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현대중공업 울산공장의 LNG 선박 15미터 높이 작업장에서 일하던 60대 노동자가 추락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고인은 ‘하청의 재하청’ 과정에서 고용된 물량팀 노동자로, 어떠한 안전장치도 설치돼 있지 않은 고소작업대 위에서 일하다 실족사했다. 현장에는 안전관리자도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작업발판 20미터 넘게 올라갔는데
현장에 안전시설물 하나 없어


23일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에 따르면 지난 22일 오후 2시께 울산공장 2야드 풍력발전소 부근 LNG선 트러스(LNG선 탱크 내 작업용 발판 구조물) 작업장에서 일하던 김아무개(62)씨가 추락했다. 김씨는 사고 직후 울산대병원으로 옮겨졌지만 한 시간여 뒤인 오후 3시 사망했다. 시신은 23일 오전 울산 북구 시티병원으로 옮겨졌다.

김씨는 원청인 현대중공업에서 LNG공사 도급을 받은 1차 하청업체 ㅈ기업이 재하도급을 준 ㅇ기업(2차 하청) 소속으로, 지난해 말부터 울산공장에서 일했다. 김씨는 LNG선 탱크 안에서 고소작업을 하기 위한 발판 구조물을 만드는 일을 했다. 현재 50% 정도 작업이 완료된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사고 당일 동료 2명과 함께 한 조를 이뤄 트러스 7단에서 합판을 깔고 나사로 고정하는 작업을 했다. 지부는 그가 고정되지 않은 합판을 밟아 중심을 잃고 떨어진 것으로 추정했다.

지부가 이날 공개한 사고현장 사진을 보면 20미터 넘게 올라간 작업장 어느 곳에도 안전그물망이나 추락방지망이 설치돼 있지 않았다. 안전관리자도 배치되지 않았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사업주는 근로자가 추락할 위험이 있는 장소에서 작업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

특히 사고 당일에는 제대로 작업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지부 관계자는 “사고 시간대에 울산지역 풍속이 초속 9.5미터로 측정될 만큼 강한 바람이 불어 작업조건도 열악했다”며 “사고 조사를 위해 올라갔을 때 합판 한 장이 날아가 떨어질 정도로 바람이 세게 불었다”고 말했다.
 

▲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속도전 속 위험에 노출된 채 일하는 물량팀

지부는 위험업무에 대한 ‘하청의 재하청’이 불러온 중대재해로 규정했다. 실제 조선소 하청의 재하청, 다단계 재하도급은 노동자 안전을 위협하는 주원인으로 꼽힌다. 2017년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 이후 발족한 ‘조선업 중대산업재해 국민참여 조사위원회’도 조선업 중대재해의 원인을 다단계 재하도급으로 지목한 바 있다.

김씨가 속한 물량팀은 속도전을 생명으로 한다. 작업투입 시간당 인건비를 책정하는 방식으로 공사대금이 정해지는 상황에서 하청업체들은 물량팀을 활용해 공기 단축을 꾀하고 있다. 하지만 공기 단축 압박이 강할수록 물량팀 노동자들은 위험한 작업환경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지부 관계자는 “물량팀은 ‘어디서부터 몇 미터까지’ 정해진 물량만 빠르게 처리하면 되다 보니 안전수칙을 지키기 어렵다”며 “만약 원청노동자가 했다면 그렇게 바람이 부는 날에는 작업을 하지 않았거나 작업 방법을 달리 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 말부터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빈발해 이러다 큰일나겠다 싶어 긴장하고 있었는데 결국 중대재해가 발생했다”며 “하청의 재하청 고용구조 문제를 계속 지적했는데도 시정하지 않고 안전관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원청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지적했다. 지부는 올해 들어 울산공장에서 40여건의 안전사고가 발생했다고 전했다. 김종훈 민중당 의원에 따르면 울산 조선업 산재 피해노동자는 2014년 370명에서 경기하락으로 2018년 170명까지 줄었다가 지난해 수주가 증가하면서 204명으로 늘었다.

지부는 고용노동부에도 책임을 물었다. 지부는 “지난 7일 부산지방고용노동청 울산지청장이 방문했을 때도 불안정한 고용구조 문제와 하청업체 안전관리 문제를 지적했는데도 아무런 시정지시를 내리지 않고 방치했다”고 비판했다. 지부는 회사에 중대재해 발생현장과 유사한 작업현장 작업중지, 긴급 산업안전보건위원회 개최와 특별안전교육 등을 요구했다. 지부는 24일 오전 울산공장 2야드 사고현장에서 추모집회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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