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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지위확인 소송 2심 승소했지만] 웃을 수 없는 한국지엠 비정규 노동자들항소심 1천964일 만에 선고 … “대법원은 또 얼마나 오래 걸릴지”
▲ 금속노조 한국지엠군산·부평·창원비정규직지회가 지난 2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선고연기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금속노조>
“솔직히 1심 판결 나왔을 때가 더 기뻤어요. 2심은 오래 걸렸잖아요. 대법원 확정까지 또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할지 깜깜해요.”

한국지엠 부평공장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했던 김아무개(43)씨가 체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김씨는 한국지엠을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낸 금속노조 한국지엠부평비정규직지회·창원비정규직지회·군산비정규직지회 조합원 82명 중 한 명이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5일 한국지엠이 불법파견으로 이들을 사용했다는 1심 판결을 유지했다.

원청, 상고할 듯 … “빨리 끝났으면”

<매일노동뉴스>는 지난 12일 오후 이번 판결의 소송 당사자인 김씨와 한원덕(48)씨·권아무개(41)씨·이아무개(46)씨 4명을 인터뷰했다. 김씨는 2017년 말, 한씨와 권씨는 2018년 말 부평공장에서 쫓겨났다. 창원공장에서 일한 이씨는 지난해 말 해고됐다.

한국지엠 비정규 노동자들은 저마다 사정은 달라도 “해고되지 않고 안정적으로 살고 싶어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 참여했다고 한다.

그런데 김씨를 비롯한 조합원들은 승소의 기쁨보다 앞으로 닥칠 상황을 더 걱정하는 분위기다. 항소심 선고 이후 회사가 상고하겠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소송 당사자들은 대법원까지 가는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3개 지회에 따르면 회사는 대법원까지 사건을 끌고가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상고심에서 결과가 뒤집힐 수 있다는 불안감보다는 항소심처럼 회사의 ‘시간끌기’ 전략이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2심은 소송을 제기한 지 1천964일 만에 나왔다. 회사의 변론재개 요청으로 선고기일이 세 차례 연기된 탓이다. 14년간 부평공장 엔진부에서 일했던 한원덕씨는 “회사가 ‘3심제니까 끝까지 가겠다’고 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서 속상하다”며 “대법원(까지 가게 된다면) 판결이 연기되지 않고 빨리 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소송이 진행되는 1천964일 동안에도 비정규 노동자들은 계속 계약해지·업체 폐업 등으로 해고됐다. 2018년 2월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1심 판결에서 불법파견이 인정됐다. 같은해 5월 고용노동부가 창원공장 비정규직 774명에 대해 직접고용 시정명령을 내렸지만 회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배성도 한국지엠창원비정규직지회장은 “지난해 창원공장에서 600여명이 해고됐는데 1심 승소자들도 포함됐다”며 “노동부 시정명령에 대해 회사는 행정소송으로 버티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소송 장기화에 생계부담 가중

소송 기간이 길어지면서 해고자들의 생계 부담은 커지고 있다. 실업급여와 금속노조에서 제공하는 투쟁기금 등으로 버텨 온 노동자들은 늘어나는 빚과 언제 끝날지 모르는 소송에 대비해 취업 전선에 뛰어들고 있다. 2017년 말 해고된 이후 기아차 화성공장 부품업체에서 일한 김씨는 “일단 2심 판결 소식이 들려서 그만뒀는데, 빚도 갚고 자식들 뒷바라지하려면 또 일하면서 버텨야 한다”고 말했다.

1998년부터 창원공장 사내하청업체 생산관리부서에서 일했던 이아무개씨는 해고 이후 “창원시청에서 하는 재취업프로그램에도 참여해 봤지만 도움이 되지 않았다”며 “다른 데 가서 (새로운 업무를 배운 뒤) 일하기 힘든데 아이들은 어리고 앞길이 막막하다”고 말했다.

해고 사실을 가족에게 숨기고 있다는 권씨는 비밀을 지켜야 할 시간도 기약 없이 늘어났다. 일을 그만둔 지 1년6개월이 넘었지만 같이 사는 장모에게는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권씨가 매일같이 출근시간에 집 밖으로 나가 퇴근시간에 돌아오는 이유다. 권씨는 “복직돼서 회사가 일만 시켜 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아빠가 만든 차” 아이들에게 말하고 싶어

지난한 과정 속에서도 복직과 정규직 전환에 대한 염원만큼은 흐려지지 않았다. 창원비정규직지회 조합원 가운데 가장 오래 일한 노동자 중 한 명인 이씨는 국민차라 불렸던 티코와 서민의 발이 돼 준 다마스·라보를 생산하며 자부심을 느꼈다. 그는 창원공장에 신규 차종 크로스오버 유틸리티차량(CUV)이 배정된 만큼 신차를 만들 날을 기다리고 있다.

“마창대교를 지날 때마다 초등학생인 아이들한테 배에 실린 차들을 보고 ‘아빠가 만든 차가 외국으로 수출되고 있다’고 말했어요. 아이들도 차를 보면 ‘아빠가 만든 차다!’ 하고 얘기해요. 해고된 뒤로 그런 얘기를 들을 때면 마음이 씁쓸했어요. 빨리 공장으로 돌아가서 ‘아빠가 만든 차’라고 당당히 말하고 싶어요.”

어고은  ago@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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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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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런 2020-06-19 03:58:14

    또 대기업 탓 한다
    도급업무를 줘서 협력업체가 하는건데 그냥 직영직원 되고싶아서 그러는거잖아? 그럼 협력업체말고 작은회사라도 들어가세요   삭제

    • 오우교 2020-06-16 00:35:19

      대기업넘하네..일하는 노동자들 다죽이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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