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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안전보건법이 28년 만에 전부개정되며 산업재해에 대한 원청 책임 강화가 명시됐지만 현실 속 ‘원청 책임’은 여전히 손에 잡히지 않는 신기루다. 2017년 5월1일 노동절, 비정규 노동자 6명의 목숨을 앗아 간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크레인 충돌사고와 관련해 최근 법원이 원청 상급관리자의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인정하고도 원청 회사인 삼성중공업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는 부인했다. 고용노동부가 원·하청 산재 통합관리제를 적용하는 등 원청의 산재 예방책임 강화에 나서고 있지만 여전히 산재 피해와 책임은 노동자들에게만 전가되고 있다.

1심 뒤집고 원청 안전보건 관리자 유죄

23일 마틴링게프로젝트 삼성중공업 크레인사고 피해노동자 지원단에 따르면 최근 법원이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삼성중공업 안전보건 관리직 간부 3명과 하청업체 대표에 대해 원심을 파기하고 유죄를 선고했다.

창원지법 형사3부(재판장 구민경 부장판사)는 지난 21일 열린 재판에서 삼성중공업 조선소장 김아무개씨와 하청업체 대표 이아무개씨 등 4명에 대해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인정하고 금고형과 벌금형을 선고했다. 김아무개 조선소장을 제외한 이들 3명은 지난해 5월 이뤄진 1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당시 김씨에게 안전·보건 점검의무 위반 혐의로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앞서 1심 재판부는 골리앗크레인 신호수와 지브크레인 신호수·운전수, 하청업체 현장반장·삼성중공업 안벽지원과 직원 등 현장 노동자와 말단 관리자에게만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인정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크레인 간 간섭문제 및 충돌가능성에 대해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고 이를 방지할 주의의무가 있었음에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1심과 같이 2심 재판부 역시 삼성중공업에 대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는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안전보건규칙)에 의하더라도 크레인 중첩작업시 별도의 신호방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규정이 없다”며 “이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삼성중공업의 안전·보건 점검 의무 위반만을 유죄로 인정해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고, 크레인 사고와 직접 관련된 안전조치·산업재해예방조치의무 위반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2심은 1심을 그대로 인용했다.

피해노동자 지원단은 “재판부는 삼성중공업이 일방적·추상적인 지시·감독권만 있을 뿐 구체적·직접적 주의의무가 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며 “불법 하도급을 주더라도 안전주의를 지시했다면 책임은 없다는 꼴로, 원청에 면죄부를 주는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정부 조사·피해노동자 증언에도 빠져나간 원청

1심 재판 이후 피해노동자 지원단과 사고 피해노동자들은 재판 과정에서 ‘조선업 중대산업재해 국민참여 조사위원회’ 사고조사보고서가 법원 판단에서 누락된 사실을 인지하고 2심 재판에서 이를 문제 삼았다.

정부는 2017년 11월2일 사고조사위원회를 발족하고 삼성중공업 크레인사고에 대한 원인 조사를 했다. 당시 사고조사위는 “사고의 주된 원인은 원청 사업주가 지브형크레인 설치시 위험성평가를 온전히 수행하지 않은 것은 물론 골리앗크레인과의 충돌 위험을 평가하고 관련 대책을 수립·시행하지 않았다”며 “피해가 컸던 이유는 원청이 좁은 공간에 많은 사내도급 노동자를 동시에 투입해 작업하도록 한 점 등을 들 수 있다”고 밝혔다. 사고조사위는 삼성중공업의 반복된 크레인사고와 관련해 “크레인 충돌사고 예방을 위한 근본대책 미비”를 꼽았다. 이 사고로 동생을 잃은 피해자 박철희씨는 재판에서 “크레인 중첩으로 사고가 날 수 있다는 위험이 감지”됐음에도 삼성중공업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럼에도 법원은 “이 사고는 본질적으로 기존 규정이나 지침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데서 비롯된 것일 뿐 안전대책 및 규정의 불비도 실질적 원인 중 하나였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며 삼성중공업에 대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은주 마창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사고 책임을 관리자에게만 미루고 삼성중공업의 책임을 부인한 법원 판단에 아쉬움이 크다”며 “국회는 중대재해기업처벌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해 산재와 노동자 안전에 대한 원청 책임과 감독권한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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