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민애 변호사(법무법인 율립)

4월. 봄이 한창 무르익어 꽃들이 만발하고 풍경의 빛깔마저 따뜻한 한 달이 시작됐다.

그러나 2014년 그날부터, 해마다 돌아오는 이 4월을 더 이상 반가워할 수 없게 됐다. 그리고 지난해 이맘때 흐드러지게 피는 벚꽃을 보며 아들을, 동생을 가슴에 묻어야 했던 이들에게 다시금 서글프고 잔인한 날들이 돼 버린 4월이다.

지난해 4월10일 스물여섯 살 청년 노동자 김태규씨는 수원의 한 아파트형 공장 신축현장에서 사망했다. 인력파견업체를 통해 현장에서 일한 지 3일째 되는 날이었다.

당시 승강기는 완성되기 전 상태로 설치검사를 받기도 전이었고, 문이 열린 채 수시로 운행되고 있었다. 안전하게 통행할 수 있도록 맞춰야 하는 최소한의 밝기 기준도 지켜지지 않은 상태였다. 층마다 발생하는 건설폐기물을 모아서 처리하는 작업을 했던 고인과 동료 노동자들은 수시로 승강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제대로 검사도 마치지 않은 승강기로 하루하루 위태롭게 일해 왔던 것이다.

고인과 동료 노동자들이 하루하루 일한 결과로 그곳에 공장이 완성됐다. 공장을 운영해서 이익을 향유하게 되는 궁극적인 당사자는 건축주다. 그렇다면 권리와 이익을 누리는 만큼 공장 신축 과정부터 그에 맞는 책임을 져야 하는 당사자 또한 건축주가 돼야 할 것이다.

공장 신축공사를 수급받은 시공사(건설사)는 어떠한가. 실제 공사업무를 총괄해 책임지는 주체로서 공사 과정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다치지 않고, 인근지역 주민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할 당사자다.

그러나 권리·이익을 누리는 자와 책임을 지는 자는 늘 정확히 구분된다. 노동자가 다치거나 죽는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현장 관리책임자 개인의 형사처벌에 그치거나, 해당 법인에게 산업안전보건법상 과태료나 벌금을 부과하는 정도다.

건강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하지 않아도, 그리고 그 결과 누군가 죽거나 다치더라도 별다른 타격을 입지 않는다. 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기준인 산업안전보건법을 포함한 관련 법령을 지킬 유인이 전혀 제공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유족들과 시민사회 대책회의는 고인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건축주와 해당 업체의 대표·임원들, 그리고 시공사와 대표·임원들, 파견업체 운영자들을 업무상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고소·고발했다.

그 결과 검찰이 현장 관리책임자 일부와 건설사만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는 데 그쳤다. 검찰 처분에 항의하고 제대로 된 수사와 기소를 촉구하고 있지만, 건축주인 반도체 업체는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 현재 신축공장에 사무소를 두고 정상운영하고 있다.

비용절감과 안전한 노동환경을 맞바꾸고, 이를 통해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괜찮은 현행 법·제도 한계는 이렇게 아프고 쓰리게 확인된다.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고인을 추모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어야 할 유족들이 진상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할 것을 촉구하며 싸워야 하는 현실이 반복되고 있다.

채 피워 보지도 못하고 스러져 간 고인의 청춘에, 그 삶에 최소한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돼야 한다. 이익을 누리는 만큼, 그 책임을 무겁게 질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 잔인한 4월의 굴레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우리 의무가 아닐지,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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