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익찬 변호사(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일터의 위험을 스스로 점검하기 위한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보자.

안전보건 분야 전문가가 아니어도 따라 할 수 있다. 노조 내에서도 안전보건은 어렵다는 인식이 강하다. 아래의 방법대로 체크리스트를 만들면, 의외로 상세하게 많은 내용이 제도로 정해져 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먼저 포털 검색창에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약칭 안전보건규칙)을 입력해보자. 이 규칙은 1편(총칙)·2편(안전기준)·3편(보건기준)·4편(특수형태근로종사자 등)으로 구분된다. 1편(총칙)은 작업 종류를 불문하고 공통적으로 지켜야 하는 내용이다. 예를 들어 3조(전도의 방지)를 보면 작업장에서 넘어지거나 미끄러지는 일이 없도록 작업장 바닥을 안전하게 유지하라는 내용이다. 22조3항(통로의 설치)은 통로 면으로부터 높이 2미터 이내에 장애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 총칙에는 작업장에 관한 일반적 사항, 붕괴방지를 위한 사항, 보호구 지급, 비계설치 등에 관한 보편적인 내용이 있다. 구체적으로 내가 일하는 사업장의 위험은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내가 크레인 작업자라면, ‘크레인’이라고 검색해 보자(컨트롤+F). 그러면 크레인과 관련된 내용이 나오는데, 예를 들어 86조1항 본문에 따르면 크레인에 사람을 태우는 것이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

그런데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는 전문적인 용어가 많아서 내용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이럴 때는 안전보건공단에서 발간한 ‘만화로 보는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을 찾아 보자. 검색창을 통해서 접근할 수 있고 무료로 내려 받을 수 있다. 전체 673조에 이르는 위 규칙 모든 조문에 대해 알기 쉽게 만화로 설명돼 있다.

안전보건공단에서 발간하는 ‘안전보건기술지침’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 지침은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내용을 구체화하거나, 규칙에 없더라도 안전보건을 위해 필요한 내용을 정리해 놓은 자료다. 작업별로 지침이 마련됐다. 예를 들어 프레스 작업자의 경우에는 ‘프레스 금형 작업의 안전에 관한 기술지침’을 찾아서 내 작업에 맞게 체크리스트를 만들 수 있다.

체크리스트를 만들어서 자가점검을 해봤는데 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위반되는 내용이 확인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이 규칙은 산업안전보건법 38조(안전조치)·39조(보건조치)의 위임을 받아서 구체화한 것이다. 따라서 이를 위반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게 된다(법 168조1호). 사망하지 않더라도 법 위반 자체로 형사처벌을 받는다. 물론 가벼운 규정 위반은 아예 처벌 대상으로 보지 않아서 범죄인지 대상에서 제외된다. 근로감독관 집무규정(산업안전보건) 별표2를 참조하면 된다. 형사처벌을 받든지 아니면 과태료나 시정명령 대상이 되든지, 사업주로서는 부담스러운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므로 노동자와 노조는 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의 내용을 숙지하고 적극적으로 사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체크리스트는 예방적인 목적뿐만 아니라, 사고가 발생한 이후 회사의 잘못을 조목조목 적발하기 위한 용도로도 활용될 수 있다.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의 경우 비교적 면밀히 조사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아무런 조사도 없이 넘어가는 일이 적지 않다. 어느 경우든지 노조나 동료노동자가 체크리스트를 만들어서 자체적인 재해조사를 할 때 사용해 볼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노동부가 미처 짚어 내지 못한 법 위반사항이 있다면 추가로 고소를 제기하는 것도 방법이다.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현장 노동자고, 또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를 잘 아는 사람도 현장 노동자다. 위와 같은 방법으로 만들어진 체크리스트를 활용한다면 내가 알고 있는 위험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법률적으로는 어떤 문제가 있는 상황인지를 포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일터를 안전하고 건강하게 바꾸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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