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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 포장된 정파적 역사 소비
▲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정조 이후 김대중·노무현 10년 빼면 210년을 전부 수구 보수세력이 집권했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200년 넘는 보수 편향 사회를 조정하려면 적어도 20년은 개혁을 대표하는 자신들이 집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해찬 전 대표의 역사관은 18세기 조선 군주를 개혁의 표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부터 문제가 된다. 숙종·영조·정조로 이어지는 18세기 왕권 강화가 봉건사회 위기에 대처하는 적절한 방법이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때의 왕권 복권 흐름은 19세기 말 고종의 시대착오적 절대군주제 집착으로 이어졌고, 결국 조선 사회 최후의 변화 기회마저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따져 보면, 18세기 조선에 필요했던 것은 왕권 강화와 붕당 숙청이 아니라, 신(臣)권을 제대로 혁신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후대의 변화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근대로 가는 선두에 있었던 잉글랜드는 명예혁명으로 입헌군주제와 의회주권을 세워 왕권을 제한했다. 존 로크나 애덤 스미스 같은 사상가들이 정치와 경제에서 분권적이며 조정 가능한 질서를 토론해 나갔다. 반면, 18세기 말까지 절대왕정을 고수했던 프랑스는 19세기까지 반복해서 공화국과 제정을 왔다갔다하며 엄청난 피해와 혼란을 겪었다. 절대군주의 미몽에 빠져있던 러시아는 끝내 근대화에 적응하지 못했다. 아편전쟁 이후 부국강병에 매진한 중국과 일본 사례도 비교해 볼 수 있다. 청나라가 왕권에 매달리다 변법에 실패해 반식민지로 전락했던 반면, 일본은 막부를 혁파하고 내각제·의회제를 발전시켜 능력 있는 신하가 변화를 주도하며 근대화에 성공했다.

사실 이해찬 전 대표의 비유는 프랑스 대통령과 일본 총리가 자신의 정치적 뿌리를 18세기 루이 14세 절대왕정과 도쿠가와 쇼군에서 찾는 것만큼이나 황당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황당한 이야기를 여당의 정치인들은 시시때때로 아무렇지도 않게 떠든다. 이것을 에피소드라고 치부할 수는 없는데, 이들의 역사관이 현실 정치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제왕적 대통령제 폐단이 그대로 드러난 박근혜 탄핵을 거치고도, 이들이 대통령 권력을 오히려 강화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라 하겠다. 대통령을 선출된 군주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는 방증이니 말이다. 이들에게 민주정은 군주를 투표로 뽑는 제도에 불과하다. 20년 집권론은 20년 왕좌에 있을 군주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에 다름아니란 것이다.

해방 이후 역사에 대해서도 이 전 대표의 왜곡은 심각하다. 그는 김대중·노무현을 제외한 나머지 대통령을 모두 보수 또는 불의로 몰아붙이고 있는데, 1950년대 민주당 신파에서부터 시작되는 현 집권세력의 계보는 무능으로 나라를 어지럽힌 불의였기 때문이다. 보수보다 낫다고 볼 수 없다. 4·19혁명 이후 집권한 장면 내각은 군부 쿠데타 이전에 무능하고 무용한 정치로 먼저 무너졌다. 이승만이 망친 민주정을 현대화(의원내각제)할 기회를 스스로 날려 버린 것이었다. 더욱이 장면 시대의 혼돈이 만든 트라우마는 한국 사회에서 의원내각제가 무시당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1987년 대선에서 단일화에 실패함으로써 군부 정권을 연장하고, 재벌의 금권정치가 만발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든 것도 민주당 계보의 역사적 불의였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시대에 빈부·임금격차, 수도권 부동산 폭등이 발생한 것도 그들의 불의였다.

이 전 대표는 200년의 보수 집권을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20세기 중반 이후 대체 그들이 이룬 개혁이 무엇인지부터 말해야 한다. 물론 이야기하긴 했다. 이 전 대표는 인터뷰에서 그들은 이룬 것이 많은데 뒤이은 보수 정부가 모두 엎었다고 말했다. ‘내로남불’과 ‘남탓’의 정치철학이 역사 인식으로도 이어진 셈인데, ‘남탓’의 역사 인식이 곧 그들의 행동 양식이기도 한 것이다.

여당과 그 언저리에 있는 지식인들은 야당을 공격하고 자신의 오점을 숨길 때마다 정의와 불의, 개혁과 보수, 선과 악으로 나뉘는 역사 해석을 내놓았다. 여당은 3년 내내 반일민족주의로 지지도를 끌어올렸고, ‘토착왜구’ ‘친일파 청산’ 따위의 말들로 야당을 몰아세우며 지지자들을 집결시켰다. 대통령은 개헌을 말하다 느닷없이 민주공화국의 헌법전문에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총선이 끝나자마자 여당 의원들은 역사 해석에 대한 이견을 법으로 처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그런데 현대 민주정에서 어떻게 봉건 말기의 신흥종교를 헌법 정신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인지, 동아시아 운명공동체일 수밖에 없는 일본을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의 역사로 적대하는 것이 현대 시민의 올바른 태도일 수 있는지, 위안부·징용노동자 배상 문제로 토착왜구라는 말까지 해가며 이전 정부를 욕했던 현 정부가 지금까지 과연 무엇을 했는지, 역사 해석을 법적 처벌 대상으로 삼는 것이 언론과 학문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보안법과 무엇이 다른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역사는 이들에게 성찰과 탐구의 대상이 아니라 가장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 정치적 소비재다. 현 집권세력은 역사의 비극을 정치의 희극으로 되풀이하고 있다. 역사를 대하는 태도는 단지 학술적 문제가 아니다. 역사 인식이 현재 정치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jwhan77@gmail.com)

한지원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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