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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 확산 막기 위해 질병유급휴가 도입 필요하다김정수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 김정수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28번째 확진자 발생 이후 며칠간 추가 확진자가 없어 이대로 상황이 종료되는 건 아닐까 하는 조심스러운 기대를 품게 했던 코로나19 사태가 얼마 전 29번째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다시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섰다. 29번째 확진자에 이어 31번째 확진자까지 해외여행력이 없고 기존 확진자와의 접촉이 없는 등 감염원과 감염경로가 불확실해서 그동안 우려해 왔던 지역사회 감염이 현실화하는 것은 아닌지 예의주시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모든 확진자의 감염원과 감염경로를 확인할 수 있었던 지금까지는 확진자 동선을 파악해 접촉 가능성이 있었던 모든 사람을 격리함으로써 더 이상의 전파를 차단할 수 있었으나, 감염원과 감염경로를 확인할 수 없는 지역사회 감염이 본격화하면 지금까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대처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보다 확진자가 더 많이 발생한 일본·싱가포르·홍콩 등 인근 국가들은 감염원과 감염경로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볼 때 이미 지역사회 감염이 본격화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지역사회 감염 여부를 예의주시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첫 확진자 발생 이후 현재까지 이 정도 수준에서 전파를 막은 것은 비교적 선방한 것으로 보인다. 인근 국가들에 비해 확진자도 적고 아직까지 사망자도 발생하지 않았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과 영국 데일리메일 등 외신들도 우리나라 보건복지부가 웹사이트를 통해 확진자의 위치를 면밀히 추적한 뒤, 이를 온라인에 게시하고 있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정부의 대처가 비교적 적절했다는 것에 딱히 이의를 달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정부 대책이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었던 것은 대다수 국민이 정부 방침을 비교적 잘 따랐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문제는 정부 방침을 따르는 과정에 상당한 불편과 불이익이 있을 수 있는데, 국민이 부담해야 하는 불편과 불이익이 커질수록 정부 대책의 효과가 줄어들 것이라는 점이다. 정부에서도 이런 점을 의식한 듯 몇 가지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아직까지 미흡한 점이 없지 않다.

가장 흔한 문제는 확진자와 접촉한 것으로 확인돼 격리 대상자가 된 경우다. 정부는 지난 3일 코로나19와 관련해 접촉자 구분을 없애고 격리기간 14일 이상이면 1개월분 생활지원비와 유급휴가 비용을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사업주는 국민연금공단 지사에 유급휴가비 지원을 신청할 수 있고 이를 지원받을 경우 유급휴가를 보장해야 한다. 만약 유급휴가비를 지원받지 못하면 관할 주민등록지에 생활지원비를 신청할 수 있다. 이러한 조치 덕에 당장은 격리로 인한 경제적 불편과 불이익이 크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나중에 또 이런 상황이 발생한다면 그때는 어떻게 될까. 현재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감염병예방법) 41조의2 1항에 따라 사업주는 노동자가 감염병으로 입원하거나 격리되는 경우 유급휴가를 줄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주어야 한다’는 강제규정이 아니라 ‘줄 수 있다’는 임의규정이다. 나중에 또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그때도 정부가 나서서 유급휴가비를 챙겨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원받지 못할 수도 있다.

해마다 겨울철이면 진료실에서 독감 환자들을 꽤 자주 만난다. 몇 년 전부터 진단 키트와 항바이러스 약제가 보편화되고 보험 적용도 점차 확대돼 예전에 비해 진단과 치료가 상당히 수월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독감은 일반 감기와 달리 전염력이 강하고 증상이 심각하기 때문에 환자들에게 상당히 주의를 준다. 특히 가족·친지·직장 동료 등 다른 사람들에게 전염시키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최소 5일간의 격리를 권고한다. 필자가 근무하는 병원에서도 직원들이 독감 확진 판정을 받을 경우 5일간의 유급휴가를 제공한다(휴일이나 이미 개인 연차휴가를 사용했을 경우 그 기간이 5일보다 짧아질 수는 있음). 그런데 그럴 때 상당히 난감해 하는 환자들이 있다. 대개는 직장생활을 하는 환자들이다. 그나마 ‘독감으로 인해 약물치료와 함께 5일간의 격리가 필요하다’는 확인서를 받아가는 환자들은 안심이 된다. 그렇지 않은 환자들 중에는 다음날 바로 출근한 경우가 꽤 있었을 것이다.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에 질병으로 인한 유급휴가가 보장돼 있는 경우가 아니면 쉴 수 없는 노동자들이 많다.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이 더욱 그럴 것이다. 얼마 전 금속노조 경남지부가 ‘질병유급휴가제 법제화’를 요구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코로나19에 대한 정부의 대처뿐만 아니라 확진자를 치료하는 상급종합병원들의 대처도 과거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때와는 많이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당시의 경험이 큰 교훈이 된 것이다. 질병유급휴가 제도의 법제화 역시 지난 메르스 사태 때 논의된 바 있었다. 그런데 아직까지 법제화되지 않고 있다. 왜 이건 메르스 사태에서 배우지 못했나? 정부의 전염병 대책이 지금처럼 계속 효과를 볼 수 있으려면 정부의 방침을 따르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편과 불이익을 최소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한 질병유급휴가 제도 도입이 반드시 필요하다. 메르스 사태에서 배우지 못했으나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는 제대로 배울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김정수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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