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40년을 택시 운전대를 잡았는데 이렇게 어렵기는 처음이네요. 승객이 없으니 사납금도 채울 수가 없어요. 일을 쉬는 게 차라리 나아요. 요즘 택시기사들은 회사에서 무급휴직을 안 받아 주면 그냥 안 나갑니다. 차라리 퇴사하는 게 일하는 것보다 이득이니까요.”

대구에서 택시운전을 하는 A(69)씨 말이다. 대구뿐만 아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승객이 줄면서 택시 가동률이 사상 최저로 떨어졌다. ‘운송수입 기준금’으로 이름만 바뀐 사납금을 메워야 하는 택시노동자들은 운전대를 놓아 버리고 있다.

대구 법인택시 가동률 23%, 서울 40%

26일 전택노련 대구본부에 따르면 전체 6천16대인 법인택시 가동률이 이달 평균 23%를 기록했다. 법인택시 10대 중 8대가 멈췄다는 말이다. 운행을 하는 택시라도 가동시간이 종전 10시간에서 6시간으로 줄었기 때문에 실질적인 가동률은 더 낮다.

김기웅 본부 조직정책지원국장은 “신천지 사태 이후 대구 거리에 사람이 없어졌다”며 “승객이 급감한 게 가동률 하락의 가장 큰 원인이지만 택시노동자들이 휴직이나 퇴사를 택하면서 운행을 기피하는 것도 영향이 크다”고 설명했다. 대구지역 택시노동자 70%가 60대 이상 고령자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감염 우려가 높아지면서 아예 집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년 이후 1년 계약 촉탁직으로 일하는 택시노동자들은 차라리 실업급여를 받겠다며 사표를 내고 있는 실정이다.

사납금도 택시노동자 발목을 잡고 있다.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여객자동차법) 개정으로 올해 1월부터 전액관리제가 시행됐다. 하지만 대부분 택시 회사들은 성과급 책정을 명목으로 운송수입 기준금을 정해 놓고 있다. 사실상 이름만 바꾼 사납금제가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대구지역 택시노동자 임금은 161만원에 불과하다. 월 400만원 이상 운송수입을 거둬야 성과급을 받을 수 있다. 성과급은 초과운송수입금(400만원)의 70%다.

불법·편법 사납금제 기승

그런데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뒤 하루 10시간을 운행해도 운송수입 기준금의 절반도 맞추기가 힘든 상황이 됐다. 택시가동률이 급감한 이달 들어 대구지역 택시 노사가 임금으로 월 120만원을 지급하기로 합의했지만 이마저도 지키지 않는 택시회사가 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택시노동자들이 무급휴직이나 퇴사를 선택하는 이유다.

서울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택시 승객이 급감하면서 서울시 택시 가동률이 40%까지 하락했다. 택시 10대 중 4대가 멈춰선 것이다. 택시노동자들이 벌어들이는 운송수익도 크게 줄어 서울 택시회사들의 월평균 운송수입 기준금인 410만원을 못 채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상황을 틈타 불법적인 사납금제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운송수입 기준금(410만원)보다 사납금 액수를 낮게 책정하는 대신 사납금을 못 채우면 택시노동자가 비용을 부담하는 방식이다.

전택노련 관계자는 “정부가 전액관리제 위반 사업장을 엄격하게 감독하겠다고 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갈피를 못 잡고 있다”며 “벼랑 끝에 서 있는 택시노동자 생계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전남도는 이날 35억원의 예산을 긴급편성해 택시노동자 7천명에게 1인당 50만원의 지역화폐를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반면 가장 피해가 큰 대구시는 택시회사에 4억원의 예산을 지원하는 게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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