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는 현재 우리사회는 여전히 민주주의를 외칠 수밖에 없습니다. 직장내 민주주의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어요. 땅콩회항이라는 직장갑질은 한 사람의 에피소드가 아닙니다. 갑질 없는 사회, 직장내 민주주의를 만드는 데 앞장서겠습니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정의당 당사에서 박창진(49·사진) 정의당 비례후보를 만났다. 박창진 후보는 재벌의 직장갑질 문제를 부각한 인물로 유명하다. 2014년 12월 대한항공 ‘땅콩회항’ 사건은 재벌갑질의 대명사가 됐고, 피해자인 그의 삶은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박 후보는 지난 6년간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저항했다. 그는 공공운수노조 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장을 거쳐 정의당 국민의노동조합특별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21대 총선에서 정의당 비례순번 6번으로 출마했다.

“이코노미 제일 끝자리” 땅콩회항 사건 뒤 ‘노동자’ 자각

- 후보는 25년간 항공승무원 노동자로 살았다. 땅콩회항 사건 이전 모습이 궁금하다.
“회사에서 나름 잘나갔다. VIP 담당업무를 했다. 국내외 유수의 정치인·연예인·경제인을 수행했다. 노동자인데 노동자가 아닌 줄 착각하고 살았다. 내 좌석은 이코노미 제일 끝자리였는데. 그 사건 뒤 우리사회가 계급사회라는 걸 알았다. 어느 사회보다 심하다. 상위계급은 말 잘 들으면 내 권리를 침해하지 않지만 내가 자각하는 순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그 사건 뒤 박 후보는 가시밭길을 걸었다. 노조 조합원이었지만 보호받지 못했고, 대한항공 총수일가는 철옹성이었다.

“초기에 모두가 외면했습니다. 처음엔 인간적 절망감을 느꼈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인간성이 아닌 시스템 문제였어요. 자기 목소리를 내면 강력한 기업주 권한에 의한 해고나 구조조정에 내몰리는 노동현실 말이죠. 의식의 전환이 왔습니다. 내부고발자나 공익제보자 대부분이 숨습니다. 나도 쉬운 선택을 하고 싶었지만 내 마음에 송곳 하나가 있더군요.”

박 후보는 포기하지 않았다. 내부에서 끈질기게 저항했다. 2018년 3월 목덜미에 난 종양으로 수술대에 오르기도 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대한항공의 두 번째 갑질인 ‘물컵갑질’ 사건이 발생했다. 이때 외신은 ‘Gap Jil’로 그대로 인용해 이 사건을 보도했다.

“여전히 내부는 침묵하더군요.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지막 저항이라고 생각했죠. 대한항공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며 갑질근절과 조씨 일가 퇴진을 요구했습니다. 내부 노동자들이 광화문광장으로 나왔어요. 함께하게 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측은 내부 직원을 사찰하고 징계했어요. 우리를 보호할 가장 좋은 방법은 민주노조밖에 없다고 생각했죠. 시위대 보호와 직장내 민주주의를 위해 노조까지 발전했죠.”

“내 마음의 송곳 하나” 6년간 포기 않고 저항한 이유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공공운수노조 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다. 박 후보는 올해 1월 말 퇴사하기까지 지부장을 지냈다.

- 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는 어떤 역할을 했나. 
“당시 거리로 나온 노동자가 3천500명이었다. 이 중 노조출범 때 600명이 가입했다. 출범단계에서 노조간부 5명에 대한 무단 인사이동이 진행됐다. 사측의 내부 공포정치에 의해 조합원이 많이 떨어져 나갔다. 지금까지 300명이 남아 견고히 투쟁하고 있다. 지부는 당시 무단 인사이동됐던 5명을 다 원직으로 복직시켰다. 연차휴가권 침해로 최초로 근로감독을 받도록 했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승무원은 우주방사선에 피폭되는 특수한 노동환경에 놓여 있다. 이 문제를 공론화해 국제적 기준을 따르겠다는 약속을 받아 냈다. 억압적 기업 분위기에서 꺼내지 못했던 문제를 지적하며 크고 작은 변화를 가져왔다.”

