만 사실 임기제라 3년이 지나면 떠나도 되는 사람들이다. 노동자는 다르다. 입사한 뒤 정년까지 일하는 게 통례다. 경영진보다 걱정이 클 수밖에 없다. 마사회가 그간 사행산업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었는데, 여기에 코로나19로 인해 수익까지 내지 못한다면 사실 공기업으로서 존재 이유가 사라지는 셈이다. 그래서 경영위기에 대한 관심과 안타까움은 노동자들이 더 크다.

마사회는 지난 1일부터 경마경기를 전면 중단하고 비상경영 체제 돌입을 선언했다. 지난 2월부터 이미 무관중경기로 경마경기를 치르면서 수익을 전혀 내지 못했다. 말 산업 유지를 위해 매주 상금을 걸고 손해를 감수하며 무관중경기를 했지만 이젠 이마저도 여력이 없다는 판단이다. 마사회는 8월 말 기준 매출손실액이 4조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아직 적자로 전환한 것은 아니지만 연말까지 6조4천억원의 매출손실이 예상된다. 지난해 대비 87%가 감소하는 것으로, 이로 인한 국세·지방세 납부액 1조원이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마사회는 노조와 협의해 전 직원을 대상으로 2일 근무 3일 휴업하는 방식을 제안해 시행하고 있다. 3일간은 휴업수당 70%를 수령한다. 이마저도 50%로 낮추는 데 노사가 합의했다.

홍기복 : 마사회가 한 해 조달하는 세수는 평균적으로 1조5천억원으로 추산한다. 수백 조원에 달하는 국가 전체 예산과 비교하면 극히 일부지만, 작은 규모는 아니다. 일례로 최근 협상 중인 주한미군 방위비가 한 해 1조원가량이다. 마사회가 조달하는 액수가 특정 국방예산을 넘는 규모란 것이다. 결코 작지 않고, 지금처럼 경마시행 중단이 장기화하면 추가적인 어려움이 커질 수 있다. 노동자들이 이례적으로 마사회와 함께 온라인 마권 도입을 주장하는 배경이다.

▲ 김희숙 마사회경마직노조 위원장. <정기훈 기자>


“코로나19 예측 불가능, 경마산업 고사 지켜만 보나”

- 온라인 마권 도입 효과가 나타날 시점과 코로나19로 인한 위기가 일치하지 않는데.

홍기복 : 그 지적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한 상황이 얼마나 갈지 가늠하기 어렵다. 내년까지 코로나19 확산이 종식하지 않는다면 어떤 대책이 있겠나. 이대로 방치하면 고사 위기다. 단순히 마사회와 마사회 노동자뿐만 아니라 말 생산농가와 다른 관련 노동자들까지 다 위험하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위기는 어찌어찌 넘긴다고 쳐도 또다시 이런 상황이 반복하면 그때는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올해뿐만 아니라 내년, 그리고 그 이후에도 막대한 손실이 불가피하다.

정부는 경마중단에 따른 생산농가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추가적인 자금 투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매년 1조1천억원 규모로 조성하는 축산발전기금에 정부 출연금을 늘리는 방식이 유력해 보인다. 이 밖에도 생산농가에 직·간접적인 지원을 통해 위기에 대비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마사회의 매출을 늘려 생산농가의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마사회와 노조 주장과는 방향이 다르다. 특히 1조1천억원 규모의 축산발전기금 가운데 1천200억~1천600억원을 차지하는 마사회납임금이 감소해도 당장 큰 타격이 있을 거라고 보진 않는다.

김희숙 : 마사회를 일자리의 관점으로 바라볼 필요도 있다. 경마가 사행산업이니 도박성 논란만 이어지는데, 이곳에만 5천명 넘는 일자리가 있다. 마사회라는 공기업을 통해 정부가 사회에 제공하는 질 좋은 일자리 5천개다. 최근 정규직 전환까지 이룬 일자리다. 게다가 간접적인 관련 산업 종사자까지 포함하면 규모는 더 커진다.

-말 산업이 위기라고 볼 수 있나. 최근 생산농가는 온라인으로 말을 판매하기도 했는데.


홍기복 : 말 산업은 경마위주의 산업이다. 경마가 중심이다. 승마체험 등 다른 서비스도 있지만 비용이 가장 많이 집중되는 게 경마다. 말 산업이 원활히 굴러가기 위해서는 경마를 통해 수익을 내고 이를 다시 생산농가에 재투자하는 순환구조가 있어야 한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 해외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경마가 지금 위기에 처한 것이다.

박영규 : 온라인으로 말을 판매한다고 하지만 실제 낙찰률과 낙찰가를 봐야 한다. 팔리는 말을 보면 다 어린 말이다. 지금 당장 경마가 열리지 않으니 미래를 위해 좋은 종마를 선점하는 의미이지, 실제 경마경기를 위한 말들이 아니다. 생산농가에서 바라보는 경마도 위축됐다는 의미 아니겠는가. 그런데 위기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경마를 중단하면서 위기는 관련 산업계로 번지고 있다. 대표적인 게 생산농가의 타격이다. 경주마를 생산하는 농가는 최근 코로나19 확산으로 말시장을 열지 못했다. 팔아야 할 말을 팔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생산농가는 지난 4월부터 유튜브로 온라인 경매를 열었다. 그러나 매물로 나온 말 73필 가운데 3필만 팔렸다.

▲ 박영규 마사회전임직노조 위원장. <정기훈 기자>


“경마는 도박, 부정 어렵다”
“중독예방·치료 책임 소홀도 마땅한 비판”


- 말 산업이 위기라하더라도, 도박중독이 우려되는 온라인 마권을 섣불리 도입하긴 어렵지 않나.

