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비와 뙤약볕을 오가는 악천후속에, 민주노총 지도부들이 35일간의 명동성당 농성을 끝냈다.

지난 2일 수배지도부들은 정부의 '전향적 조치' 약속을 받고 자진출두한 결과, 단병호 위원장과 공공연맹 양경규 위원장을 제외하곤 모두 풀려났다. 종로경찰서로 자진출두했다 지난 4일 풀려난 민주노총 이홍우 사무총장은 오랜 농성의 피로를 풀 여유도 없이 영등포 민주노총 사무실에 출근했다. 남아있는 100여명의 구속수배자 문제 등으로 처리할 일이 쌓여있기 때문이다.

자진출두 이후 구속된 양경규 위원장을 면회하고 왔다는 말을 먼저 꺼낸다. 양 위원장은 "구속중인 대한항공조종사노조간부들을 생각하면 오히려 맘이 편하다. 그들과 함께 풀려나길 바란다"는 말을 전했단다.

- 수배지도부가 자진출두한 것은 정부의 태도변화 때문인가.

= 정부와 민주노총의 상황과 조건이 맞아떨어졌다고 본다. 최근 정부가 추진하겠다고 하는 노동시간단축논의는 사실 민주노총의 오랜 투쟁의 성과로 봐야 한다. 따라서 민주노총으로서는 이제 세부적인 성과를 챙길 시기가 온거고, 그런 차원에서 출두문제도 적극적으로 고민했다.

- 구속수배문제와 관련, 정부의 구체적인 약속이 없지 않냐는 우려도 있는데...

= 보통 노정협상을 할 때는 양쪽의 가이드라인이 분명했다. 사실 이런 경우에도 약속을 보장받긴 힘들었다. 이번에는 그런 과정이 없으면서 우려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또 신부를 매개로 한 대화라 직접적인 대화과정이 없었다는 것도 예전과는 다른 점이다.

그러나 하반기 투쟁을 준비해야 하는 시점이고 노동시간단축 등 현안문제가 빠르게 진행되는 속에서 위원장-총장의 발이 동시에 묶여 있다는 점은 한계가 컸다. 또 천주교회가 나선 속에서 전향적 조치를 약속한 정부를 못믿겠다고만 하긴 부담스러웠고, 이 협상이 깨진 이후 어떻게 할 것이냐에서 곤혹스러운 점이 있었다.

- 앞으로 구속수배 문제 뿐아니라 현안에 대한 노정대화가 열릴 것으로 보나.

= 노사정위는 그동안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많았다. 그리고 지금은 노사정위가 노정대화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정부의 의지만 있다면 노사정위가 아니라도 노동시간단축 등의 문제를 놓고 대화가 가능할거라고 본다. 민주노총이 빠져 있는 상태에서 노사정 대화가 어느만큼 신뢰성을 갖겠느냐. 어떤 형식이든간에 대화의 틀은 갖춰야 한다.

구체적인 전망을 지금 하긴 힘들지만, 어찌됐든 민주노총은 정부와 언제든지 대화할 용의가 있고 적극적으로 임할 것이다.

- 노동시간단축논의를 위한 부분적인 노사정위 참여도 불가능한가.

= 노사정위내의 논의 틀은 어떤 식이든 참여할 수 없다. 정부도 노사정위를 이야기하지만 합의가 안되면 알아서 하겠다는 것 아니냐. 이럴 경우 정부도 민주노총과의 대화까지 고민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 이전에 비해 적극적인 대화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 같다. 변화라고 볼 수 있나.

= 변화된 것은 없다. 노사정위가 걸림돌이었던 거지 정부와의 대화 자체에 대해서는 언제나 적극적인 자세를 취해왔다. 대화는 곧 협상을 말한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에게 어떤게 득이 되고 실이 될 것인지를 확인하고 싸워야 한다. 막연하게 싸우자고 해서 되겠냐. 소기의 성과를 내기 위해서라도 투쟁과 협상은 병행해야 하는 문제다.