- 후보는 2017년 6월 정의당에 입당했다. 진보정당을 선택한 이유는.
“저는 성실하게 살아왔지만 누구에게도 보호받지 못했다. 처음엔 국가인권위원회에 호소했지만 민간기업과 개인 간 사건에는 관여하지 못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다음엔 국민을 대변한다는 국회를 찾았지만 ‘안타깝다’는 말 외에 돌아온 게 없다. 그때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준 당이 정의당이었다. 약소한 당이었지만, 힘도 많지 않았지만, 정치세력화가 왜 필요한지 알게 됐다. 그래서 최초로 당적을 갖게 됐다.”

“기득권층에 더 이상 기댈 수 없어, 노동자 정치가 답”

- 이번 총선에 출마하는 이유는 뭔가.
“외신과 인터뷰하면서 ‘갑질’을 표현 못해 글자 그대로 표현했다. 이 고질적인 문제를 누가 바꿔야 하나. 지난 6년간 끊임없이 이런 구조 개선을 위해 기득권층에 요구했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노동자 편이 아니기에, 약자의 편이 아니기에. 노동자조차 ‘정치혐오’가 심하다. 하지만 내 삶을 지배하는 게 정치다. 노동자가 정치를 터부시할 게 아니라 함께 가야 한다. 정치 속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 그 의식의 전환을 만드는 데 변곡점으로서 역할을 하고자 한다. 노동자를 대변하는 정치인이 되겠다. 그 문을 열겠다.”

- 거대 양당의 비례 위성정당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왜곡됐다. 정의당도 타격을 받을 듯하다.
“꼼수를 정당화하려면 원칙대로 하는 사람을 왜곡해야 한다. 쟤네가 잘못이야. 땅콩회항 때 저 같은 내부고발자를 향해 그랬다. 원래 나쁜 놈이야, 성실하지가 못해. 이런 왜곡된 메시지를 던진다. 정의당에는 29명의 비례대표 후보가 있다. 양경규(8번)·이은주(5번), 그리고 저 같은 후보가 있다. 처절한 노동현장에서 사회 변화를 위해 노력했다. 그 어떤 당이 가지지 못한 기득권스럽지 않은 진보정당다운 모습을 가지고 있다. 21대 국회에서는 누더기가 된 선거법을 원래 취지대로 개정하고, 위성정당 난립을 막을 수 있는 확실한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 후보는 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장 출신이지만 민주노총 지지후보 명단에 없다. 본인은 스스로를 ‘노동자 후보’라고 생각하나.
“나는 노동자 출신이고, 노동자를 대표하는 게 분명히 맞다. 국회에 가게 된다면 노동자를 대변할 것이다. 기존 산업구조에서 관광·항공 등 서비스 분야가 가장 팽창하는 분야다. 앞으로 미래를 담보하는 노동자 출신인 박창진은 근본인 나를 잊지 않을 것이다. 민주노총 후보에 포함되지 못한 것은 출마 선언 뒤 퇴사해서 그렇다. 공공운수노조 지부장으로 있던 자긍심과 긍지를 잃은 적이 없다.”

코로나19 항공산업 직격탄 “기업 해고금지 약속해야”

▲ 정기훈 기자


- 코로나19로 항공산업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구조조정이 쓰나미처럼 몰려오고 있다.
“해고는 살인이다. 정부는 기업에 100조원을 지원한다지만 노동자는 배제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때와 마찬가지다. 미국은 정부 지원을 받는 기업에는 해고를 금지시킨다. 해고는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사회 공동체에 대한 살해라는 걸 안다. 기업은 정부 지원을 틈타 잇속만 차리지 말고 해고금지를 하는 등 고통분담에 참여해야 한다.”

- 이번 총선 공약에서 재벌 경영통제 강화법을 내놓았다. 갑질119법과 노동자감정보호법, 공익제보자 보호제도 강화법도 눈에 띈다. 
“오너가 경영을 하면서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른다. 이를 견제하기 위해 노사 공동의사결정제도 등 노동자가 경영에 참여하는 제도가 도입돼야 한다. 갑질119법과 노동자감정보호법으로 본인 주장을 펴지 못하는 소외되고 약자인 노동자가 이 사회에서 인정받도록 하고 싶다. 공익제보자 보호제도 강화법을 통해 꼭 징벌적 손해배상 개념을 도입하겠다. 각자가 불공정함에 정당한 목소리를 내고 공감을 얻는 사회문화가 만들어져야 변화할 수 있다. 당시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은 ‘네 잘못이 아니야’란 말이었다. 그 말을 해 준 사람이 고 노회찬 의원이다. 또 다른 소외자와 약자에게 그런 말을 해 줄 수 있는 용감한 정치인이 되고 싶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