홍기복 : 경마는 도박이다. 그것을 부정하진 못한다. 돈을 걸고 배당을 받아가니까. 그런데 마사회는 불법단체가 아니다. 마사회는 합법적으로 경마를 시행하는 공기업이다. 최근에는 마치 경마를 불법도박으로, 마사회를 불법도박조직으로 바라보는 것 같다. 마사회의 역할은 불법도박으로 흐를 수 있는 경마를 양성화하고 이를 통해 세수를 증대하는 것이다. 게다가 마사회가 온라인 마권을 안 한다고 불법도박이 근절되는 것도 아니다. 이미 엄청난 규모의 온라인 불법경마 시장이 형성돼 있다. 최근 합법경마를 즐기던 이들이 경마중단으로 해외의 경마에 베팅하는 현상까지 나타난다. 별로 비밀스러운 일도 아니다. 유튜브만 뒤져 봐도 나올 정도다. 코로나19로 경마가 어려움에 처하면서 합법적으로 경마를 즐겼던 이들마저 대체수단이 없어 불법에 내몰리는 셈이다. 마사회가 온라인 마권을 발매하면서 오히려 이런 불법적인 부분을 양성화하고 사회적 비용을 낮추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마사회에 따르면 국내 불법경마시장 규모는 약 13조9천330억원으로 추정된다. 이는 마사회의 지난해 매출액 7조3천937억원의 2배에 육박하는 규모다.

- 양성화 노력을 강조하기에는 그간 도박중독 예방과 치료에 기울인 노력이 많지 않은데.

박영규 : 부족했다. 인정한다. 앞으로도 도박중독 예방과 치료에 더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노조 차원에서도 구체적인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

홍기복 : 공감한다. 그간 마사회와 마사회노조 역시 사회적 역할을 보다 적극적으로 고민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까지 사회적인 요구와 변화 필요성에 무감했다. 사회적 분위기가 변하고 마사회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알게 됐다. 최근 잇달았던 산업재해 사망사고를 지켜보면서 사회가 얼마나 마사회의 변화와 혁신을 바라고 있는지 우리도 체감하게 됐다. 온라인 마권 도입을 주장하면서부터 지난 과오를 더욱 뼈저리게 느낀다. 우리가 그간 사회적 요구와 목소리를 일축하고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과오가 있다. 거칠게 말하면, 지금 우리는 이제 힘들어서 죽을 것 같다고 말하는데 아무도 들어주지 않더라. 마사회가 자신의 이권만 생각한다는 그 이미지가 걸림돌이 됐다. 자승자박이라고 생각한다.

김희숙 : 마사회 노동자도 경마가 도박이라는 인식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지금은 경력 30년을 훌쩍 넘겨 무감해졌지만, 한때 마사회에서 일한다는 것을 말하기 어려웠던 시기도 있었다.

홍기복 : 내부적으로 반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우리는 먹고살 만하니까 괜찮다는 인식 때문에 자꾸 사회의 비판과 시각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다가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다만 도박중독 예방과 치료 관련 예산을 아예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니다. 매년 40억~50억원의 돈을 낸다. 물론 그게 충분하다는 것은 아니다. 더 적극적인 후속조치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고, 회사쪽에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앞으로도 관심을 기울이겠다.

마사회는 지난해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의 도박중독예방 분담금 약 42억원을 납부했다. 전체 분담금의 22%다. 이와 별도로 중독치료를 위한 유캔센터를 운영하면서 올해 16억원을 썼다. 내년엔 20억원으로 증액할 방침이다. 그러나 이 액수가 충분한지에 대한 평가는 다르다. 특히 경마의 도박중독 유병률은 41.4%(2018년 사감위 사행산업 이용실태조사)나 된다. 54.8%를 기록한 내국인카지노에 이은 2위다.

▲ 홍기복 한국마사회노조 위원장 <정기훈 기자>


“연말까지 재해보상·마사회 책임 강화 제도 마련 노력”

- 온라인 마권 도입에 앞서 사회적 문제를 해소하는 모습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장외발매소 문제다.

박영규 : 장외발매소는 다소 어려운 문제다. 마사회도 공기업이다 보니 경영평가를 받는다. 매출을 유지하지 못하면 정부가 나서서 채찍질을 한다. 온라인 마권을 도입해 매출대체 효과가 입증돼야 장외발매소를 없앨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홍기복 : 장외발매소로 인한 사회적 갈등은 우선 입장권을 끊고 들어가 머무르는 방식의 체류형 시설이다 보니 상시적인 출입이 어려워 도박중독자들이 아예 상주하면서 발생하는 지역혐오시설 문제가 있다. 공간이 협소한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주차공간 등으로 인한 갈등도 구체적인 문제로 드러난다. 회사쪽은 이를 해소할 대책을 논의하면서 매출대체 효과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 강할 수도 있다. 노조가 선제적으로 논의를 이끌겠다. 사회적인 요구에 부응해야 하는 책임이 있는데 모든 것을 움켜쥐고 갈 수는 없다고 본다. 노조가 이미 먼저 휴업 등 고통 감내를 선언한 것처럼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회사에도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전향적인 입장표명과 검토를 요구할 필요가 있다. 잇따라 안타까운 일이 발생한 기수·마필관리사 문제도 마찬가지다. 구조적인 문제가 있지만 같은 산업군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해 취해야 할 당연한 책임이 있다. 마사회가 시행처로서 권한과 책임에 취약한 부분은 없었는지 들여다보는 작업을 시작했다. 노조도 함께 명확한 해결방안이나 재발방지를 위한 시스템적 보완을 진행하고 있다. 연말까지 재해보상과 경마산업에 대한 시행처 책임을 강화하는 취지의 제도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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