- 한국노총만 노사정위에 참여하고 있는 상황이다. 노사정 협상을 앞두고 한국노총과 어떤 관계를 유지해 나갈건가.

= 간접적으로 민주노총과 협의없는 '노사정 합의'는 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전해듣고 있다. 전체 노동자들의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노동시간단축 등에 대한 입장에서 공통점과 차이를 좀 더 확인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추후 연대문제는 조직내에서 판단하게 될 것이다.

- 민주노총의 하반기 투쟁은 어떻게 구상하고 있나.

= 비정규직 보호와 노동시간단축 제도개선, 구조조정 저지투쟁 등이 핵심이 될거다. 상반기와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진 않는다. 다만 법제도개선이 목전에 닥치게 되면 전력을 다하게 될거다. 정부가 주5일근무제 등으로 화두를 던지면서 예년과 달리 쟁점이 확연히 드러난 상황이라 노사정간의 한판 설전이 불가피하다. 민주노총도 우리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서 막연한 투쟁이 아닌 세밀한 상황인식과 투쟁준비가 필요하다.

- 상반기 투쟁에서 나열식 요구가 많았고, 실질적인 성과를 얻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는데...

= 지난 5∼6월 총력투쟁에서 비정규직의 문제나 구조조정저지, 언론개혁 등 일부 사회쟁점화는 시켜냈다고 본다. 다만 단위사업장 임단협 요구가 부각되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민주노총의 6대 요구가 사회적으로 이슈화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기업별노조의 임단협 시기집중투쟁에 민주노총의 요구를 얹어놓았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이 사회적 요구를 내걸었을 때 현장에서 어떤 투쟁을 조직해 나갈건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 중앙의 협상력이 발휘되지 못했다는 제기가 나올수 있을텐데...

= 정부가 노사정위만 고집하는 속에서 조건이 만만치 않았다. 이를 무력화시키고 정부와의 직접협상을 끌어내려면 59만 조합원의 폭발적인 투쟁력이 담보됐어야 한다. 기업별로 임단협이 타결이 속속 이루어지면서 상황은 더욱 힘들었다.

그러나 반드시 직접협상을 통해서만 요구를 부각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직접협상이 안되더라도 (한다리 건너서 하는) 간접협상이나 사회전반에 광범위하게 화두를 던지는 보이지 않는 협상의 성과가 확인되고 있다. 꼭 장관과 만나야 하는 건 아니지 않느내. 앞으로도 정부가 제도개선에서 구체적인 안을 마련할 때 민주노총이 어떤 요구를 할 건지를 구체화해야 한다.

- 정권퇴진투쟁을 이어가면서도, 정부와의 적극적인 대화가 가능할까.

= 그렇게 이분법적인 접근은 곤란하다. 정권퇴진투쟁은 대우차 투쟁이 터지던 당시 판단에 의해 중앙위에서 결정된 것이고, 이것 자체가 민주노총을 고립시킨다고 보진 않는다. 상반기에 많은 시민단체들이 정권에 대해 최소한 반대입장을 걸어줬다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

- 하반기 주요 투쟁동력은.

= 상반기에 주로 임단협을 이용했다면 하반기에는 전체 노동자계급의 요구가 담겨 있는 제도개선 투쟁에서 총파업을 염두에 두는 투쟁준비에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현안이 걸려 있는 1만 혹은 2만 대오를 중심으로 총파업을 내거는 식의 접근은 피하고 싶다.

- 노동시간단축에 대해 현장이 어느만큼 움직일 것이라고 보는가.

= 정부가 먼저 카드를 던진만큼 현장에서도 각론에 대해 관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하다못해 자신의 연월차휴가가 어떻게 될 것인지도 계산해보게 될거다. 구체적인 요구를 현장으로부터 취합하게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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