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나영 기자

27일은 경북 구미국가산업단지 휴브글로벌 공장에서 불산가스 누출 사고가 난지 8년이 되는 날이다. 당시 노동자 5명이 숨지고 소방관 18명이 다쳤다. 공장 근처 주민 최소 3천명 이상이 병원 진료를 받았다. 212헥타르의 농작물과 4천여 마리의 동물도 희생됐다. 주민보상액만 380억원에 달했다. 우리나라 역사상 전무한 화학물질 사고였던 2012년 구미 불산 사고 이후 우리 사회는 화학사고로부터 안전해졌을까.

당시 사고를 계기로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학물질등록평가법)과 화학물질관리법이 제정돼 2015년부터 시행됐다. 각각 화학물질에 대해 유해성 심사 의무화와 유해화학물질 취급 기준 강화를 골자로 하는 법이다. 이후 연간 화학사고 발생 건수는 감소 추세에 있지만 공포감은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서산 롯데케미칼 대산공장 폭발사고, SH에너지화학 군산공장 폭발사고, 경북 구미공단 KEC공장 화학물질 누출사고…. 올해도 어김없이 화학물질 폭발·누출사고가 이어져 부상자가 발생했다. 환경부 화학물질안전원에 따르면 올해 화학사고 발생 건수는 상반기(1~6월)에만 35건에 이른다.

시설은 낡았는데 수선비는 감소
규제 강화 효과 있는데 다시 완화


노동·시민단체들은 끊이지 않는 화학사고 주요 원인으로 설비 노후화를 꼽고 있다. 화학물질안전원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올해 6월까지 발생한 화학물질 사고의 40.3%(218건)는 ‘시설관리 미흡’이 원인이었다. 화학섬유연맹은 “사업장의 노후화한 설비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것이 주요 원인이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나머지 사고원인은 작업자 부주의 37.2%(201건)·운반차량 사고 21.2%(114건)·기타 1.5%(8건)였다. 같은 기간 화학물질 사고 발생 건수는 총 541건이다. 조성옥 전북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사람들 대표는 “산업단지는 국가가 중화학 부문을 정책적으로 지원·육성하기 시작한 1970~80년대에 주로 가동되기 시작했다”며 “짧게는 20년에서 길게는 50년 이상 운영됐으니 장비 노후화로 인한 위험성이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시설 노후화에 따른 사고는 시간이 지날수록 적극적으로 예방해야 하는데 장비 수선은 오히려 줄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순 연맹 노동안전보건실장은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2001년부터 우리나라 제조업의 수선비는 제조원가에서 줄어드는 추세에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일본 수출규제 대응과 코로나19 대책 일환으로 화학물질 관련 규제를 완화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4월 코로나19 확산 여파 등을 이유로 화학물질 취급시설 정기검사를 6개월 유예한 데 이어, 지난 17일 다시 3개월을 유예하겠다고 밝혔다. 현재순 실장은 “화학물질관리법이 2015년부터 시행된 이후 화학사고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며 “어렵게 만들어진 법이 실효성 있는 결과를 내고 있는데 다시 규제를 완화한다면 사고가 늘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화학물질안전원에 따르면 화학사고 건수는 2014년 105건, 2015년 113건, 2016년 78건, 2017년 87건, 2018년 66건, 2019년 57건으로 점차 줄어들었다.


“정부가 시설 점검 감독해야,
특별법 제정 국민청원운동할 것”


노동계는 노후설비 안전관리특별법을 제정해 노후화한 설비를 관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행 화학물질관리법 26조(취급시설 등의 자체 점검)에 따르면 유해화학물질 취급시설을 설치·운영하는 자는 주 1회 이상 해당 시설·장비를 정기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지자체가 이를 관리·감독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

현재순 실장은 “노후설비에 대한 책임을 사업주에게만 맡겨 놓을 것이 아니라 정부·지자체에 관리·감독 권한을 주고 중소규모 사업장에는 관리비용을 지원해 주는 내용의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며 “교량·터널·항만·댐 등을 대상으로 하는 시설물의 안전 및 유지관리에 관한 특별법(시설물안전법)이 있듯 더 위험하고 빈번한 사고 위험이 있는 산업단지 설비에 대한 특별법을 만들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성옥 대표도 “사적 소유공간을 국가가 통제해도 되는지에 대한 지적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이미 우리나라에선 그런 일들이 있어 왔다”며 “버스나 택시 같은 경우 사업자 소유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면 폐기처분해 공공의 안전을 보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동·시민단체는 산업단지 노후설비 안전관리특별법에 동의한 전국 화학사업장 노동자·지역주민 1만명의 서명을 지난 25일 청와대에 전달했다. 이들은 10월 한 달간 20만 청와대 국민청원운동을 통해 특별법 제정운동을 이어 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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