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박노자 오슬로대 교수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과 블로그에 ‘정의연 마녀사냥의 함의’라는 제목으로 윤미향과 그가 주도한 위안부 운동을 옹호하는 글을 올렸다. 박 교수는 그 글에서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아주 단순화시켜 이야기하자면, 정의연에 대한 마녀사냥의 근원적 이유는 정의연의 운동이 한·미·일 삼각동맹의 ‘발전’에 걸림돌이 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회주의적·평화주의적 진보의 입장에서는 이 운동의 내재적 문제(피해자와 지원자의 소통 부족 등등)를 지적하면서도, 모든 ‘의혹’에 대한 공정한 조사를 기대하면서도 일차적으로는 마녀사냥을 당하는 운동가들을 옹호해야 합니다. (중략) 이 운동이 아무리 미숙함이 있었다 해도 그 기여부터 객관적으로 생각하는 게 우선이며, 그 공격자들을 저의부터 정확히 관찰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이 주장의 프레임은 지금까지 우리가 누누이 봐 온 것이다. 최악 세력인 수구 파시스트 세력이 차악 세력인 자유주의 세력을 공격하면 최악을 피하기 위해 차악을 옹호하고 지지하는 프레임 말이다. 이런 프레임에 따르면 최악 세력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항상 차악 세력을 옹호해야 한다. 이런 프레임은 한국의 지배체제가 한국전쟁 이래 70년 동안 최선과 차선 정치세력의 발전을 봉쇄하고자 우리 민중에게 강요해 온 것이다.

그런 프레임에도 일말의 타당성은 없지 않다. 최선이든 차선이든 선을 택할 수 없는 지옥 같은 식민지 파쇼통치 상황에서 최악을 피하기 위해 차악을 옹호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노동자·민중이 가열찬 투쟁으로 군사파쇼 통치를 타도해 부드러운 민간파쇼 통치로 대체한 상황에서는 매번 최악을 피하기 위해 차악을 옹호하라는 논리는 더 이상 타당하지 않다. 그것은 오랫동안 노동정치·진보정치 발전을 가로막아 온 시대착오적 ‘비판적 지지’ 논리다.

박노자 교수는 자신의 그릇된 결론을 정당화하고자 사실왜곡까지 하고 있다. 그는 집권 자유주의 세력이 윤미향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자유주의 진영은? 그들은 공격에 대놓고 참여하지는 않더라도 공격을 말리려 하지도 않습니다. 관망을 하고 있는 셈인데, 정의연 운동의 ‘위기’를 은근슬쩍 꼭 슬퍼하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아베를 싫어하더라도 아베가 일본의 수상인 만큼 아베와 ‘소통’을 해야 할 것이며 ‘관계관리’를 해야 하는 입장이고, 그 입장에서는 일본의 ‘과거’를 캐내는 운동은 ‘불편’하기도 합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주장은 전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윤미향은 한국의 사회운동 안에서 이른바 민족해방 계열에 속해 왔다. 민중당이 그를 옹호하는 것을 보면 지금도 그럴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된 그가 자유주의 세력에 속하지 않으며, 따라서 자유주의 세력이 그를 옹호하지 않을 거라고 하는 주장이 과연 사실에 부합하는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윤미향 문제에 대해 비판적 발언을 하지 마라고 함구령을 내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일 윤미향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없이 “위안부 운동 자체를 부정하고 운동의 대의를 손상시키려는 시도는 옳지 않다”고 쐐기를 박았다. 이게 윤미향에 대한 적극적 옹호가 아니고 무엇인가. 윤미향은 문재인 정권의 반일민족주의 간판에 딱 들어맞는 사람으로서 콕 찍어서 발탁된 것이다. 그래서 지금 자유주의 세력과 수구 파시스트 세력 사이에 윤미향 옹호냐 죽이기냐를 놓고 한판 투쟁이 전개되고 있다. 박노자 교수의 주장은 이런 사실과 어긋나는 그릇된 사실인식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면 윤미향과 그가 주도한 정대협·정의연의 위안부 운동은 어떤 점에서 문제가 있었고, 또 있는가. 윤미향과 정대협 그리고 위안부 운동이 안고 있는 문제는 여러 가지이고 또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윤미향이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에 출마해 당선됨으로써 터져 나왔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번에 윤미향을 국회의원으로 끌어들인 더불어민주당은 반일민족주의를 정치노선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예전의 자유주의 정당들과 다르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의 반일민족주의 노선은 친미를 전제로 하는 민족주의로서 그 자체로 기만적일 뿐 아니라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데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반일민족주의는 한국 독점자본의 아제국주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노선으로서 일본 독점자본 전체의 이해관계와 대립한다. 아베정권이 아니라 일본 독점자본 전체, 나아가 일본국민 전체를 적대시하는 이런 반일민족주의는 일본 내의 반한 민족주의를 북돋우고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죄·배상 반대 여론을 강화한다. 반일민족주의는 국제적으로도 위안부 운동의 지지를 축소시킨다. 위안부운동은 한국에서는 반일민족주의와 결합돼 있지만 국제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전쟁시 여성에 대한 성폭력 문제로서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요구하는 운동이면서 여성인권을 요구하는 운동이다. 문재인 정권의 친미·반일 민족주의는 이같이 인류보편적인 인간해방을 지향하는 사회주의운동 노선과 충돌한다. 그런데 윤미향은 문재인 정권 반일민족주의 운동의 아이콘으로 변신했다. 그러자 이용수 선생은 윤미향이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으로 들어간 데 대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해야지 왜 국회로 들어갔느냐고 강하게 질타했다. 이것이 국회의원 자리다툼인가.

회계 투명성 문제와, 지원하는 자와 피해자의 올바른 관계 설정 문제도 중요하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문제는 윤미향이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으로 발탁됨으로써 위안부 운동이 문재인 정권의 반일민족주의에 정치적·조직적으로 종속된 것이다. 위안부 운동은 반일민족주의 운동의 종속물이 아니라 제국주의 상호 간 전쟁에 반대하고 전쟁시 여성에 대한 성폭력 종식을 요구하는 초민족적 여성해방·인간해방 운동이 돼야 한다. 다시 말해 사회주의 운동의 일부가 돼야 한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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