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병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종종 이방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 다들 SNS(사회관계망서비스) 마케팅이니, 온라인 시장이니 하는데 대화에 끼기 힘들다. 스타트업에서 대기업까지, 대다수 기업에게 온라인 전략은 디폴트값이다. 하지만 나는 일터에서 경험해 본 바가 거의 없다.

인스타그램에 ‘노동조합’을 검색해 봤다. 해시태그된 게시물이 1천개 내외 나왔다. ‘비정규노동’은 100개 미만이었다. 국내 인스타그램 월 평균 이용자는 1천만명이 넘는다. 이들이 얼마나 많은 게시물을 생산할까. 100개, 1천개는 너무나도 적다. 페이스북·유튜브 등에서 검색해 봐도 결과는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물론 키워드를 검색한 결과는 단편적인 사실만을 말한다. 특정 사안을 복합적으로, 구체적으로 드러내지 못한다. 빅데이터 분석도 신뢰할 만한 통계도 아니니 당연하다. 하지만 그 정도가 극단적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온라인에서 생산되는 노동 관련 데이터는 차마 언급하기 부끄러운 수준이다. 말 많고, 시끄럽다며 원색적 비난을 받아도 꿋꿋이 제자리를 지키던 노동이 맞나 모르겠다. 그렇다. 노동은 온라인에서 침묵하고 있다.

21세기의 새로운 연료는 데이터라고 한다. 애플이 스마트폰 혁명을 일으킨 후 수많은 사람이 매시간,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데이터를 생산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을 대표하는 기술인 인공지능·사물인터넷·자율주행차·가상현실 등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 중이다. 이 기술들이 상용화한다면 훨씬 많은 데이터가 쏟아질 것이다.

21세기의 새로운 연료가 데이터라면, 21세기의 새로운 권력 역시 데이터가 아닐까 한다. 과거 미국은 석유를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벌였다. 지금은 데이터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중국과 무역 전쟁을 벌인다. 우리 정부 역시 최근 데이터 전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디지털 뉴딜 사업의 일환으로 데이터 댐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이밖에도 4차 산업혁명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노동은 여전히 전통적인 오프라인 방식의 데이터 생산을 고집하고 있다. 그 중심은 노조다. 노조는 일종의 플랫폼이다. 사람을 모으고, 협상·시위·노사정 대화·노동자 실태조사·토론회·기자회견을 통해 데이터를 생산한다. 데이터가 쌓여야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노조가 생산하는 데이터 양은 온라인의 그것과 비교했을 때 턱없이 부족하다. 생산자가 한정돼 있고, 생산의 자발성은 기대하기 힘들다. 재생산도 거의 없다. 오프라인의 한계다.

위기감을 느껴야 한다. 변화는 빠르다. 힘의 축은 온라인으로, 데이터로 이동했다. 그 흐름은 더 강화될 게 분명하다. 아직 불안정하지만 5G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는 중이다. 삼성과 같은 IT 선도 기업들은 벌써 6G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6G는 4G보다 데이터 전송 속도가 약 1천배 가까이 빠르다. 미래에 소비되고 생산될 데이터 양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있다. 데이터 양극화, 개인정보 유출, 감시사회, 해킹, 소비지상주의 같은 부작용을 경계해야 함은 분명하다. 하지만 역사의 큰 물결을 되돌리는 건 쉽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가 급격한 변화에 채찍질을 가했다. <사피엔스>의 저자인 미래학자 유발 하라리는 “데이터 시대는 반드시 온다”고, “중요한 건 인간이 어떻게 기술을 활용하고 어떤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내느냐”라고 말했다.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찾아야 한다. 코로나19는 위기이면서도 기회가 될 수 있다. 노조·노동단체의 경우 대면 사업이 디폴트값이다. 코로나19로 인해 계획했던 사업이 다수 멈췄을 것이니 새로운 시도를 할 여유가 생겼다. 신박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좋다. 이제 시작이다. 온라인과 친해져야 한다. 뭐라도 시도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조금씩 길이 보일 것이다.

인공지능은 인간이 주입한 데이터 내에서 사고하고 행동한다. 현재 인간이 생산하고 있는 데이터는 백인·남성·비장애인·부자 같은 사회적 강자 중심이다. 그래서 미래 인공지능은 차별주의자일 가능성이 높다. 불행히도 노동은 데이터에서 배제됐다. 언급조차 안 된다. 데이터가 곧 권력이라면 차별적인 데이터를 평등하게 만들기 위해 힘써야 한다. 노동은 온라인에서 더 떠들어야 한다. 시간이 지나 인공지능에게 노동의 현재를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까. 당장은 상상하기조차 싫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ilecd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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