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서울시장 박원순이 지난 9일 돌연 사망했다. 그날 오전 11시 필자는 서울시청 앞에서 공공운수노조 서울메트로9호선지부(9호선 2·3단계) 파업 관련 기자회견에 ‘9호선 안전과 공영화 시민대책위’ 공동대표 자격으로 참석했다. 기자회견 제목은 ‘서울메트로9호선지부 준법투쟁 및 파업 지지 서울지역 시민사회, 종교, 정당, 풀뿌리단체 기자회견’이었다. 그 자리에서 필자는 여는 말에서 안치환의 최근작 노래인 ‘아이러니’의 가사를 읽었다.

안치환은 이 곡을 내놓은 동기를 이렇게 밝혔다. “세월은 흘렀고 우리들은 낯이 두꺼워졌다. 그날의 순수는 나이 들고 늙었다. (중략) 권력은 탐하는 자의 것이지만 너무 뻔뻔하다. 예나 지금이나 기회주의자들의 생명력은 가히 놀라울 따름이다. 시민의 힘, 진보의 힘은 누굴 위한 것인가? 아이러니다.”

이 노래의 가사는 이렇다. “일 푼의 깜냥도 아닌 것이/ 눈 어둔 권력에 알랑대니/ 콩고물의 완장을 차셨네/ 진보의 힘 자신을 키웠다네/ 아이러니 왜 이러니 죽쒀서 개줬니/ 아이러니 다이러니 다를 게 없잖니/ 꺼져라 기회주의자여/ 끼리끼리 모여 환장해 춤추네/ 싸구려 천지 자뻑의 잔치뿐/ 중독은 달콤해 멈출 수가 없어/ 쩔어 사시네 서글픈 관종이여/ 아이러니 왜이러니 죽쒀서 개줬니/ 아이러니 다이러니 다를 게 없잖니/ 잘 가라 기회주의자여”

그 시각 고 박원순 서울시장은 등산복을 입고 가회동 관사를 나와 북악산을 향해 오르고 있었다. 책상 위에 유서를 남겨놓은 채. 그것도 모르고 필자는 박원순 시장에게 이런 비판적인 노래가 이 시기에 발표되고 뭇사람의 공감을 얻는 이유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라고, 각성하라고 촉구했다. 그리고 저녁쯤에 그가 북악산에서 오른 후 사라졌다는 사실을, 그리고 자정이 지나서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어마어마하게 놀랐다. 한편으로는 안쓰러웠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안했다. 죽음을 결심하고 산에 오르는 사람에게 날선 비판과 촉구를 했다는 사실이. 그 시점 서울메트로9호선지부는 다음날로 예정된 파업을 철회했다.

그러나 그의 죽음과 그 이후의 진행 과정은 우리로 하여금 그의 죽음을 안쓰러워하고 미안해하는 데 머무를 수 없게 한다. 그의 죽음은 이미 엄청난 정치적 파장을 낳았고, 그 파장은 수구보수 세력과 자유주의 세력 간의 정치공방 수준을 훨씬 뛰어넘을 것이다.

박원순 시장의 죽음은 그의 여비서가 그를 성추행 가해자로 경찰에 고소함으로써 일어났다. 그가 성추행을 하지 않았고 피해자가 경찰에 고소하지 않았다면 그는 숨지지 않았을 것이다. 인과관계는 이렇듯 불 보듯 분명하다.

자신의 여비서를 장기간 성추행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박원순의 인생은 실패했다. 보통사람이라고 해도 이런 부도덕하고 불법적인 행위를 하는 사람의 삶은 실패작이다. 더구나 그는 보통사람이 아니다. 유신체제에 맞서 학생운동을 하다 구속·제명됐다. 역사문제연구소를 창립했다.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을 비롯해 성폭력 피해자를 변호하는 데 앞장서 온 이름 날리는 인권변호사였다. 대표적인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를 창립한 명망 높은 시민운동가였다. 그 공로로 수도 서울의 시장이 됐다. 그리고 젠더특보 제도까지 만들어 성차별과 성폭력을 막기 위해 노력해 온 ‘진보적’인 정치인이었으며,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였다. 그런 그가 한 번의 실수가 아니라 4년간 지속적으로 자신의 여비서를 성추행해 왔다.

그는 이런 거짓된 삶을 살다가 그 진실이 폭로될 지경에 이르자 서둘러 인간의 존엄을 내려놓음으로써 진실을 은폐하고 명예를 지키고자 했다. 하지만 사태는 그의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고 있다. 그는 자신의 명예를 위해 피해자가 피해 사실에 대해 사과받음으로써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회복할 길을 차단했다. 뿐만 아니라 그 피해자를 훌륭한 정치인을 죽게 만든 가해자로 둔갑시켰다. 이 얼마나 잔인한 행위인가. 이런 잔인함에도 그는 사후명예를 지키는 데 실패하고 있다. 극단적인 선택으로 사후의 명예를 지킨 정치인들이 있었지만 이번의 경우는 다르다. 뇌물제공자가 진실을 덮는 데 동의하는 것과 달리, 성추행 피해자는 진실을 밝혀 자신의 인간적 존엄성을 회복하려고 분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원순의 삶과 죽음의 실패는 개인 박원순의 실패인 동시에 자유주의 집권세력의 실패다. 이들은 박원순과 관련한 진실을 은폐하고자 갖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가해자인 서울시가 피해 진상조사를 하려 했고, 청와대는 여태껏 어떤 사과도 하지 않고 있다. 피해자측과의 면담 약속을 번복, 수사를 기피했던 검찰이 ‘피소 누설’을 수사하고 있다. 피해자의 고소 사실을 알려줌으로써 박원순이 성추행 은폐 대책을 강구하도록 도와준 것으로 의심받는 청와대·검찰·경찰·여당 가운데 어느 곳에서도 정보를 유출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서울시 젠더특보와 비서실장도 입을 닫고 있다. 그리고 박원순이 목숨을 끊기로 결심·결행하기까지의 행적에 대해서도 사자명예를 구실로 일절 밝히지 않고 있다. 이렇게 모든 것을 베일로 가리는 반면에 큰 공적에 비한 작은 실수에도 자신의 생명을 포기했다고 하면서 장엄한 장례식으로 그의 삶을 미화하고, 죽음을 숭고화하고 있다.

왜 이럴까. 조국의 경우에서 엿볼 수 있듯이 체제변혁에서 체제개혁으로 신조를 바꾼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의 많은 수가 박원순과 비슷하게 위선적인 삶을 살아 왔다. 이들의 상징 격인 박원순의 성추행 행위가 낱낱이 밝혀지면 이를 계기로 이들의 대부분 또한 숭고하기는커녕 도덕적이지도 정의롭지도 않다는 은폐된 진실이 만천하에 폭로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들의 허물을 손바닥으로 가리려는 이들의 시도 또한 이미 실패하고 있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